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로마를 지킨다‘ 는 우국의 정은 결코 암살자인 브루투스와 그 동지들만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로마를 사랑하고 그 장래를걱정한다는 점은 카이사르도 똑같았다. 다만 로마의 장래를 구상하는 본연의 자세에서 카이사르와 암살자들이 너무 다르다 보니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실행하려고 하였던 대개혁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이라는 전대미문의 지위에 취임하면서까지 행하려고 한 것은 로마라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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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연합‘ 이 철의 결속을 유지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포에니전쟁을 일치단결하여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로마 시민과 비로마 시민 사이에 서서히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컨대 직접세에 대해서도 로마 시민의 경우징병의 의무만 다하면 직접세는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라틴시민이나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속하는 부족국가나 도시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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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설계는 군사 가도의 용도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정비된 가도라면 물자 이동이나 여행자의 왕래에도최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사람이나 물자 이동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그 가도가 지나는 주변 일대의 경제가 활성화된다.
패자가 승자에게 불만을 느끼는 경우는 보편적으로 2가지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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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국권을 셋으로 나누었다고 해도 왕정인 이상, 로마의 통치권은 역시 왕에게 있었다. 그 왕이 권력을 남용하고자 한다면, 왕위가 종신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시민에게서선택된 왕이라는 자각이 없는 왕이 나타나서 왕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 실례가 7대째의 ‘오만왕 타르퀴니우스‘ 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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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 사람들은 기독교가 없던 시대에 살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뛰어난 정치체제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그후로 이들 지중해 세계 사람들은 현재의 서유럽에까지 뻗어나간 광대한제국을 여러 세기에 걸쳐 유지하면서 문명의 꽃을 피웠다.
그들 로마인들은 기독교회처럼 종교에 의해 인간성을 개선할 수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로마인은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철학이 인간성을 향상시킨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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