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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3대 왕 태종은 조선이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이 등극한후 곧바로 맏아들 양녕을 세자로 세워놓았으나 양녕이 이상하리만큼 여색을 밝혀 궁중 안팎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그 중에 재상의 첩인 어리를 범하고 궁중에까지 데려와 큰 물의를 일으킨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거니와, 이러한 전말을 「『조선왕조실록』은 냉정하게도 기록하고 있다. 역사를 다루는 기록으로서 실록을 읽으면서 나는 조선왕조의 사관들이야말로 가장 냉정한 리얼리스트란 생각이 드는것은, 바로 어리를 둘러싼 양녕대군의 내적인 갈등, 그리고 이러한 문제때문에 세자를 폐하고 셋째 아들을 세자로 세웠다가 왕위를 물려주는 과정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하고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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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왕이 되어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 부디 신하들의 바른 소리를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자인 정조는 중국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공부를 끝도 없이 했지만 정작 관심은 조선의 상황에 대한 개선이었고 그런면에서 한 세기 전 농정의 개혁을 위해 애를 쓴 김육金堉(1580~1658)에 대해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정조는 문정공 김육의 화상畵像(초상화)을 보고는 찬贊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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