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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 : 그러니 그대, 부디 외롭지 마라 ㅣ 광수생각 (북클라우드)
박광수 지음 / 북클라우드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 <광수생각>을 만나게 된 건 8개월 동안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2005년 새해가 되고 나서
병원에서 가져온 짐을 풀었을 때입니다.
음식솜씨가 좋았던 친구가 병문안을 오면서 김밥을 싸 가지고 왔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친구
가 병실에서 심심할 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던 <광수생각>이라는 책은 제 기억에서 사라졌다
가 몇 달이 더 지난 후에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신뽀리를 내세운 짧은 컷의 만화와 맞은 편에는 작가의 짧은 단상을 적어놓은 책입니다.
그 후 <광수생각>의 다른 책들을 더 읽었는데 이번에 나온 신간은 같은 오십 대를 건너가는 중
이라 그런 건가요? 많은 글들이 공감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작가는 20여 년 전쯤 라스베이거스에 들렀다가 카지노에 방문하게 됩니다. 갑자기 울려 퍼진 팡
파르에 놀라서 돌아보니 80살이 넘은 듯한 백인 할머니가 120만 불에 당첨되어 행복해하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부러워하던 작가에게 한국인 딜러가 알려주더랍니다. 그 할머니는 40년 넘게 매일 카지노를 방
문했다가 처음으로 따게 된 거라고. 그러니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누군가 그랬다.
카지노에서 돈 따는 방법은 카지노에 가지 않는 거라고. (109쪽)
정치인이란 선거철 한 때만 한시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고 나면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취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엔 귀를 막아버리는 그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버무리는 소임을 다해달라는 부탁의 글.
학교는 세상에 나가 실수할 것들을 미리 경험하고 용서받는 곳이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성적
으로 줄을 세워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나누지 말기를, 학교에서 열심히 실수해보고 세상에 나가
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방법을 알려주기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바라보며 슬프다는 그의 말에 살아계셔서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친구의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엄마의 팔순기념 여행을 다녀왔는데 엄마가 지금 살아계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엄마에게 용돈을 부칠 때마다 이름 대신 "엄마 사랑해"를 적어 보내는 여동생과 달리 전 달랑 이
름 두 자만 적어보내는 무뚝뚝한 딸입니다.
여행지 콘도에서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졌는데 쿵 소리를 아무도 못 들었는데, 팔순인 엄마만
그 소리를 들으시고 목욕탕으로 달려오셨습니다.
오른쪽이 불편한 제가 혼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 엄마만 귀를 귀울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그런 듯 합니다. 가족을 위해 모든 신경을 열어두고 있는 것.
치매를 앓고 있어 무표정한 저자의 어머니는 네 시 반이라는 말에 밥 해야 한다며 일어선다고 합니
다. 양치하는 것도, 세수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셔도 매일 저녁 5시에 밥을 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기
억하고 계시는 저자의 어머니.
수필이나 소설도 좋아하지만 이 책처럼 만화와 짧은 호흡의 글도 좋아합니다.
특히 짧은 글임에도 꽤 오랫동안 마음 속에 맴도는 글들.
일상의 이야기들을 만화와 짧은 글로 빨리 읽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