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기적을 믿는가? 기적이란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그것을 두고 이르는 말"을 가리킨다. 필자는 축구 역사에 있었던 잊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작은 기적을 소개할까 한다.

때는 2000년 5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 프로축구 4부리그에 소속된 순수 아마추어 선수들로 이루어진 칼레 RUFC의 프랑스 FA컵 준우승이 바로 그것이다. 그 사건을 축구팬들은 일명 '칼레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칼레는 도버해협을 끼고 영국과 최단거리(34Km)에 있는 인구 약 8만여 명 정도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작은 항구도시로써 유명한 조각가인 '오귀스트 로댕'의 걸작품 중 하나인 <칼레의 시민들>의 배경이기도 하다.

칼레의 면면을 보면 프랑스 FA컵 결승에 올라간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칼레의 홈구장은 좌석이 1,000석도 안 되며 그 구장마저도 비가 올 때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으며 교사, 정원사, 가게 종업원, 부두 노동자 등 일반 직장인들로 이루어진, 한국으로 치자면 '조기축구회'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선수구성이었다. 이런 칼레가 쟁쟁한 프로팀을 연파하면서 아마추어 팀으로는 프랑스 FA컵 역사상 83년 만에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한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다.

4부리그에 속한 칼레는 결승전까지 10경기를 치러 모두 승리하였다. 당시 2부리그 우승팀은 릴 OSC도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었고, 최근에 은퇴한 서정원선수가 뛰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부리그 RC 스트라스부르도 8강에서 '칼레의 기적'에 희생양이 되었다. 이때까지는 칼레의 선전을 단순한 이변으로만 생각했고 그리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4강에서 98-99시즌 프랑스 1부리그 우승팀 지롱댕 보르도를 3대1로 누르며 결승전에 진출하자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열악한 홈구장 시설 때문에 랑스에서 열린 준결승전에는 칼레 전 시민의 절반이 넘는 4만여 시민이 원정응원을 펼쳤으며, 경기 승리 후 칼레 시청 광장에는 98년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컵을 따냈을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여 칼레의 승리를 자축했다. 많은 이들이 이 칼레의 기적 같은 승리에 감동하였으며, 프랑스는 물론 영국, 벨기에, 캐나다 등 각국에서 축하메시지가 쇄도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몽드>는 프랑스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칼레를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로 극찬하기도 했다.

파리 생드니 구장에서 열리는 결승전 상대는 1부리그 팀인 FC 낭트(현 2부리그)였다. 하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칼레에게 집중되었다. 경기 전 <르파리지앙 드망슈>지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칼레의 승리를 희망했으며, 전 세계가 '칼레의 기적'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랐다. 이들의 희망을 하늘이 안 걸까? 선제골은 칼레에서 나왔다. 전방 35분경 공격수 제롬 뒤티트르가 낭트의 골문을 연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비롯한 7만여 관중은 환호했으며 칼레의 신화가 예고되는듯했다. 하지만 '칼레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후반 5분, 낭트 미드필더 앙투안 시비에르스키(33, 현 위건 어슬레틱)가 동점을 만들었고 종료 직전에는 낭트의 공격수 알랭 카베글리아(39, 은퇴)가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에 성공하며 경기를 뒤집었고 결국 1999/2000시즌 프랑스 FA컵 우승컵은 낭트가 차지했다. (그러나 재생 화면을 통해 카베글리아가 얻은 페널티킥 선언이 시뮬레이션 동작에 현혹된 주심의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관중석에서는 야유와 분노의 함성이 메아리쳤고 경기가 끝나자 칼레 선수들은 허탈한 듯 경기장에 드러눕거나 몇몇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낭트의 주장인 골키퍼 미카엘 랑드루(28, 현 파리생제르망/프랑스 대표)는 칼레의 주장인 수비수 레지날 베크의 손을 이끌고 본부석에 올라가 우승컵을 함께 들어 올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고,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오늘은 두 팀 모두가 승자"라며 "낭트는 결과에서 칼레는 정신에서 이겼다."라고 축사했다.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미 프랑스 축구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라는 라디슬라스 로자노 칼레 감독의 말처럼 칼레는 프랑스 축구역사에서 아니, 세계축구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축구를 보여주었다. 칼레가 보여준 기적 같은 경기들은 아마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칼레 팀의 순수한 열정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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