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낸시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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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내용의 동화이지만 때로는 이런 뻔한 일들이 참 고프고, 더욱 감동스럽다. 순수한 아이들과 따뜻한 어른들이 만드는 세상을 꿈꾼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자주 혼동하는 우리는 고양이 낸시와 낸시를 사랑하는 쥐들에게 배울 점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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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오가와 사야카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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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생존 양식

오가와 사야카의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의 생존주의를 고찰하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홍콩, 중국 등 전 지구적 차원으로 뻗어 나가는 비공식경제를 통해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오늘을 위해 사는 삶’을 그린 책이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수단화하는 미래주의적 시각에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 우리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를 되짚어 본다. 시장 경제의 무대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 현시점에서, 유통과 통신이 대규모로 발달한 배경을 가진 주류 패러다임만으로는 해석하지 못하는 또 다른 경제 에이전시를 보여준다.


 오가와 사야카는 15년간 탄자니아 도시의 “영세 상인의 장사 관행, 사업 활동, 사회적 관계를 조사”했다. 므완자 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동아프리카의 국경을 넘나들거나 중국과 홍콩 등 탄자니아의 비공식 경제 활동의 통로가 되는 지역도 방문하여 상품의 유통 경로와 과정을 추적하는 등 다양한 현지에 들어가는 전략(going native)을 사용했다. 따라서 이 연구의 현지는 좁게 말하면 탄자니아 므완자 시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전 지구가 된다. 저자는 도시 영세 상인들의 비공식경제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세심하고 끈질긴 관찰을 통해 연구를 진척시킨다. 핵심인물인 부크와와 하디자 부부, 친한 친구였던 마레 등을 심층 인터뷰하여 그들의 삶을 둘러싼 경제적 전략의 변화를 묘사하고, 수많은 영세 상인 및 주변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자가 상업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 주요 방법론인 이 연구에서 핵심인물과의 라포 형성과 게이트 키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연구 전반에 걸쳐 인터뷰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는 므완자 시에서 영세 상업을 하는 상인을 중심으로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부분이 20-40대의 남성이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상인들이 대개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행위 주체들을 둘러싼 여성이나 중년층의 목소리, 혹은 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면 그들의 노동관과 경제적 질서를 더욱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책은 시간을 균질적이고 직선적으로 인식하는 ‘우리’와 달리, 시간으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직접 체험의 원칙을 갖는 피다한족이나 가능한 한 최소의 노력을 하는 통궤족은 근대화 이후 ‘미래를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오늘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진 태도와 몸놀림이 이 책의 주요 질문이다. 


 므완자 시의 영세 상인들은 공식 경제에 포함되지 않는 경제 활동에 종사하지만, 도시 인구의 약 66퍼센트를 차지하며 사실상 “사회 경제의 주류를 이룬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수입원을 일원화하는 것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입원을 여러 개 가져 그때그때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의 시간은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착실히 저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지금 당장 가능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탄자니아인들이 행하는 경제 활동은 시장의 불확실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이들은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시장은 그들에게 있어 기회를 제공하며, 상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운을 맡긴다. 고정적인 삶이나 관계를 거부하고, 상업 활동의 조직화나 거대기업화를 부정하며 자율적인 경제 영역을 지켜낸다. 그날그날의 실천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전략은 근대화가 낳은 개인, 개량화가 가능한 삶을 사는 미래주의적 삶의 신화를 해체한다. 도시 영세 상인들은 끊임없이 현재를 유보하기만 하는 미래주의에 도전하여 ‘오늘’의 불예측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통제한다.


