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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오가와 사야카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생존 양식
오가와 사야카의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의 생존주의를 고찰하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홍콩, 중국 등 전 지구적 차원으로 뻗어 나가는 비공식경제를 통해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오늘을 위해 사는 삶’을 그린 책이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수단화하는 미래주의적 시각에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 우리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를 되짚어 본다. 시장 경제의 무대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 현시점에서, 유통과 통신이 대규모로 발달한 배경을 가진 주류 패러다임만으로는 해석하지 못하는 또 다른 경제 에이전시를 보여준다.
오가와 사야카는 15년간 탄자니아 도시의 “영세 상인의 장사 관행, 사업 활동, 사회적 관계를 조사”했다. 므완자 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동아프리카의 국경을 넘나들거나 중국과 홍콩 등 탄자니아의 비공식 경제 활동의 통로가 되는 지역도 방문하여 상품의 유통 경로와 과정을 추적하는 등 다양한 현지에 들어가는 전략(going native)을 사용했다. 따라서 이 연구의 현지는 좁게 말하면 탄자니아 므완자 시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전 지구가 된다. 저자는 도시 영세 상인들의 비공식경제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세심하고 끈질긴 관찰을 통해 연구를 진척시킨다. 핵심인물인 부크와와 하디자 부부, 친한 친구였던 마레 등을 심층 인터뷰하여 그들의 삶을 둘러싼 경제적 전략의 변화를 묘사하고, 수많은 영세 상인 및 주변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자가 상업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 주요 방법론인 이 연구에서 핵심인물과의 라포 형성과 게이트 키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연구 전반에 걸쳐 인터뷰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는 므완자 시에서 영세 상업을 하는 상인을 중심으로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부분이 20-40대의 남성이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상인들이 대개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행위 주체들을 둘러싼 여성이나 중년층의 목소리, 혹은 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면 그들의 노동관과 경제적 질서를 더욱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책은 시간을 균질적이고 직선적으로 인식하는 ‘우리’와 달리, 시간으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직접 체험의 원칙을 갖는 피다한족이나 가능한 한 최소의 노력을 하는 통궤족은 근대화 이후 ‘미래를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오늘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진 태도와 몸놀림이 이 책의 주요 질문이다.
므완자 시의 영세 상인들은 공식 경제에 포함되지 않는 경제 활동에 종사하지만, 도시 인구의 약 66퍼센트를 차지하며 사실상 “사회 경제의 주류를 이룬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수입원을 일원화하는 것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입원을 여러 개 가져 그때그때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의 시간은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착실히 저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지금 당장 가능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탄자니아인들이 행하는 경제 활동은 시장의 불확실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이들은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시장은 그들에게 있어 기회를 제공하며, 상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운을 맡긴다. 고정적인 삶이나 관계를 거부하고, 상업 활동의 조직화나 거대기업화를 부정하며 자율적인 경제 영역을 지켜낸다. 그날그날의 실천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전략은 근대화가 낳은 개인, 개량화가 가능한 삶을 사는 미래주의적 삶의 신화를 해체한다. 도시 영세 상인들은 끊임없이 현재를 유보하기만 하는 미래주의에 도전하여 ‘오늘’의 불예측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통제한다.
‘신뢰’는 비공식경제를 영위하는 탄자니아의 도시 영세 상인의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이지만, 그 모습은 결코 단일하거나 단층적이지 않다. 동아프리카 국가와 교역하는 영세 상인들은 장사가 될 법한 특정 상품에 우르르 몰려들고, 이 때문에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 또 다른 판매 상품을 찾아 다시 우르르 몰려간다. 몰려드는 경제의 상인들은 시장이 포화상태가 될지언정 서로에게 돈벌이가 될 만한 물건이나 장사 전략을 숨기지 않는다. ‘일은 일’이라는 장사관을 가진 이들에게 동료와의 관계와 신뢰 형성은 매우 중요하므로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히가시 가즈마사가 중국의 몰려드는 경제 문화를 “신뢰와 협력의 결여”로 설명한 것과 사뭇 다르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몰려드는 경제는 히가시의 분석과는 정반대로 상호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중국 상인들과 거래하는 아프리카 무역상들은 비자 취득, 상품 매입, 중개업자와의 협상 등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적 접촉과 충돌을 경험하는데, 이때 무역상들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누구에게나 열린 신뢰”를 보여준다. 무역상은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대면 교섭을 하고, 경험으로 터득한 전략을 사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 이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중국”이라는 위기감에서 발현된 생존 전략이며, 이때 무역상과 중개인 사이, 무역상과 구매자 사이 등 다양한 관계의 상호 신뢰는 거래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거래 과정에서 단계 단계를 통제하고 계산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므완자 시의 도시 영세 상인들은 특유의 장사 관행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사업을 벌인다. 근대화가 낳은 균질한 시간성과 미래주의적 신화를 거부하고 오늘을 사는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사업은 다양한 네트워크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양상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오가와는 이를 총체적으로 포착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식경제 양상은 구조나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극단적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자기 책임의 원칙을 바탕으로 무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주류 인류학의 비판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오가와의 연구에서 다양한 도시 영세 상인들은 불확실성에 자율적으로 대처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패와 좌절의 예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비균질적으로 보며 근대화의 신화를 거부한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지만, 이들의 패배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국가나 사회는 개입을 최소화하며, 이 시스템에서의 성공이 모두 개인의 능력 덕분이듯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개인에게만 있다.
한편 인류학자 고든 매슈스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핵심지인 홍콩의 청킹 맨션을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위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라고 분석했다. 주류 인류학은 국가의 시장 통제를 최소화하는 이 시스템은 결국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배를 불리고 패자를 주변으로 밀어낸다고 보지만, 매슈스는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오가와의 연구도 매슈스의 관점과 비슷하게 평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슈스의 논의를 빌리자면, 오가와가 마주한 탄자니아 사람들 역시 청킹 맨션의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상황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생존 양식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영세 상인들에게 불확실성이 곧 기회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저 스스로 ‘변신이 빠른 사람’이 되어 발 빠르게 대처”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삶의 논리로 끌어오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점이 매우 흥미로운 연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