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포구 아현동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최유복 부역장이 동네 옛지명에서 따온 역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정지섭 기자


굽은다리·애오개… ‘순우리말’ 역이름 대부분 옛 한글 지명… 지역 유래 담긴 이름도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아 동네 홍보역할 ‘톡톡’


대개 동(洞) 이름이나 명소, 주변 대학·관공서 따위의 이름을 따는 지하철역. 하지만 톡톡 튀는 순우리말 이름들도 적지 않다. 1990년대 중반 2기 지하철(5~8호선)이 개통하면서 굽은다리, 버티고개, 마들같이 한자(漢字)가 한 글자도 섞여있지 않은 이름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낯설다거나 생뚱맞다는 주민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지금은 동네 이름을 확실하게 알리는 ‘대표 선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형님은 한자 이름, 동생은 한글 이름

‘한 동네 두 역’이 생겨 순한글 역이름이 생긴 경우가 많다. 마포구 아현동 애오개역(5호선)은 같은 동네에 이미 아현역(阿峴·2호선)이 있었기 때문에 옛 한글 지명을 역 이름으로 썼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애오개’라는 이름의 유래 중에는 ‘아주 옛날 어려서 죽은 아이들을 묻었던 곳’이라는 슬픈 얘기가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근 마포경찰서, 서부지방검찰청·법원과 연결되는 마포구의 중심 관문으로 자리잡았다.

강남구 대치동에 만들어진 분당선 역사는 3호선 대치(大峙)역이 있어 본디 마을 이름을 따 ‘한티역’으로 지었다. 은평구 신사(新寺)동의 ‘새절역’은 말 그대로 ‘새 절이 있었다’는 동네 유래가 깃들어있다. 발음이 같은 신사(新沙·3호선)역이 강건너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새 절’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석관·묵동보다 ‘돌곶이’‘먹골’

처음부터 순우리말 옛이름을 택한 곳들도 있다. 성북구 석관(石串)동과 중랑구 묵(墨)동에는 한자에서 옛 이름을 짐작할 수 있는 돌곶이역(6호선)과 먹골역(7호선)이 있다. 도시철도공사는 “지하철 역이름을 정할 때는 옛지명, 행정구역, 공공시설 등을 두루 살피도록 돼있는데, 서울시지명위원회에서 운치있고 좋은 우리말 명칭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용산구 한남동에서 중구 신당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옛이름을 딴 ‘버티고개역(6호선)’, 조선시대 두 마을을 잇는 다리가 굽어있다고 해서 생긴 강동구 명일동의 ‘굽은다리역(5호선)’도 그렇게 생겨났다.

조선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러 가는 길에 장승을 세웠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장승배기역’, 한때 사관학교가 있었던 공군의 상징새를 딴 ‘보라매역(이상 7호선)’ 같이 ‘이야기’가 깃들어있는 한글 이름역도 있다.

◆“한글 이름은 싫다!” 밀려난 곳도

원래 한글 이름이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밀려난 곳도 있다. 도둑이 많아 살펴가야 한다며 ‘살피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동작구 상도동의 7호선 역은 근처 대학 이름을 따서 ‘숭실대입구(살피재)역’이 되었다. 평촌신도시에 들어섰던 지하철 4호선 역은 옛이름 멋을 살려 ‘벌말역’이었지만, 신도시 이름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에 못이겨 ‘평촌역’이 됐다. 3호선 금호(金湖)역이 있는 성동구 금호동에 놓인 5호선 역도 ‘대장간이 많았다’는 옛 지명을 따 ‘무수막’으로 지어졌다가, ‘발전하는 동네 모습과 안맞는다’는 반대의견에 따라 ‘신금호’역으로 바뀌었다.

◆‘매봉’ ‘대청’ 등도 순한글 이름

말맛은 당연히 한자어일 것 같은데 알고보면 순우리말인 곳이 있다. 강남구 도곡동의 3호선 매봉역은 인근의 야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으레 매화 ‘매’(梅)에 봉우리 ‘봉’(峯)따위를 떠올릴 법하지만, 순한글이다. 역시 3호선 대청역(강남구 일원동)도 옛 이름 ‘대청마을’에서 빌렸다. 호랑이들이 많이 출몰했다는 얘기가 있는 경기 안양시 호계동 범계역(4호선)도 순한글 이름이다.

이렇게 ‘한자어같은’ 역이름 때문에 혼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3호선 연신내역의 역명판에는 한때 ‘연신내(延新乃)’라는 한자를 병기했다가 나중에 순한글임을 알고 지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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