 ‘신뢰’는 비공식경제를 영위하는 탄자니아의 도시 영세 상인의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이지만, 그 모습은 결코 단일하거나 단층적이지 않다. 동아프리카 국가와 교역하는 영세 상인들은 장사가 될 법한 특정 상품에 우르르 몰려들고, 이 때문에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 또 다른 판매 상품을 찾아 다시 우르르 몰려간다. 몰려드는 경제의 상인들은 시장이 포화상태가 될지언정 서로에게 돈벌이가 될 만한 물건이나 장사 전략을 숨기지 않는다. ‘일은 일’이라는 장사관을 가진 이들에게 동료와의 관계와 신뢰 형성은 매우 중요하므로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히가시 가즈마사가 중국의 몰려드는 경제 문화를 “신뢰와 협력의 결여”로 설명한 것과 사뭇 다르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몰려드는 경제는 히가시의 분석과는 정반대로 상호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중국 상인들과 거래하는 아프리카 무역상들은 비자 취득, 상품 매입, 중개업자와의 협상 등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적 접촉과 충돌을 경험하는데, 이때 무역상들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누구에게나 열린 신뢰”를 보여준다. 무역상은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대면 교섭을 하고, 경험으로 터득한 전략을 사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 이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중국”이라는 위기감에서 발현된 생존 전략이며, 이때 무역상과 중개인 사이, 무역상과 구매자 사이 등 다양한 관계의 상호 신뢰는 거래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거래 과정에서 단계 단계를 통제하고 계산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므완자 시의 도시 영세 상인들은 특유의 장사 관행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사업을 벌인다. 근대화가 낳은 균질한 시간성과 미래주의적 신화를 거부하고 오늘을 사는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사업은 다양한 네트워크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양상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오가와는 이를 총체적으로 포착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식경제 양상은 구조나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극단적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자기 책임의 원칙을 바탕으로 무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주류 인류학의 비판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오가와의 연구에서 다양한 도시 영세 상인들은 불확실성에 자율적으로 대처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패와 좌절의 예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비균질적으로 보며 근대화의 신화를 거부한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지만, 이들의 패배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국가나 사회는 개입을 최소화하며, 이 시스템에서의 성공이 모두 개인의 능력 덕분이듯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개인에게만 있다. 

 

 한편 인류학자 고든 매슈스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핵심지인 홍콩의 청킹 맨션을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위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라고 분석했다. 주류 인류학은 국가의 시장 통제를 최소화하는 이 시스템은 결국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배를 불리고 패자를 주변으로 밀어낸다고 보지만, 매슈스는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오가와의 연구도 매슈스의 관점과 비슷하게 평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슈스의 논의를 빌리자면, 오가와가 마주한 탄자니아 사람들 역시 청킹 맨션의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상황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생존 양식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영세 상인들에게 불확실성이 곧 기회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저 스스로 ‘변신이 빠른 사람’이 되어 발 빠르게 대처”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삶의 논리로 끌어오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점이 매우 흥미로운 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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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2016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부문 선정도서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 / 산지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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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이곳”을 오가는 양능적 인류학자



 권헌익은 베트남 전쟁 이후 냉전의 질서 속에서 등장한 유령 담론을 풍부한 질적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총체적으로 해석한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인류학적 논증을 꼼꼼히 수행한 민족지로, ‘양능적(ambidextrous)’인 인류학자가 가진 학문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의 주제이자 연구대상은 전쟁 유령 현상과 생존자들이 유령에 행하는 의례이다. 이전까지 주로 신화적이고 수사적인 틀에서 종교나 의례연구 정도에 그쳤던 유령은 기존의 사회이론 내에서 해석 가능한 대상이 아니었다. 슈미트는 유령 현상을 “집단적 망상”으로 치부했고, 뒤르껨은 유령이 명백히 가지는 사회적 기능을 간과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학문적 전통에 반박하며 사회학적 연구 영역에 속하지 않았던 유령의 분명한 생명력에 주목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유령은 단순히 수사적이고 현대적인 상징이 아닌 자연적인 존재이며,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다. 짐멜의 ‘이방인’은 물리적으로 가깝지만 관계상으로 먼 정체성을 뜻하는데, 저자는 유령을 이방인과 매우 유사한 개념으로 보고, 사회적 정체성을 밝히는 주변적 배경으로 해석하여 사회이론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유령은 구체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행위 주체이며 설명 가능한 존재가 된다.


 조상이 소금을 너무 많이 먹으면 자손이 목이 마른다는 은유나 혼령에게 몸을 빌려주는 영적 경험 등은 산 자와 망자가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유령은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기도 하고, 도움을 준 자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하며, 산 자들의 도덕적 규범이나 물질세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령은 애착이 있는 공간에서 강제로 이탈된 폭력적인 죽음의 증거로써, 유령을 둘러싼 베트남인들의 의례 행위를 분석하는 것은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며 보여주는 문화적 힘과 가능성을 포착하게 한다.


 전쟁은 비정상적이고 무차별적인 대량의 죽음을 양산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장례식은커녕 유해를 수습하는 일도 어려웠다. 유해를 수습하여 상을 치러줄 자손도 한꺼번에 학살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가는 국민들이 가진 학살의 기억을 망각시키기 위해 특정한 죽음을 선별하여 ‘기억할 것’과 ‘잊어버릴 것’을 제시했다. 재생력 있는 죽음, 기려야 할 죽음은 공적인 차원에서 애도하며 영웅적 사망증서를 발부하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반하거나 재생력이 없는 죽음은 철저히 배제한다. 사람들은 죽음과 학살의 기억을 강제로 잊어버린 채 탈사회주의를 경험해야만 했다.


