
제 5 화
-절영도 앞 바다-
기울어지는 태양이 바다를 서쪽에서부터 서서히 붉게 물들일 무렵,
부산포
절영도 앞바다는 왜선으로 시커멓게 뒤덮여 버렸다.
유키나가가
승선한 대장선을 필두로 각 지역의 영주들이 타고 있는 병선이 속도를 맞추며 나란히 부산포를 향했다.
유키나가가
탄 대장선을 중심으로 그 휘하에 병선이 따르고 있었고,
좌익에는
대마도군이,
우익에는
마츠우라와 오도열도의 영주가 탄 배가 부채꼴 대형을 이루며 물살을 갈랐다.
목적지는
부산포였다.
“모두
무장을 하고 만일에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하도록 하라.”
누각
위에서 육지 쪽을 바라보며 상황을 살피던 유키나가는,
다시
지휘소인 누각 안으로 들어가며 전군에게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유키나가와
부장들이 지휘실로 들어가자,
병사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게 조선 땅이라네!”
“그러게.”
“그럼,
이제
곧 한바탕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
“그렇겠지.
근데
조선군의 전력이 어떤가?”
“낸들
아나!
그런데
츠시마에서 들은 소문인데,
조선군이
덩치는 큰데 무기는 별로라던데….”
막상
육지가 다가오자,
병사들은
다가올 전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아는 지식,
모르는
지식 죄다 동원해 밑도 끝도 없 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왜군의
하급 병사의 대부분은 차출된 농민병이었다.
평소에는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전시에는
영주에게 동원돼 병사 역할을 하는 반농반병들이었다.
조선
출병을 결정한 히데요시는 모든 영주들에게 군사 동원 명령을 내렸다.
쌀
일만 석에 군사 이백오십여 명이 배분되었다.
영
지 십만 석 이상의 영주들에게는 병사뿐만 아니라 식량 등의 병참과 군역을 제공하도록 했다.
또한
이번 조선 출병은 바다를 건너는 해외 정벌이기에 수군의 역할이 중요함을 감안해,
어촌
100 호마다
선원으로 쓸 어부 열 명씩을 차출하도록 명령서를 내렸다.
히데요시의
이 같은 명령에 따라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출 되었다.
각
영지 내에서 병자를 제외한 모든 사내가 나이를 불문하고 동원되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 많았으나,
젊은
병사들은 대부분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신출내기였다.
“상륙하면
곧 싸움이 벌어질까요?”
같은
마을에서 차출되어 온 고로가 도리에몽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글쎄,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겠지.”
도리에몽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위쪽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영주는
그곳에 없었다.
영주가
선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시야를
이물 쪽으로 돌렸다.
도리에몽의
눈에는 육지가 거무스레한 형상을 하고,
뱃전
앞 멀리 바다에 첨버덩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다는
왜군 제1번대의
형세에 기가 한풀 꺾였는지,
잔잔하게
출렁거렸다.
“고로,
모두를
불러 모아라.”
도리에몽은
같은 마을에서 차출되어 온 일행 다섯을 불러 모으도록 했다.
야이치,
고로,
히코베,
마타에몽,
다쿠로가
도리에몽의 곁으로 몰려왔다.
야이치를
제외한 넷은 싸움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상륙하면
바로 싸움이 시작될지 모른다.
첫
싸움이 가장 위험하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조심하라.
목숨을
귀히 여겨라.”
도리에몽의
말이 끝나자 고로와 같은 연배인 나이 어린 히코베가 반문했다.
“싸움에서
공을 세우면 논공을 많이 받는다던데요?”
“공이고
뭐고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
어떻게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야이치가
고로의 군모를 바로잡아 주며 도리에몽의 말을 거들었다.
“이
애들이 걱정이네,
싸움
경험이 없으니….”
“고로와
히코베는 전투가 시작돼 각개로 움직이게 되면 되도록 내 옆으로 붙어라.
그리고
야이치,
자네는
싸움 경험이 풍부하니까 마타에몽과 다쿠로 둘을 봐주게.”
“알았네.”
“잘
들어라.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먼저
나서서는 안 된다.
싸움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다.
더구나
여긴 객지다.
죽으면
여기에 버려진다.
모두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명심해라!”
도리에몽은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
“알겠습니다.”
싸움을
전쟁놀이로 생각하며 조금은 들떠있던 고로와 히코베가 마뜩해 하면서도 답을 했다.
곁에
있던 야이치는 더는 첨언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여 그의 말에 동의했다.
