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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파일 - The Einstein File
프레드 제롬 지음, 강경신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중세까지 과학은 신학과 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에서 풀지 못하는 답은 신학에서 해답을 주었습니다. 우주는 얼마나 넓은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질문은 과학이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신학자들의 끊임없는 경전연구와 기도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성직자가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면 과학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때로 신학을 뒤엎는 과학이론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갈릴레이나 다윈이 대표 케이스입니다. 실험실에서 비커나 기울이고 있어야할 골방학문이 감히 신학을 전복시켜려고 하니 성직자들은 얼마나 열 받았을까요? 지구는 둥글다라든가,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라는 따위의 말은 신학의 영역에 감히 도전한 애숭이 과학자들의 딴지걸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이 연이어지고 마침내 신학자들도 눈 앞에 보이는 증거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지요. 결국 자존심이 상한 신학은 이제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말자며 과학에게 타협안을 제시했고 '철학'이 그 중재역할을 맡았습니다.
한동안은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내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도 과학과 신학, 철학은 전혀 다른 학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가 취미로 미술을 하거나 음악은 할 수 있어도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하는 법은 없습니다. 또 철학과 학생이나 목사예비생이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해 실험실을 들락거리는 법도 없어졌습니다. 중세 이전에는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18세기를 넘어서면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죠.
그렇게 서로 건드리는 법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오다 과학이 결정적인 배신을 때렸습니다. 그게 바로 아이슈타인이죠. 아인슈타인이 베른의 특허청에서 써낸 논문 두 편은 인간과 우주에 대해 막연히 믿고 있었던 우리의 지식을 여지없이 깨뜨렸습니다. 인도의 수학자는 우주가 언제 없어질 지도 계산했습니다. 어, 이거 뭐야? 뒤통수 맞은 신학과 철학은 요한계시록을 앞세워 뭐라고 한 마디 늘어놓으려고 합니다만 고개를 돌려보니 아인슈타인의 메모가 나카사키와 히로시마 하늘 위에 폭탄으로 변해있었습니다.
폭탄 하나가 수십만 명을 죽이는 과학의 힘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누가 잘났거니 못났거니 말싸움할 생각도 못합니다. 이건 여차하면 다 죽게 생겼으니까요. 아인슈타인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겠죠. 그래서 끊임없이 핵개발 저지와 세계 정부를 통한 평화주의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 즈음에서 FBI가 등장합니다. 폭력을 앞세운 세계 최고 국가를 꿈꾸는 미국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늘어놓는 백발영감이 곱게 보일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FBI가 제거하기에 아인슈타인은 너무 커져버렸죠. 어설프게 일을 추진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혹을 붙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FBI 후버국장은 아인슈타인을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재로 만들어버립니다.
천재란 우리와는 항상 이 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합니다. 천재와 미치광이는 어느 면에서는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개구장이처럼 혀를 쑥 내밀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사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나요? 이 책은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을 바보스러운 천재로 만들어가는 미국 FBI의 작전명령서입니다. 다만 명백한 증거를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려는 작가의 고집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정말 할 일 없는 분이라면 한 번 읽을 만도 합니다. 해는 안 되니까요. (아, 설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