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생긴 뒤로 네 세계가 좁아진 거야?"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내가 루실과 살게 된 뒤 예전에 하던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영화관에 덜 가고 쇼핑도 덜 하고 외식도 덜 한다고, 그런 일이 이제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를 남겨두는 데 대한 불안이 커서 안하게 된다고 말한 뒤였다. 나는 질문을 곰곰 곱씹다가 대답했다. "어떤 면에서는 좁아졌지.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넓어졌어. 주고받았어." - P107
우리는 모두 자기 개에게 홀딱 빠져 있고, 이렇게 집착을 공유한다는 점이 우리 결속감의 핵심인 듯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신생아의 엄마들이나 의대생들처럼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나이나 출신이나 직업 같은 다른 공통점ㅇ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 깊이 있는 경험으로 서로 이어진다고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대해서 알아야 하는 사실은 그들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뿐이고, 그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야하는 사실도 그게 거의 전부다. - P113
내 과거는 그들에게 무관하다. 여기에는 놀라운 자유가 있다.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잠시나마 평범한 생호라로 돌아가고, 현재에만 집중하고, 훨ㅆ니 더 즐거운 관심사를 두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얻는다. - P114
여러모로 서로 낯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친절과 열의를 쏟아내는 광경이 말문이 막히도록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 단순한 즐거움의 중요성을 새삼 알려주고, 내가 더없이 편안한 곳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좋은 이웃이란 이런 게 아닐까. - P115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 P119
부모님 은혜의 시기에 당신은 부모님을 ‘나의 믿을 구석‘이라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용어로 정의한다. - P120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 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P123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란 딸의 내면에 있는 로드맵 혹은 거울이다. 우리와 어머니의 관계에는 우리가 평생 배워온 교훈들, 우리가 과거에 걸어오다가 계속 걷기로 결정했거나 포기하기로 결정한 길들이 반영되어 있다. - P150
중독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감정들ㅇ르 눌러주는 마취제이기는 해도, 그럴 때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들로부터도 차단된다. 중독은 즐거움과 기쁨과 졸라움을 마비시킨다. 우리가 진정한 친밀감, 진짜 웃음, 진실된 통찰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마취제를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에서 가장 의미있는 측면들을 되찾을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삶을 살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 P224
열다섯 살 여자아이들이 생리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들어보라. "나 그거 해." 그들은 겁먹은 사슴 눈을 하고 속삭인다. ... 남자들은 떠벌릴 것이다. 운동장에서부딪친 상대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조심해, 나 생리 중이라고!" 하루에 탐폰을 몇 개나 쓰는가 하는 걸 가지고 허풍을 떨 것이다. - P236
섹스를 깊고 낭만적인 사랑과 등치시키다가도 또 어떤 때는 두 가지가 상호 배타적인 것처럼 말하는 문화에서 자라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메시지들이 한데 섞인다고 생각해보면(매력적이어야 해! 하지만 너무 매력적이면 안 돼! 섹시해야 해! 하지만 막 섹스하고 다니면 안 돼!), 여자들이 자기 몸에 대해서 이상하게 말하느 ㄴ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 P239
여성 해병대에서가 아니면 우리가 어디서 자기주장 펼치는 법을 배우겠는가? - P242
그동안 발전해온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이제 여자들은 사적인 관계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데 좀 더 능숙해졌다. ... 하지만 우리가 그런 신념을 철저히 내면화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우리가 그런 신념을 뼛속까지 새겨서 적절한 말을 - 가령 "싫습니다" "아쉽지만 그건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같은 말을 - 술술 내뱉게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P244
그러니, 여성 해병대를 만들자. 새벽같이 일어나서, 자긍심으로 고개를 높이 쳐들고 이층 침대를 박차고 나가자. 무력감을 떨치고, 분노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억지로라도 익히고,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남들에게 정확하게 말하는 기쁨을 배우자. - P245
만약 내가 이탈리아인이라면, 나는 훨씬 더 감당하기 쉬운 방식으로 일을 대할 것이다. 출근했다가, 퇴근할 것이다. 그러면 짠! 그걸로 일 생각은 끝일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푸짐한 저녁을 먹을 것이다.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자정 넘어서야 잠들었다가, 합리적인 시간 동안 푹 자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날 것이다. 인생은 가끔가다가 한 번씩 여유가 있는 토요일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 즐기는 것이라고 투철하게 믿을 것이다. 내가 이탈리아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걸 상상하기만 해도 나는 전율이 인다. 만약 내가 이탈리아인이라면, 나는 감정과 격정과 분노를 맘껏 터뜨릴 것이다. - P253
사람들이어떤 물건을 간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간직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잇다. 그것은 사람들이 외적인 측면과 내적인 측면에서 자기 삶을 어떻게 조직하는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 P256
물건을 버리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꼭 선택지를 도려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라는 사람의 어떤 측면을. 혹은 자신의 역사중 한 조각을. - P258
몇 달 전, 한 동료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동료가 무척 사랑한 분이었다. 그가 내 방으로 와서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반응했다. 두 가지를 물었다. 첫째, 갑작스러운 부고인지? 둘째, 연세가 얼마나 되었는지? 그가 82세라고 알려주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것은 무심결에 일말의 안도감을 드러낸 몸짓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오래 사셨네. 그렇게까지 슬픈 부고는 아니겠네." 비극과 슬픔에도 정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정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내가 저런 반응을 자동적으로 보였다는 것은 돌아보면 좀 무서운 일이다. 안도? 연세가 많으셔서? - P262
내가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한 것은, 좀 이상하지만, 요전에 남자친구와 다른 친구 둘과 함께 피자를 앞에 두고 두 시간짜리 <멜로즈 플레이스> 시즌 최종회를 시청한 날이었다. 더없이 평범한 저녁이었다. 네 사람이 모여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조와 제이크와 킴벌리에게 야유하고, 음식과 우정과 웃임이라는 동지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 속으로 느긋하게 빠져들어 두어 시간을 보내는 저녁. 특별할 것이라곤 전혀 없는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 같은 인간에게는 드문 감정인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행복하기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모두 그 방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저 내가 그것들을 알아보김나 하면 되는 거였다. 발버둥 칠 필요도, 시험을 통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안락과 기쁨이었다. - P289
그냥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까?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여자가 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평생 이런 질문들과 씨름해왔는데, 그날 저녁에 문득 그 답은 너무나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괜찮다. - P289
그 일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의 옷장 내용물이 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얽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바깥으로 드러난 모습이 내 내면을 어떻게 반영할까? - P306
자신은 지난 7년 동안 기혼자처럼 옷을 입어왔는데 이제 다가오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며, 새 옷과 화장품을 사는 데 한밑천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라고, 두 가지가 발 맞추어 가도록 하려는 시도라고, 친구는 말했다. 이것은 평생에 걸치는 과정이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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