도리에몽의
나이 마흔이었다.
같은
마을에서 차출된 일행 중 가장 연장자였다.
히데요시가
규슈를 정벌할 때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차출돼 몇 번의 전투에 참전했었다.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몸이 빨랐으며 완력도 있었다.
싸움에
자신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몇 번 전투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전쟁이
무서웠다.
싸움터에서는
완력과 민첩함 같은 건 아무런 소용없었다.
오로지
운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 믿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무라이(무사)로
출세하고자 기회를 노렸으나 도리에몽은 몇 번의 싸움에 참가하고선,
두렵기도
했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 싫어 사무라이 출세의 꿈을 일찌감치 버렸다.
고로의
생부는 도리에몽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마을 친구 였다.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때 출전했다가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전사에
대한 보상은 쥐꼬리만 했다.
잡곡
몇 말이 전부였다.
그게
다였다.
그밖에
아무런 도움도 없었다.
말단
병사의 죽음이야말로 개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도리에몽은
친구의 자식인 고로를 친자식처럼 돌보았다.
생활이
어려운 고로의 가족을 돕기 위해 틈틈이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고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 먹었다.도리에몽은
땀을 흘린 만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농사일이 좋았다.
소작이라
생활이 여의치는 않았지만 틈틈이 텃밭도 만들며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밭에서 작물을 거두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는
성실했으며,
아량이
넓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정도
많았고 의리를 굳게 지킬 줄 아는 인물이었다.
“도리에몽
아저씨!
바쁘시지요?”
“오,
고로!
웬일이냐?”
“얘들이
아저씨를 뵙고 싶다고 해서 아저씨 일도 도와드릴 겸 제가 데리고 왔어요.”
마을의
젊은이들은 평시에도 도리에몽을 잘 따랐다.
“농사일이
많아서 바쁠 텐데,
동무들과
나다닐 틈이 있느냐?”
“예.
맡은
일을 후딱 끝내고 왔어요.”
“녀석들.
한창때라
배가 고플 텐데.
고구마
쪄 놓은 게 있으니 우선 요기 좀 하거라.”
“아녜요.
먼저
일을 하고 나서 먹을게요.
아저씨는
텃밭이 많아서 잔일이 많잖아요.
저희들이
후딱 끝낼게요.
논에
난 피사리를 뽑을까요?”
“요기를
먼저 하라는데도 그러는구나.”
“대신
끝나면 철포 좀 보여주세요.
그리고
싸움터 얘기를 들려주세요.”
“허허,
녀석들
알았다.
그럼
저쪽 위에 있는 밭에서 돌을 좀 골라 내거라.”
도리에몽은
처음에는 창을 든 보병으로 싸움터에 끌려다녔다.
창을
들고 항상 앞줄에 서서 적을 맞이했다.
그래서
항상 위험했다.
육박전이
대부분인 창부대보다는 원거리에서 적을 쏘는 철포 부대가 안전했다.
또
그는 창을 들고 사람을 찌를 때의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철포 부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러던 차에 싸움터에서 상대가 쓰던 철포를 습득해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철포를 들고 틈만 나면 철포를 익혔다.
겨울이면
사냥을 나가 들짐승들을 잡아 왔다.
눈의
초점이 좋아서인지 총이 잘 맞았다.
마을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의 기민하고 정확한 사격 실력은 마치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젊은이들은
그의 사격 실력을 존경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워했다.
고로의
부친이 전사하고,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들의 곤경을 곁에서 보아 왔던 그였다.
장가를
늦게 들어 아직 자식은 없었지만,
처와
노모가 있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싸움터에서 죽어선 안 된다.’
싸움터에
나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곤 했다.
철포
쏘는 법을 익히고,
사냥을
하면서 사격 실력을 키워왔던 것도 따지고 보면 가족들에 대한 책임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철포를 들고 참전했고,
사격술을
인정받아 영주 직속 조총 부대에 배속되었다.
“각
대,
제
위치로!”
“빨리
빨리 움직이도록.”
각
대를 끌고 있는 부대장들의 언성이 높아지고 움직임이 빨라 졌다.
지휘관들은
눈꼬리를 추켜올리며 고함을 쳤고,
꾸물대는
병사들에게 다가가서는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어깨를 내려치며 열을 정비했다.
“제1열
철포 부대,
제2열
장창 부대.”
병사들이
전열을 갖추자 점호가 시작되었다.전투대형이
이루어지자,
대장선에서
조개 나팔이 길게 울렸고 깃발수가 재차 깃발을 흔들어 명령을 전달했다.
