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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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을 위한 건축

일반적인 건축에 대한 입문서는 대개 폭력적이다. 다짜고짜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라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설마 이 건축물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의심조로 끝난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대부분 그러하듯.. 왜 우리는 건축 또는 종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부터 시작한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나에게서 출발해서 긴 여행을 한 후에 다시 나로 돌아온다.

왜 살기도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다. 하잘것 없는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예전 스토아 학파나 불교의 가르침도 자신의 거처하는 곳이 어떻든 간에 게의치 않아하지 않았지 않나... 이 같은 물음에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 이렇게 (건물의 아름다움에) 거리를 두는 자세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부재하는 곳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열었을 때 마주한게 될 슬픔을 빗겨가고 싶은 마음에 나온다. ” 사실 그렇다. 누군 예쁜 집이 안가지고 싶나.... 현실이 고될 뿐이다. 하지만, 예쁜 집은 예쁜 것이다. 스스로 최면을 걸 필요 없다.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운 건축을 소유하는 법이 아니라, 감상하는 법에 관해 이야하려 한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움의 부질없음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부질없음에 대한 통찰에 오히려 찬사까지 보낸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운 건출물의 존재 이유에 대해 도덕적 메시지라는 답을 내어 놓는다.

“건축에는 도덕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강요할 힘이 없을 뿐이다. 건축은 법을 만드는 대신 제안을 한다. 우리 더러 그 정신을 모방하라고 명령하기보다는 권유하며, 자신을 악용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진정하게 눈을 뜨기 위해서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가에 대한 통찰이 깔려 있어야 한다...

2. 어떻게 지을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료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심지어 그것은 비민주 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떤 아름다움도 평가할 수 없다는 황폐한 상대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 평가 하기 보다는 그 건축물이 하는 언어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생활 방식을 우리에게 권장하는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지...

3. 말하는 건물

인간과 동물의 속성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고 의미 있는 것을 환기시켜줄 때 우리는 그 작품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우리는 침실에서 평화를 연상하려하고 의자에서 관대와 조화를, 수도꼭지에서 정직하고 솔직한 분위기를 구한다.

4.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

-기억

: 건물이 일종의 심리적 틀처럼 우리를 지탱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벽지, 그림, 거리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실종을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이상

건축물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정의, 평등, 평화 같은 이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닮고 싶은 것을 닮았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사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우리의 진정한 욕말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 보다는 그것이 구현하는 내적인 특질을 영원히 자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이 변하는 이유

왜 시대에 따라 아름다움은 변하는 것인가.. 예술은 그 시대가 결핍한 이상을 보여준다. 보링거라는 사람은 추상화에서 차분함을, 실제를 묘사한 그림에서는 역동성을 의미한다고 했다. 모든 스타일은 똑같이 타당하며, 모두 결핍을 의미한다. 세상의 스타일이 다양한 것은 내적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스타일에는 우열을 매길 수 없다.

5. 건물의 미덕

더 정교하게 정의된 미덕, 또 건축 농의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미덕들을 알고 있으면, 우리가 직관적으로 사랑하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재창조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질서-

질서 잡힌 거리는 더 높고 집단적인 구도를 위해서 개인적 자유를 내어놓는 일의 유익을 가르친다. 질서는 삶을 행한 충동과 동의어이다.

-균형-

건물에서 대조적인 요소들 사이의 균형이 주는 매력을 설명하려면 건축을 넘어선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균형잡힌 작품들에 매혹을 느끼는 것은 그 시각적인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독특하게 인간적인 선 또는 성숙의 느낌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우아-

우아란, 건축물이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고 경제적인 모습으로 저항의 행동을 할 때 드러나는 특질이다. 자신이 넘어선 난관늘 강조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줄때 드러난다. 문학에서도 우리는 많지 않은 단어를 빈틈없이 배치하여 큰 생각을 실어나르는 신문에 감탄한다.

또한 우아란, 숨은 동기가 없는 친절의 표시다. 그 같은 친절을 배풀려면 특별히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자랑하지 않는것. (파리 앙리 라브루스트의 비블리오테크 생트 제네비에브의 튼튼한 아치 안에서 주철로 만든 일련의 작은 꽃들..) 우리는 이런 우아한 손길을 보면 우리가 실용적으로 사리를 분별하기만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익이나 권려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도 가끔은 돌에 수도사를 조각하고 벽에 천사를 새겨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세부 장식을 조롱하지 않으려면 허약함이나 퇴폐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부드러운 명을 찬양하는 태도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일치-

건물은 말을 할 때 절대 한 목소리로만 하지 않는다. 건물은 독창자라기 보다는 합창단이다. 건물은 다중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서 불화와 불협화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협화음이 울릴 기회도 생긴다.

-자기 인식-

나쁜 건축이란 결국 설계만큼이나 심리파악의 실패이기도 하다. 건축에서는 이런 경향이 물질로 표현되지만, 다른 영역으로 가면 엉뚱한 사람과 결혼을 한다거나, 어울리지 않는 일자리를 고른다거나, 재미없는 휴가 예약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슬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상황에서 화를 낸다. 적당한 위생시설과 가로등을 도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래된 거리를 그냥 부수어버린다. 우리는 만족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다가, 슬픔으로부터 그릇된 교훈을 배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른 곳들은 겸손과 끈기를 갖춘 드문 건축가들의 작품이다. 그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에 관해 캐묻는다.

건축에는 도덕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강요할 힘이 없을 뿐이다. 건축은 법을 만드는 대신 제안을 한다. 우리 더러 그 정신을 모방하라고 명령하기보다는 권유하며, 자신을 악용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진정하게 눈을 뜨기 위해서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가에 대한 통찰이 깔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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