 베트남인들의 의례는 공적인 차원에서 말하지 못하는 애도를 표현하고 그들이 가진 죽음과 학살의 기억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문화적 가능성과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조상을 향한 의례는 물론, 유령을 위한 의례도 수행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양능적인 신체는 개인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국가가 억압했던 학살과 죽음의 기억에 전면적으로 도전하여 개인적 차원에서, 가정 내·외부의 공간에서 죽음의 ‘말하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무너진 사당을 재건하거나 가내 공간에 ARVN 병사로 복무했던 아들의 사진을 올리는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애도를 표현하지 못해 아픔을 겪었던 전쟁 생존자들은 “학살의 기억에 대한 학살”, 즉 “제2의 학살”에 대항하여 국가가 지우고자 했던 증오와 반감, 비통의 자취를 적극적으로 말한다.


 그리하여 ‘기념’은 그 자체로 역사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는 행위가 된다. 이같이 베트남인들이 가진 특수한 문화적 질서는 그것이 가진 가능성과 힘을 환기한다.


 저자는 직접 수집한 풍부한 질적 증거로 해석을 뒷받침하며 인류학적으로 논증한다. 다낭 지역을 비롯한 중부 베트남을 중심으로 현지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다양한 질적 자료를 수집했다. 익명의 해안 공동체 껌레에서 다양한 유령 조우 일화를 수집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정에 초대받아 가내 공간을 관찰했다. 전쟁 피해자이자 생존자 랍의 생애사를 채록하고, 유령 연꽃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유령들 간의 계보도 그려냈다. 의례에 참여하여 영혼의 무게를 알 수 있다는 소금물을 마셨고, 마을 사람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관 제작자를 만나 시장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를 들었으며, 심지어는 영매를 통해 직접 신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령을 둘러싼 모든 행위자의 다각적인 목소리를 세세히 수집하여 “그곳”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적 논증은 결코 현장을 재연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시간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거시적 맥락을 읽는 사회적·정치적 시각도 간과하지 않고 가져오는데, 특히 기존의 이론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학문적 패러다임을 뒤트는 작업을 통해 민족지의 총체적 시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냉전 이데올로기는 전쟁 유령을 해석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냉전은 단순한 이념 전쟁이 아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총성이 울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 베트남 등에서 인종 전쟁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며 서구권과 달리 무차별적이고 비정상적인 죽음이 난무했다. 저자는 이런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냉전 연구가 서구 중심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갈등’ 정도로만 해석되는 것을 비판하였다. 지배적 담론 속에서 그동안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냉전의 다양한 층위를 상당한 질적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짚어내며 베트남의 의례를 둘러싼 담론과 실천의 함의를 밝힌다.


 ‘네트워크’라는 개념 역시 저자가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을 비틀어 본 예시가 된다. 일반적으로 정보화 시대의 기술적 용어로 해석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광범위하게 조직된 네트워크인 망 르어이(mang luoi)는 이러한 기존의 틀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학자들은 정보 기술의 발달로 구체적인 영토를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냉전과 전혀 다른 양상의 초국가적인 ‘네트워크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미 베트남 전쟁에서 민중들이 꺼 소(co so)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적 경험을 했음을 지적한다. 전쟁 당시 주요한 역할을 했던 광범위하고 비공식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의 맥락을 읽어내며 기존의 지배적 담론과 서구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지식 구조의 편협한 서사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음을 예증한다. 


 권헌익은 유령이 가진 명백한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여 산 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행위 주체로 재해석했다. 기존의 사회이론은 유령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이 민족지는 유령 현상이 가진 역사적·정치적·사회적 함의를 총체적으로 해석하며 ‘사회적 사실’을 인류학적으로 논증한 것이다. 특히 다층적이고 풍부한 질적 자료는 독자를 “그곳” 베트남으로 데려다 놓았으며, 이 자료를 해석하는 이론적 작업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아가 기존의 서구 중심적인 학문적 패러다임을 빗겨나가는 분석으로 유령의 실체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베트남인들의 신체가 가정 내부의 조상을 기리는 의례와 외부의 유령을 향하는 의례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던 것처럼, 저자도 “그곳”과 “이곳”을 오가며 미시적 자료와 거시적 담론을 한데 묶어 해석하는 양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현지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만든 질적 자료를 학문적으로 다시금 해석하고 분석하여 하나의 문화적 실체를 담은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양능적인 인류학자와 민족지가 가진 가없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텍스트

권헌익. 2016.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박충환, 이창호, 홍석준 옮김. 산지니.

참고문헌

권헌익. 2012. 『학살, 그 이후』. 유강은 옮김. Archive.