상륙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시커멓게만
보이던 조선 땅은 점점 커다랗고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은
대오를 유지하며 점점 커다랗게 다가오는 육지를 침묵으로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떠 있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표정은 조금씩 굳어져 있었다.
현해탄
위에 떠 있는 대마도와 오도열도 같은 섬은 땅이 척박해,
그곳에는
주로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가 많았다.
평소에는
어업을 생업으로 하여 삶을 영위하나 흉년이 들거나 어업이 신통치 않아 기근을 겪게 되면,
일부는
왜구로 변해 인근 지역인 조선이나 명을 침략해 약탈을 일삼았다.
그래서
이들 섬에서 차출된 자 중에는 오래전부터 왜구짓을 하며 약탈과 방화,
하물며
인신 납치를 일삼았던 자들도 많았다.그들은
조선 해안을 잘 알았고 조선의 지리와 풍습에도 밝았으며,
조선말에도
능통했다.
또한
싸움 경험도 풍부했고 잔인했다.
인정사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왜구들이
날뛰지 않도록 단속한다면 통신사를 파견하리라.”
왜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조선 조정은 요시토시가 히데요시의 명을 받들어 조선과의 통교를 원하며 외교 교섭을 해왔을 때,
왜구
단속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해안에서
분탕질하는 어민들을 엄격하게 단속하라.”
히데요시는
조선의 요청을 받아 해적질의 단속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해안의
감시가 심해지자,
이들은
이전처럼 왜구 짓을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왜구
짓이 익숙했던 자들은 약탈을 할 수 없게 되자 수입이 줄어들어 불만이 상당히 쌓였다.
그렇지만
히데요시의 명이 워낙 엄격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던 터였다.
만일
왜구 짓을 하다가 발각이 되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깡그리 초토화될지 몰랐다.
히데요시의
엄명이 무서워 끙끙 앓고 있던 그들에게 당사자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결정하고,
각
지역에서 군사를 모았으니,
이들에게는
마치
‘불감청이지만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원하던 바)’의
심정이었다.
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 앞장 서서 지원했다.
“이번에 조선에 들어가면 한밑천 크게 잡아야지!”
“뭘로
한밑천을 잡나?”
“나는
이번에는 주로 조선 각시들을 노릴 거야!”
“각시?
마누라가
있는 친구가 웬 각시 타령이야?”
“잘
모르는군.
나가사키에서
조선 각시들이 비싸게 팔린다고!”
“각시들을
어떻게 끌고 다닐라고?
도자기를
챙겨야지.”
“그게
쉽지,
사기
그릇은 집집마다 수북하니까.”
“근데
별로 돈이 안 되잖아.”
“무슨
소릴,
조선
자기는 사카이(堺)로
가져가면 금값이야,
금
값.”
“그래,
그럼
나도 자기를 챙길까?”
약탈과
납치에 익숙한 이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싸움터에
서는 암묵적으로 약탈과 납치가 허락되었다.
왜구로서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약탈과 납치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모두 한몫 챙길 생각뿐이었다.
부산포를
향하는 이들의 눈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살기가 뻗치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그깟
재물이 얼마나 한다고,
목숨과
바꿀 수야 없지!”
“싸움터에서야
죽는 것이
‘병가지상사’
아니겠어.
죽기
아니면 살기지!”
“우하하,
죽긴
왜 죽어?
조선군들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조선군
중에는 싸움을 제대로 하는 자가 별로 없어!
아마
우리 모습을 보면 싸움도 하기 전에 도망치기 바쁠걸!”
“그래,
맞아.
약탈할
때 못 봤어?
칼을
들고 쫓아가면 대항은커녕 무기는 다 버리고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잖아.
칼을
휘두를 것도 없다고.
큰소리를
지르며 칼만 뽑으면 다 줄행랑을 치니까.
하하하.”
이들은
나가사키 서쪽 오도열도에서 차출된 병사들이었다.
오도열도의
영주인 고토 스미하루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고 할당 인원을 채우기가 힘들자,
왜구
짓만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도 징발해 함께 출정했던 것이다.
이들은
이미 조선 해안을 침략해 몇 차례 조선군과 접전을 벌인 경험이 있었기에 조선군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
오랫동안
왜구 짓을 못해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하고 물자도 넉넉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출병에 참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그들로서는
나무에서 떨어진 곶감이 저절로 입속에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한몫
단단히 챙겨야 한다.’ 제 6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