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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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제목이 붙여진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특이한 구조의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두 이야기는 각기 다른 축을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시작하지만 결국 두 톱니바퀴를 감아 도는 벨트는 하나입니다. 이 소설에는 지하세계에 사는 괴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뇌 속에 또다른 의식을 심는 과학자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제법 벗어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이지만 하루끼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전히 '고독'과 그 '고독의 극복'입니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저로서는 이 소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상실의 시대>보다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하루끼의 매력적인 비유가 덜 돋보여서 그럴까요? 특이한 구조이긴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었을 때처럼 입이 허, 벌어지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앟더군요. 역시 하루끼의 스타일은 구조가 아니라 문체에서 제대로 발휘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작가 후기를 읽고서야 알았지만 하루끼는 수필을 쓰는 걸 무척 곤혹스러워 했다는군요. 지중해의 푸른 햇살처럼 항상 밝고 즐거운 이야기만 늘어놓았길래 쓰는 사람도 늘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들어 했을 줄이야.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를 썼지만 쓸 때는 무겁고 괴로웠다는 말에 한 편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론 역시 먹고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구나 하는 동정이 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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