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시뇨리아 광장 쪽에서 가면, 폰테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으로 향하는 거리를 중간쯤 간 오른쪽에 있었다. 이 거리는이 일대의 유력자 구이차르디니의 저택이 있었다고 해서 마키아벨리 때부터 구이차르디니 거리라고 불렸다. 오늘날 마키아벨리 집의 주소는 비아 구이차르디니 18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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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시가를 뒤로하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산장이있는 산탄드레아 인 페르쿠시나로 가는 데는 길이 셋 있다. 세 갈래 길이 다 피렌체의 남부로 열려 있는 로마 문(포르타 로마나)을나가서 가루초 마을에 이르기까지 몇 킬로미터는 같지만, 거기서먼저 볼테라 가도가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이것이 제1의 길이다.
거기서 꺾어지지 않고 곧장 가면 옛 로마 가도의 하나인 비아 카시아로 들어간다. 지금은 이것도 카시아 가도라고 불리지만, 고대 로마시대의 비아카시아는 시에나가 아니라 아레초를 거쳐 로마로통했으므로, 포르타 로마나에서 시작되는 가도는 옛 카시아 가도의 갈림길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것이 제2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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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은 신화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어느 지식에든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버지는 지식을 나와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삼을 때 그 삶이 얼마나 따뜻할 것인지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참 정이 많았다. 불교적 해탈에 대해, 집착을버리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사람과 동물과 사물이 띠고 있는 온갖 의미를 늘 귀중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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