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등...
그러나 요즘 그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썼다는 설이 늘고 있다. 열가지 가능성을 뽑아 봤다.
1.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주장:여왕은 연극을 좋아했다. 그러나 여자들과 상류층 사람들은 희곡처럼 '천한글'을 대놓고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총애하던 젋은 배우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작품을 넘겨 자기 정체를 감췄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런 희곡들을 쓸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오랫동안 셰익스피어 극단을 지원했다. 컴퓨터 전문가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과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대조한 결과, 동일 인물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반론:그렇다면 여왕은 죽은 뒤에도 8년 동안이나 희곡을 썼다는 말이 된다.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2.국왕 제임스 1세
주장:그는 마법을 맹신했고 왕권을 굳게 믿었다. <맥베스>의 내용도 마법과 왕권에 관한 것. 그러니 제임스 1세야말로 전문가가 아닐까? 그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자신의 희곡을 셰익스피어가 상연해 주었기 때문일까?
반론:셰익스피어의 연국 중에는 1590년대에 쓴 것도 있는데, 당시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 있었다. 또, 그는 그나지 똑똑하지 않았다고 한다.
3.앤서니 베이컨
주장: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8번)의 동생. 앤서니는 1590년대 초에 프랑스 궁정을 방문했다. 1593년에 상연된 <사랑의 헛수고>에는 베로니, 뒤멩, 롱가비유 등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런 이름은 앤서니가 어울렸음직한 프랑스 귀족들의 이름과 일치하기도 하고 매우 비슷하다.
반론:셰익스피어의 연극이 공연될 떄 앤서니는 거의 영국에 없었다.
4.사우샘프턴의 헨리 리슬리 백작
주장:16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총명한 사람이었고 셰익스피어에게 많은 돈을 기부했던 부잣집 바람둥이이다. 셰익스피어는 젊은 시적의 리슬리 백작을 위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등의 시를 썼다. 그러나 혹시 백작이 희곡을 쓰고, 셰익스피어가 자기 이름을 붙인 건 아닐까?
반론:노느라고 바빴던 바람둥이 백작에게 희곡을 쓸 만한 여유가 있었을까?
5.러틀랜드 백작
주장:백작은 셰익스피어를 잘 알고 있었고 그에게 돈을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 돈은 백작의 희곡을 상연해준 대가가 아니었을까? 백작은 베니스, 베로나, 파두아 등 희곡들의 무대가 된 여러 지방을 둘러보았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아마 구경도 못 했을 것이다. 백작은 <햄릿>이 쓰여지기 직전에 덴마크 궁정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연극이 쓰여졌던 1613년에 사망했다.
반론:러틀랜드 백작이 희곡을 썼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6.더비의 윌리엄 스탠리 백작
주장:어떤 학자가 오래 된 편지를 찾아냈는데, 거기엔 스탠리 백작이 '배우들에게 희극을 써 주느라 바쁘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지만 스탠리란 사람이 희곡을 써서 공연했다는 기록은 없다. 스탠리의 작품으로 공연되지 않았다면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공연되었을 수도 있다. 스탠리 백작은 젊었을 떄 프랑스에 갔었고, 그곳에서 나중에 셰익스피어 연극에 나오는 실존 인물도 몇몇 만났다.
반론:스탠리의 희곡이 공연된 기록이 없는 것은 공연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쓴 희곡이 형편없는데도 그걸 공연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7.옥스퍼드의 에드워도 드 비어 백작
주장:그가 희곡을 썼다는 내용의 편지가 꽤 있으나, 스탠리 백작처럼 작품 목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요즘 백작의 후손 한 명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드 비어 백작이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론:그 역시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1604년에 죽었는데,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무덤 속에서 쓴 셈이다. 또한 그의 성품은 매우 나밨다. 백작은 어느날 화가 나서 부엌에서 일하는 일꾼을 갑자기 찔러 죽였고 불쌍한 아내를 매우 괴롭혔다. 그런 그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리는 없다.
8.프랜시스 베이컨 경
주장:셰익스피어 희곡의 작가는 법률과 프랑스 궁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프랜시스 베이컨은 프랑스를 방문한 동생 앤서니(3번)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대법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수상의 친척이었고 프랜시스는 시인이었다.
반론:베이컨은 극장에 대해 잘 몰랐다.
9.크리스토퍼 말로우
주장:셰익스피어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젊고 총명한 극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스파이 활동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어서 목숨을 구하려고 죽은 체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희곡을 써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상연했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돈을 받고 기꺼이 이름을 빌려주었을 것이다.
반론;말로가 1592년 살해되었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다.
10.윌리엄 셰익스피어
주장:당시 셰익스피어의 경쟁자였던 벤 존슨을 비롯하여 많은 극작가들이 입을 모아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그런 희곡을 썼다고 말했다.
반론:없다. 그러나 가끔씩 제기하기도 하나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가능성은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