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9월 23일 구덕 구장. 7회초 롯데 수비 때 덕아웃으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은 홍문종이 그라운드에 침을 뱉었다. 더이상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이상의 감정이 묻어나왔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그해 롯데에 입단한 홍문종은 9월 22일과 23일 삼성과의 정규시즌 최종전을 통해 9연타석 볼넷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나 출범한지 50년이 지난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 볼넷은 '친타자성향'을 지녔지만 홍문종에게는 달갑지 않은 기록이었다.
9월 22일 부산 삼성전에서 5차례 타석에 들어선 홍문종은 모두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23일에도 마찬가지. 삼성 포수 송일수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 '고의사구'의 여건이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삼성 투수들의 손을 떠난 볼은 홍문종의 방망이가 닿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결국 5회까지 4차례 타석에 들어선 홍문종은 모두 볼넷을 얻었다. 9타석 연속 볼넷이자 20일 OB(현 두산)전 마지막 타석에서 중월 3루타를 친 것까지 합해 10연타석 출루.
부끄러운 밀약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홍문종은 이만수(당시 삼성)와 치열한 타격왕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21일까지 이만수의 타율은 3할4푼. 홍문종은 3할3푼9리였다. 홈런과 타점 부문 1위를 사실상 결정지었던 이만수가 사상 최초 타자부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타율 1리차를 지켜야했다.
삼성은 이만수를 벤치에 앉혀둔 채 홍문종의 타율을 묶어뒀다. 후기리그 우승을 놓고 OB(28승 1무 21패)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롯데(28승 1무 20패)에게 '고의패배'라는 선물을 약속한 터라 상대도 삼성의 홍문종 피하기를 묵인했다.
더 나아가 홍문종의 출루율을 4할2푼까지 끌어올려 삼성 장효조(출루율 .424)를 위협하자 7회 수비 때 홍문종을 벤치로 불러들이는 '추가 서비스'까지 해주며 승리를 추가했고 결국,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으로부터 파트너로 선택된 롯데는 한국시리즈에서도 승리, 1984년의 챔피언이 됐다.
홍문종은 밀약이 만들어낸 외부요인에 의해 힘 타율, 출루율, 도루 부문에서 모두 2위에 머물며 아쉬움을 남겼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이만수는 롯데 최동원에게 MVP까지 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