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월든은 사람이 일 년을 먹고 살려면 도대체 얼마나 일해야하나를 작가가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일종의 보고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일주일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보통의 경우 하루나 이틀쯤 일하면 충분하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나머지 5일이나 6일을 더 일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먹느냐에 대한 문제는 생긴다. 소로우도 스테이크나 햄을 먹기 위해서, 혹은 푹신한 메트리스 위에서 자기 위해서는 하루로는 부족하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겨우 그런 생활을 하기 위해서 죽자살자 일에 매달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일해서 조금만 먹고 편안하게 살자, 이게 소로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간디도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소로우는 무소유나 자연주의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많이 가질수록 머리가 아픈 것은 사실이다. 새 것을 가질수록 신경이 더 쓰인다. 내가 몰고 다니는 차는 콩코드 90년식인데, 작년에 아는 교수님으로부터 공짜로 얻은 것이다. 그 전에 몰던 차도 친구의 상사가 몰던 차를 그냥 얻은 것이라 나한테 차란 것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닌 물건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90년식 차를 몰고다닌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고급식당에서 주차원한테 키를 맡길 때도 조금은 주춤거리기 마련이고, 세차장에서 세차를 할 때도 세차원에게 꼼꼼히 닦아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차를 자주 바꾸는 이유도 이런 이유때문이리라. 물론 사람들은 지금 차가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혹은 흠집이 너무 많이 나서 등의 이유를 달며 차를 바꾸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보다는 쪽 팔려서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 차를 사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더 많다. 먼저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일단은 멋을 부릴 수 있다. 사람이 사는 동네란 다 엇비슷해서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는 그 사람이 입은 옷, 그 사람의 외모 등으로 가릴 때가 많다. 차도 마찬가지여서 마티즈나 아토즈보다는 벤츠나 BMW가 훨씬 그 사람을 돋보이게 만든다. 좋은 차를 타면 멋지게 보인다. 그리고 뭐가 있을까? 얼른 생각하기에는 그게 다인 것 같다.
그럼 새 차를 살 때 잃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새 차를 사게 되면 주차하기가 힘들다. 헌 차야 주차를 하다 박아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새 차라면 사정이 다르다. 흠집이라도 나면 다시 광택을 내야 하고 그럴려면 속 상해가며 돈을 들여야한다. 세차할 때도 왁스를 먹여야하기 때문에 돈이 더 들고, 어디가 고장나도 부품을 새 걸로 갈아야하기 때문에 돈이 더 든다. 세금도 더 나오고, 뭣보다 차 값이 부담스럽다. 2000만원짜리 차를 사서 5년타고 500만원에 판다고 생각할 때 한 해에 드는 비용은 400만원 정도. 한 달로 치면 35만원 정도가 든다.
차라는 것이 새 차를 타던 사람은 늘 새 차를 타야하는 버릇이 남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평생 한 달에 35만원을 차 값으로 부담해야만 한다. 물론 한 달에 몇 천만원 버는 사람이야 이런 것쯤은 감수할 수 있지만 2백만원 월급쟁이한테는 부담스러운 게 틀림없다. 내 말은 그 돈으로 여행을 가는 게 더 낫다는 소리다. 일 년에 400만원짜리 여행을 한 번씩 다니는 게 하루에 한 두 시간 타는 차에 소비하는 것보다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월든은 모든 생활을 줄이고 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 그렇지만 내가 버는 돈을 어떻게 요령있게 쓸까 고민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작업이다. 월든은 그런 요령을 가르쳐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