※ 제목과 본문의 "그곳"과 "이곳"은 클리퍼드 기어츠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에서 가져온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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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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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시각, 특히 아동과 미혼모, 이주 여성 등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약자’를 둘러싼 기이한 구조와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지형을 꼼꼼히 짚는 재미있는 책. 사회학 보고서 같기도 하고 인류학 기술지 같기도 했지만 대중서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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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비수기 여행의 낭만과 묘미 : 한겨울의 유럽 여행 에세이
하연래 / 책쥬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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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겨울은 짧다. 오후 4시면 해가 지는데 게다가 춥기까지 하다. 내가 처음 도착한 유럽은 1월 말의 빈. 몸집만한 이민 가방을 끌고 드르륵 드르륵 돌길을 걷자니 인터넷에서 싸게 산 캐리어 바퀴가 견디지 못하고 헛돌기 시작했다. 아직 오후 5시밖에 안 되었는데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거리에 사람은 없고 북역 바로 근처라던 내 숙소는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으로 호기롭게 떠났는데, 정말 이 춥고 삭막한 나라에서 1년이나 잘 지낼 수 있을까?



<비수기 여행의 낭만과 묘미>는 저자가 한겨울 유럽에 다녀와서 쓴 여행 에세이이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국, 아일랜드, 에스토니아를 여행하며 든 단상을 책으로 담았다. 여행 일정 순이 아닌 주제별로 순서를 정해 책을 엮어 앞 장에서는 탈린에 있다가도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는 더블린으로 떠나기도 한다. 전자책으로만 출간되어 지하철에서, 침대에 누워서, 카페에서 음료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로 금방 뚝딱 읽었다.



한장 한장, 겨울 유럽에서만 겪을 수 있는 저자의 경험과 거기에서 오는 단상들이 나를 유럽으로 데려다 놓았다. 나도 겨울에 유럽에 있었지. (물론 나는 사계절 내내 유럽에 있었다.) 나도 겨울에 더블린에 있었고, 런던에 있었고, 빈에 있었지. 아, 탈린에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왜냐면 모든 것이 하얗다. 세상이 순결한 한덩어리였다. 천지합일. 물아일체. 그런데 이것은 구름이 땅을 따라간 게 아니라, 땅이 구름을 닮음으로써 이루어진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구름이 뿌린 눈으로 세상이 구름을 닮게 되었다. 또 다시 말해, 구름이 <자화상>을 완성했다.”

종종 혼자 여행을 감행할 때가 있다. 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듦으로써 사색하고 글 쓸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출발은 늘 여행에 대한 환상이었다. 기차 창 밖으로, 버스의 창 밖으로, 그리고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그 풍경이 주는 설레임이 좋았다. 혼자 턱을 괴고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사연 있어 보이는 듯한(!) 그 순간을 나는 즐겼다.



몇 번의 떠남과 돌아옴 이후에 깨달은 건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고, 생각보다 나는 여행지에서 사색하지 않았고(ㅋㅋㅋ) 글 쓰는 일은 평소보다 더 적었다. 인간관계에 스킬이 필요하듯 여행에도 스킬이 있어야 했다.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금방 지치고 나가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혼자 하는 여행에서 우울에 빠지기는 더 쉬웠다.

“나는 도취적인 상념에 젖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왔지만 결국 일상적인 것이 나를 가장 강렬하게 매료시켰다는 아이러니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떠나간 곳에서 꼭 무언가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의미를 찾아 떠났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지나고 생각하니 단 한 순간, 좋았던 기억 한 번으로도 여행은 기억 속에 남았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꼭 가봐야하는 랜드마크보다 그 날의 따뜻한 햇살이나 갑자기 퍼부어 쫄딱 젖게 만들었던 소나기, 바닷가에 앉아 먹던 젤라또 맛과 아무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했던 날이 보다 더 추억다운 추억이 되었다.



비수기에는 항상 아쉬운 점이 많았다. 오로지 미술관 하나를 보고 날아간 도시에서 비수기를 맞아 때마침 미술관 보수공사를 하는 바람에 허탕을 치기도 했고, 여름에는 훌륭한 휴양지였던 섬이 겨울에 폭풍을 맞아 배가 끊겨 육지와 단절된 채 꼼짝없이 갇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여행함로써만 볼 수 있는 풍경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설경에 폭 쌓여 잠이 든 듯한 고요함, 겨울 아침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포근함, 추위와 바람에 맞서며 오른 절벽 끝에서 만나는 상쾌함. 비수기 여행의 낭만과 묘미는 바로 비수기이기 때문에 생기는, 바로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지 않을까.

“여행의 모든 날이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귤 한 상자를 사놓으면 한두 개 정도는 곰팡이가 슬어 버리게 되듯이, 긴 여행을 한다면 하루쯤 버려야 하는 날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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