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가 지나간다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용경식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의 마지막 줄을 읽고나자 가슴 한 구석에서 안개같은 무언가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울렸던 서커스의 요란한 소동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황량한 들판 위로 불고 있는 먼지바람을 지켜보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의 삶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파묻혀 과거가 되듯 내 삶의 모든 것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로마에서 새로운 생활을 꿈꾸었던 주인공이 한 순간에 그 모든 것을 놓쳐버리듯 우리도 사랑하는 많은 것과 언젠가는 이별해야 합니다.

이 소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여줍니다. 수묵화가 아무 것도 그리지 않고 여백을 둠으로써 더욱 많은 공간을 담아내듯 이 소설도 할 말을 줄임으로 사랑하는 것이 사라진 주인공의 인생을 더욱 깊이 각인시킵니다.

존재하는 무언가가 주는 공포보다 어찌보면 더욱 크게 보이는 부재의 공포. 서커스가 사라진 부재의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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