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평전 - 시대를 거역한 격정과 파란의 생애
허경진 지음 / 돌베개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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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허균? 하면 저는 홍길동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는 게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홍길동전도 조선시대 한량이 곡주 마시고 할 일 없어 뒤척거리다 끄적거린 이야기다. 그런데 술에 취해 한문이 안 떠올라 한글로 썼기에 생각지도 않게 후세에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이 정도로 상상했죠. 그런데 평전을 읽어보니 내가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허균은 1569년, 아버지 허엽이 대사성까지 지낸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초당 허엽은 곧은 소리만 하는 청백리였다고 합니다. 文을 중히 여기는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누이 난설헌도 조선의 제일 가는 여류시인이라는 극찬을 들었겠지요. 글 잘 짓는 난설헌의 이름은 명나라 수도에까지 널리 알려졌는데 동생인 허균 역시 이에 질세라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허균은 글만 잘 짓는 문장가로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재주가 있어도 천한 계급으로 태어나면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시대가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태생이 천한 계급이었으면 억울해서라도 그런 생각을 할 법 합니다. 임꺽정도 대표적인 케이스죠. 하지만 명문가의 적자로 태어난 허균이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개탄했다는 것은 시대를 앞지른 사상을 가졌기에 가능했습니다.

허균은 유교로 비틀어진 현실을 뒤엎고자 몇 명의 서얼을 모아 실제 혁명을 도모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이 임금 자리까지 노린 역성혁명이었는지 아니면 임금은 그대로 두고 계급사회를 뒤엎으려고 한 개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홍길동전>은 그 혁명을 꿈꾸던 시절에 쓰여진 소설입니다.

하지만 혁명의 씨앗이 움트기도 전에 이이첨이라는 간신의 흉계로 그만 역적으로 몰려 칼날을 맞고 말았습니다. 이후 몇 백년동안이나 역적 허균은 허씨성까지 뺏겨 '균'이라 불리면 갖은 놀림은 받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야 시대를 앞서간 인물로 새롭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글소설 덕택이지요. 한글 만세!

한 발짝 앞서가면 선구자요, 두 발 앞서가면 몽상가, 세 발 앞서가면 정신병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교가 사람 사는 사회의 모든 뿌리를 움켜쥐고 있던 시대에 그 엄청난 암벽을 홀로 뒤엎으려고 한 허균은 시대에서 몇 발이나 앞서간 사람이었을까요? 퀴즈는 아닙니다만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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