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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평점 :
지금도 서울대를 입학했다고 하면 "와, 대단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1950년에, 그것도 여자가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 후 시댁에서 몇 십 년동안 전업주부로 아이들과 시어른들을 모시며 최
선을 다하셨고 그 후 마흔의 늦깍이 나이에 등단하게 된 박완서 작가님의 산
문집입니다.
꽃과 나무들을 돌보기 좋아했던 작가에게 호미는 꼭 필요한 농기구였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대장간에서 호미를 만들기 위해 뜨거운 불에 쇠를 달구
던 대장장이의 모습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사방이 논과 밭이었던 고향을 몇 년 전에 갔더니 논과 밭은 다 없어지고 그곳
이 아파트 단지로 바뀐 걸 보면서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흙을 밟을려면 일부러 산을 찾거나 따로 흙길이 조성된 공원을 찾아가야 하는
도시에 사는 입장에서 마당에 온갖 식물을 키우며 사는 저자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꽃을 키우는 데는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의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법,
게으름이 천성인지라 매번 봄이 되면 예쁜 꽃이 피어있는 화분을 사지만, 한
계절이 지나지 않아 죽여버리고 마는 똥손이라 이제는 집에 예쁜 화분을 들
여놓는 걸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마당에 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걸고 정성을 기울이는 저자의 일상이
부럽고 책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던 중 인상깊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첫애가 첫 번째 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 밥그릇 뚜껑을 방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만 밥그릇 뚜껑이 두 조각
이 났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불길한 징조라고 여겼을 겁니다. 저자 또한 행여 딸이 시험
을 보면서 그 일 때문에 시험을 망칠까 봐 걱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단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어머니께서 "큰 소리가 났으니 합격은
떼논 당상"이라고 했다니 멋진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의 말씀을 "네가 합격해서 친척과 이웃에게 소문이 퍼질 좋은 징조"
라고 풀이해 준 작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저였다면 온갖 불길한 상상을 하면서 전전긍긍했을 것 같습니다.
고단한 여행에서 돌아와 '내 집이 최고다'라고 느꼈을 때 텔레비전 뉴스를 보
고 정치인들의 싸움을 보면서 여행을 하는 동안 며칠이라도 정치인들을 안 볼
수 있었던 것이 달콤한 휴식이었다는 작가의 말에 저 또한 공감할 수 있었습
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로 매번 여당과 야당이 바뀌지만 여야가
바뀌면 또다시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시어머니와의 에피소드, 마흔에 등단한 후 만난 뜻
깊은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