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산다는 것 - 김혜남의 그림편지
김혜남 지음 / 가나출판사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제가 매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거의 매일 하는 건 엄마와의 전화통화입니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시는 나이, 저 또한 오십을 넘겼지만 그럼에도 엄마 눈에는 늘 물가에 내놓은 자식
마냥 불안해하십니다.

4형제 중 유독 저를 좋아하셨고 제게 많은 기대를 거셨던 엄마.
밖에 놀러가지도 않고 늘 집에 앉아 책만 읽었던 딸. 공부하란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했던 딸,
공부도 곧잘 했던 딸.
그래서 엄마는 제가 잘 될 거란 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저보다 공부 잘하던 친구들도 가정형편때문에 여상을 가고 서울에 있는 대학보다 지방 국립대학을 선호
했던 80년 대.

전 지방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니라는 부모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려 서울로 유학을 왔습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가며 대학을 다녔는데 엄마는 그 때가 제일 행복하
셨었다고 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저와 동생들을 서울로 보냈으니 우리들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엄마의 어깨는
으쓱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흔이 되기도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을 쓰지 못하게 되니 엄마에게는 아직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듯 했습니다.

13년이 흐른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언젠가는 다 나을 거라는 희망.
그런 엄마에게 전 매정하게 말을 하곤 합니다.
"엄마, 이 병은 절대 안 낫는 병이야. 지금처럼 유지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하고 재발도 많이 해서 병원에 다시 입원하는 사람들도 많아. 휠체어도 안 타고 보조기를 차고라도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해야 한다니까 그러네."

"나도 아는데 자꾸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걸 어떡하냐?"

"엄마, 오늘 읽은 책은 고대 의대 나온 정신분석 전문의 선생님이야. 그런 분도 파킨슨병으로 마비가
왔는데 나 정도면 양호하지. 그 분은 잘 나가는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 어머니는 얼마나 억울하
시겠어? 그에 비하면 엄마는 별 거 아니야."

김혜남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때마다 느낀 건 늘 긍정적이고 밝게 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는 괜찮다고 말을 하지만 아주 가끔씩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날이 그날인 투병생활 중에도 늘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김혜남 선생님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투적인 문자를 보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한 컷의 그림을 그려 마음을
전한다니 그 마음이 무척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설픈 그림이라고 하셨지만 어떤 유명한 화가의 그림보다도 훨씬 정이 가고 그림 문자를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보내진 선생님의 그림과 글이 어찌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요.

오늘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날이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 포옹 ⚪

따뜻하게 꼭 안아주는 것은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공감과 위로입니다.
가슴과 가슴을 통해서
더 깊은 말이 전해지니까요.

누가 나를 포근히 안아주고
따뜻한 위로를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따뜻한 포옹과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33쪽)

⚪ 한 발짝 ⚪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그러고 어떻게 사냐고요.
그럼 나는 되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그래도 살아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요.

때론 삶이 막막하고
앞이 안 보일 때도 있습니다.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수만은 없습니다.
그건 그 어둠과 고통 위에 머무는 것이니까요.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는 것,
그것이 답입니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어딘가 다른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89쪽)

⚪ 가지 않은 길 ⚪

가지 않은 길은 아름답습니다.
그 길은 그러지 않았다면
크게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과
달콤한 후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 또한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러지 않았다면 있었을 법한
영원한 사랑에의 꿈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모든 후회는 달콤합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루었을 법한
모든 꿈의 완성을 속삭여 주기 때문입니다.

프루스트의 시구처럼 그 길을 걸음으로써
그 길도 거의 같아질 테지만요. (113쪽)

⚪ 다가가기 ⚪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그의 벽 밖에서 열리는 문을 찾아 두드려 보세요.
그리고 그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세요.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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