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9단>

이 할머니 보통내기가 아니다. 자신을 할머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이의 말에는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로움과 여유, 그리고 확신이 가득 담겨져 있다. 처음에는 거북하게 느껴졌던 구어체의 말투에 곧 빠져들고 말았다. 인상적인 그녀의 말을 몇 개 들어보자.

재수 없다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자꾸 불평해봐야 소용없어. 문 밖에 세워두고 '우리 집에 왜 왔냐?' 노래 불러봐야 그놈이 가기는 커녕 저쪽으로 가려던 다른 곤란도 같이 불러온다. 그 말이야. 사고 같은 곤란도 그렇고 병도 마찬가지야.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렸단 말이야. 그런데 병균이란 놈한테 '나 너 싫어, 나가.'하면 '알았어.'하고 말귀를 알아들으면 좋은데, 그게 되냐고. '아, 나도 감기에 걸렸구나.'하고 얼른 인정을 하고 몸조리를 해야지. 벌써 몸에 들어 온 병균에다 대고 왜 왔냐고 고함지르고 술 먹여봐야 합병증만 생겨. 마음의 문이라는 건 삶한테만 여는게 아니야. 나한테 오는 곤란한테도 문을 열어 놓아야, 그 곤란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단 말이야.' 언제나 편한 세월이 올까?' 이런 투정은 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마. 그런 세월은 없으니까. 불편한 세월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잘 달래면, 그게 바로 편한 세월이 되는 거야.

나는 항상 내 자신이 재수 없는 놈이라고 '왜이렇게 나는 재수 없을까'하고 원망을 해왔었다. 하지만 이 할머니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나 재수없어. 그러니까 재수없는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해.'

놀이터나 길가에 유리조각이 있으면 그걸 보고 행여나 누가 다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바쁘다고, 귀찮다고 그냥 가지 말고 치워봐. 쓰레기통이 너무 멀리 있으면 한 쪽 구석으로라도 치우면 돼. 그렇게만 해도 기분이 개운해 질 거야. 감동한 대로 움직였기 때문이지.

9단은 복수해. 어정쩡하게 착한척하면서 용서 안 해. 그게 9단의 진면목이지. 대신 복수도 그냥 복수가 아니라 통쾌한 웃음이 나오는 복수,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 줬는데도 상대방은 날이 갈수록 속이 아픈 복수, 이게 9단식 복수법이다, 그 말이야. 도저히 용서 안 되는 놈이 있으면 일단 당신이 잘 살아야해. 잘 살지도 못하면서 그놈한테 해코지 하는 건 복수가 아니라 자기를 망치는 짓이야. 당신이 그놈보다 더 멋지게 살아야 마음속으로는 칼을 숨기고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해주는 인생 9단식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이지.

꽉 막힌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훈계하는 할머니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할머니 만만치 않다. 세월의 흔적이 녹녹치 않은 것이다.
말 잘 들을게요, 할머니.
고물고물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댄다. 그래야 외롭지 않댄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고물고물 잘 놀기 위해서.
 

/ (주) 아름다운 청년
 
 2006.11.23   

 

http://blog.joins.com/ddoogg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