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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평점 :
다른 소설가들에 비해 다소 늦은 마흔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 고 박완서 작가님의 글.
이 책에 실린 글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천주교 「서울주보」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님이여, 그 숲
을 떠나지 마오」와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의 개정증보판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성경 구절에 맞게 저자의 느낌과 나름의 깨달음을 정리해 놓은 것 같은데 천주교 신자가 아니
라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4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마음 한 구석에 의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저의 마음에 교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누군가 설명을 하더라도 그 사실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제 성격때문에 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어도 마음 한 구석에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저희 집에 오셔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1년 동안 신약성경을 서너 번 통독하고 말씀에 숨겨져 있던 속 뜻을 알게 되어 무척 신기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고,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더
이기적으로 사는 걸 많이 봤기에 교회에 대해서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하는 중에도 목사님께 부정적으로 질문을 던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 때마다 목사님께서 명쾌한 답을 주셨지만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의심병이 도지는
겁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저보다 나이도 많고 신앙심도 깊은 박완서 작가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되니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내가 남의 귀인이 돼주지 않고 어떻게 길 떠난 내 자식이 귀인을 만나기 바라랴.' (p 93)
자유란 인간에게만 부여된 누릴 가치가 있는 존엄하고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책임이요, 운명 이기도 하다. 세상을 왜 이렇게 부조리하게 만드셨냐고 하느님을 원망할 건 없다. 우리의 자유의사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차마 못 버리시고 인간의 영혼이 살아남기 위해 접붙여야 할 참생명의 나무로서 외아들까지 내놓으셨다. (p 210)
제가 꿈꾸는, 제게 합당한 부활은 저의 전체 중 가장 미소한 일부인 저의 좋은 점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잊지 않고 저를 향해 마음의 문을 늘 열고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저를 향해 굳게 문 닫고 있다 해도 가끔 그들 사이로 돌아와 바람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주 저를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슬플 때 제가 생각난다면 기쁨이 되고, 어려울 때 제가 생각난다면 힘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제 육신을 떠난 영혼에 그러한 자유를 주신다면 임종의 순간에도 결코 두렵지 않으리이다. (p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