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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눈사람 - 내 안에 간직해온 세상 가장 따뜻한 삶의 의미
박동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8월
평점 :
저자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2011년도에 월간 잡지 「좋은생각」에서 매주 보내온 이메일에서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좋은 생각」에서 이메일을 받아보고 있었는데, 그 중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의 「희망의 글쓰기」라는 이름의 칼럼이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글이 많아 제 블로그에 저장해두었는데, 바로 그 분의 글, 반갑더라구요.
문학평론가 뿐 아니라 고등학교 때 열심히 시를 외웠던 박목월 시인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일상 생활에서 느낀 점을 에세이로 풀어놓기만 한 게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늘 "시는 어려워"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생활에서 겪은 삶의 이야기와 그 상황에 맞는 시를 소개하고 있어서 훨씬 이해하기 쉬워 시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머니의 눈사람」은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사는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아버지가 저녁을 먹고 나서 글을 쓰기 위해 상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밥상을 책상으로 쓰셨는데, 아버지가 밥상 위에 원고지를 펼치고 연필을 깍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세 달된 여동생을 업고 밤 마실을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작업이 끝나자, 저자는 어머니를 찾으러 나갔는데 동네 어느 집에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한참만에 그가 발견한 건 온 몸에 눈을 맞아 하얀 눈사람이 되어버린 어머니였습니다.
훗날 나이가 들어 첫 직장에 다니게 된 저자는 어머니께 그 당시 일을 여쭤보면서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봅니다.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돈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고 그런데 어머니가 뭐가 좋아서 밖에 나가서 일도 하고 힘들게 고생하면서 애를 업고 있었어."
어머니의 대답이 압권이었습니다.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시를 다 쓰고 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 처음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
어머니가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시 한 편을 누구보다 제일 먼저 읽어보라고 한 배려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이웃집 여자아이에게 어머니가 사과 두 개를 주었더니, 중동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오면 같이 먹겠다며 사과를 먹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아이의 이야기.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무가지 신문 한 장을 쓰고 달려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씌워주는 우산. 알고 보니 지나가는 여중생이 자신의 집과는 정반대인데도 일부러 저자의 아파트까지 씌워주었다고 합니다.
과연 요즘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솔직히 세상이 너무 험하다 보니 저라면 딸에게 모르는 아저씨가 비 맞고 가면 우산을 씌워주라는 말은 못할 것 같습니다.
친구나 같은 여자라면 몰라도...
1980년대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버스에 올라타시면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자리를 양보하겠다면서.
등하교 시간, 만원 버스에 올라타면 누구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학생들의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곤 했습니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힘들어 그럴 수도 있고, 워낙 젊은 어르신들이 많아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옛날에 비하면 세상이 참 각박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에피소드들과 그에 맞는 시들, 저자의 시에 대한 설명은 제게 '시가 의외로 어렵지 않구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고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참 따뜻한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