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2016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부문 선정도서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 / 산지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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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이곳”을 오가는 양능적 인류학자



 권헌익은 베트남 전쟁 이후 냉전의 질서 속에서 등장한 유령 담론을 풍부한 질적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총체적으로 해석한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인류학적 논증을 꼼꼼히 수행한 민족지로, ‘양능적(ambidextrous)’인 인류학자가 가진 학문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의 주제이자 연구대상은 전쟁 유령 현상과 생존자들이 유령에 행하는 의례이다. 이전까지 주로 신화적이고 수사적인 틀에서 종교나 의례연구 정도에 그쳤던 유령은 기존의 사회이론 내에서 해석 가능한 대상이 아니었다. 슈미트는 유령 현상을 “집단적 망상”으로 치부했고, 뒤르껨은 유령이 명백히 가지는 사회적 기능을 간과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학문적 전통에 반박하며 사회학적 연구 영역에 속하지 않았던 유령의 분명한 생명력에 주목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유령은 단순히 수사적이고 현대적인 상징이 아닌 자연적인 존재이며,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다. 짐멜의 ‘이방인’은 물리적으로 가깝지만 관계상으로 먼 정체성을 뜻하는데, 저자는 유령을 이방인과 매우 유사한 개념으로 보고, 사회적 정체성을 밝히는 주변적 배경으로 해석하여 사회이론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유령은 구체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행위 주체이며 설명 가능한 존재가 된다.


 조상이 소금을 너무 많이 먹으면 자손이 목이 마른다는 은유나 혼령에게 몸을 빌려주는 영적 경험 등은 산 자와 망자가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유령은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기도 하고, 도움을 준 자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하며, 산 자들의 도덕적 규범이나 물질세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령은 애착이 있는 공간에서 강제로 이탈된 폭력적인 죽음의 증거로써, 유령을 둘러싼 베트남인들의 의례 행위를 분석하는 것은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며 보여주는 문화적 힘과 가능성을 포착하게 한다.


 전쟁은 비정상적이고 무차별적인 대량의 죽음을 양산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장례식은커녕 유해를 수습하는 일도 어려웠다. 유해를 수습하여 상을 치러줄 자손도 한꺼번에 학살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가는 국민들이 가진 학살의 기억을 망각시키기 위해 특정한 죽음을 선별하여 ‘기억할 것’과 ‘잊어버릴 것’을 제시했다. 재생력 있는 죽음, 기려야 할 죽음은 공적인 차원에서 애도하며 영웅적 사망증서를 발부하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반하거나 재생력이 없는 죽음은 철저히 배제한다. 사람들은 죽음과 학살의 기억을 강제로 잊어버린 채 탈사회주의를 경험해야만 했다.


 베트남인들의 의례는 공적인 차원에서 말하지 못하는 애도를 표현하고 그들이 가진 죽음과 학살의 기억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문화적 가능성과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조상을 향한 의례는 물론, 유령을 위한 의례도 수행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양능적인 신체는 개인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국가가 억압했던 학살과 죽음의 기억에 전면적으로 도전하여 개인적 차원에서, 가정 내·외부의 공간에서 죽음의 ‘말하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무너진 사당을 재건하거나 가내 공간에 ARVN 병사로 복무했던 아들의 사진을 올리는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애도를 표현하지 못해 아픔을 겪었던 전쟁 생존자들은 “학살의 기억에 대한 학살”, 즉 “제2의 학살”에 대항하여 국가가 지우고자 했던 증오와 반감, 비통의 자취를 적극적으로 말한다.


 그리하여 ‘기념’은 그 자체로 역사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는 행위가 된다. 이같이 베트남인들이 가진 특수한 문화적 질서는 그것이 가진 가능성과 힘을 환기한다.


 저자는 직접 수집한 풍부한 질적 증거로 해석을 뒷받침하며 인류학적으로 논증한다. 다낭 지역을 비롯한 중부 베트남을 중심으로 현지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다양한 질적 자료를 수집했다. 익명의 해안 공동체 껌레에서 다양한 유령 조우 일화를 수집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정에 초대받아 가내 공간을 관찰했다. 전쟁 피해자이자 생존자 랍의 생애사를 채록하고, 유령 연꽃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유령들 간의 계보도 그려냈다. 의례에 참여하여 영혼의 무게를 알 수 있다는 소금물을 마셨고, 마을 사람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관 제작자를 만나 시장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를 들었으며, 심지어는 영매를 통해 직접 신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령을 둘러싼 모든 행위자의 다각적인 목소리를 세세히 수집하여 “그곳”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적 논증은 결코 현장을 재연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시간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거시적 맥락을 읽는 사회적·정치적 시각도 간과하지 않고 가져오는데, 특히 기존의 이론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학문적 패러다임을 뒤트는 작업을 통해 민족지의 총체적 시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냉전 이데올로기는 전쟁 유령을 해석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냉전은 단순한 이념 전쟁이 아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총성이 울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 베트남 등에서 인종 전쟁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며 서구권과 달리 무차별적이고 비정상적인 죽음이 난무했다. 저자는 이런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냉전 연구가 서구 중심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갈등’ 정도로만 해석되는 것을 비판하였다. 지배적 담론 속에서 그동안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냉전의 다양한 층위를 상당한 질적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짚어내며 베트남의 의례를 둘러싼 담론과 실천의 함의를 밝힌다.


 ‘네트워크’라는 개념 역시 저자가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을 비틀어 본 예시가 된다. 일반적으로 정보화 시대의 기술적 용어로 해석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광범위하게 조직된 네트워크인 망 르어이(mang luoi)는 이러한 기존의 틀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학자들은 정보 기술의 발달로 구체적인 영토를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냉전과 전혀 다른 양상의 초국가적인 ‘네트워크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미 베트남 전쟁에서 민중들이 꺼 소(co so)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적 경험을 했음을 지적한다. 전쟁 당시 주요한 역할을 했던 광범위하고 비공식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의 맥락을 읽어내며 기존의 지배적 담론과 서구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지식 구조의 편협한 서사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음을 예증한다. 


 권헌익은 유령이 가진 명백한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여 산 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행위 주체로 재해석했다. 기존의 사회이론은 유령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이 민족지는 유령 현상이 가진 역사적·정치적·사회적 함의를 총체적으로 해석하며 ‘사회적 사실’을 인류학적으로 논증한 것이다. 특히 다층적이고 풍부한 질적 자료는 독자를 “그곳” 베트남으로 데려다 놓았으며, 이 자료를 해석하는 이론적 작업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아가 기존의 서구 중심적인 학문적 패러다임을 빗겨나가는 분석으로 유령의 실체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베트남인들의 신체가 가정 내부의 조상을 기리는 의례와 외부의 유령을 향하는 의례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던 것처럼, 저자도 “그곳”과 “이곳”을 오가며 미시적 자료와 거시적 담론을 한데 묶어 해석하는 양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현지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만든 질적 자료를 학문적으로 다시금 해석하고 분석하여 하나의 문화적 실체를 담은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양능적인 인류학자와 민족지가 가진 가없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텍스트

권헌익. 2016.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박충환, 이창호, 홍석준 옮김. 산지니.

참고문헌

권헌익. 2012. 『학살, 그 이후』. 유강은 옮김. Archive.


※ 제목과 본문의 "그곳"과 "이곳"은 클리퍼드 기어츠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에서 가져온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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