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한지원 외 옮김, 고양우 감수 / 동아시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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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나마 정신과의사가 되길 희망했었던 적이 있었다 . 그때 한참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라는 책에 도전 하였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중간에 포기하였다. 학생 때 보았던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보며, 그들을 '고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인턴때 정신분열증 환자와 단둘이 독방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분이 나에게 해를 끼쳤던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같이 '미칠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고 하면... 나의 망상일까. 남들과 다른 행동,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의 행동을 지켜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고통이었다. 내가 과연 이분 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이분들에게 난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정신과 의사에 대한 꿈을 말끔히 접었다.

 

 물론 앨런 튜링은 정신분열병 환자는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정신분열병 환자와 그도 어느면에서 비슷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때에는 동네에 바보들인 한명은 꼭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동네 바보를 놀리는 나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냥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을 그 당시에는 마을 어른들이 돌아가면 돌봐준다거나 먹을것을 나눠줬다고했다. 그때는 그냥 '정신병자' 가 아닌 '돌봐줄 이웃' 정도 였을 것이다. 언제 부턴가 동네 바보들이 '정신 분열병' 환자가 되었고,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 간금이 되었다. 그들을 정신 분열증 환자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병적 신호가 된다.

 

 동성애가 정신과 질병에서 사라진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정신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신과는 훌륭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정신과약은 분명히 효과가 있고 실제 정신증이 좋아지신 분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영화를 보고 생긴 질문은 '정상'이란 누가 규정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었다. 영화는 앨런 튜링이라는 천재가 에니그마라는 암호를 푸는 것에 많은 분량을 할해 하였지만, 흥미로운 것은  '천재' 였던 그가 아니라, '성적 소수자' 로써의 그 였다. 그는 영국에게 승리를 안겨준 전쟁영웅인과 동시에 동성애자 였지만, 사회에서는 그를 성범죄자로 규정하였고, 그의 순수한 열정의 산물들은 모두 묻혀버리게된다.

 

 지금도 사람들은 '천재 괴짜'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만,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같은 성적 소수자에게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외면하는 그들도 훌륭한 교수이자, 누군가의 어여쁜 자식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런 애인 일수도 있겠다.

 

'규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나는 나란 사람이 때론 얼마나 비열한지, 사악한지, 말도 안되는 생각들을 하는지 잘 안다.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 놀랄 만큼 착할때도 있고 이타적일 때도 있다. 이 모든게 나란 사람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에게 "넌 하나도 쓸모 없는 구제 불능"이라고 정의한다면? 지금의 나라면 가볍게 무시하겠지만, 아직 스스로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나이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누군가 개개인은 우주라고 하였듯이 반평생을 같이 살아도 모르는 것이 한길 사람 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가 끝난 뒤에 한동안 앨런 튜링이란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이마저도 폭력적인 시선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하였다. 내 시선엔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모습만을 '행복'이라 규정하는 그런 태도가 깔려 있었다.

 

실제 '크리스토퍼'와 잘 되지 않았지만, 또 다른 '크리스토퍼'를 창조하면서, '조안'과의 관계도 틀어졌지만, 그녀와 어떤 '우정'을 나누면서 그는 충분히 '행복'했으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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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2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연민 속의 인습을 의심했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감정을 배제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싶어요.
물심양면으로 사람을 보살피는 분들을 정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