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
레오나르도 콜레티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명화, 물리, 그 공통 분모는 결국 우리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명화가 물리가 만난다? 이 교묘한 조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겁부터 났다. 명화는 명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전문적인 또는 예술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그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참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 그림이나 서양의 명화 모두 기본적인 구성요소는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었고, 물리는 어쩌면 그것들의 기초 소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화가들의 그림 한 폭에 담겨있는 의미를 여러 가지 구도를 바탕으로 세세하게 독자들에게 이해시켜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대체적으로 그 작품에서 파생되어지는 여러 물리학적인 개념들을 여자 친구인 프란체스카에게 설명해주는 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전형적인 문과 취향인 나에게 거부감 없는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주었다.(프란체스카의 입장에 가끔 공감을 하기도 하면서^^)
명화 한 점에서 우주와 에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 역학 등등의 개념들을 파생시키고 있어서 읽기에는 다소 버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바를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었다.
“물리학자는 현실의 어떤 한 측면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공식을 찾는 거야.” (p.129)
“우리는 바로 우리가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지만, 그 인생 바깥에는, 아니 그 안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천의 얼굴을 지닌 이 에너지란 물질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굴러가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 같아.” (p.161)
(남자친구의 이야기에 가끔 동조하며 듣고만 있던 프란체스카의 첫 의미 있는 발화)
“예술도 시간에 관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아니야. 이 걸작들은 전부 특정한 시대에 태어났어. 하지만 전부 영원하다고 볼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이거든. 시간의 한계와 세대라는 한계를 극복한 거지. (이하 생략), 불변하는 무엇과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거지.”(p.239)
"우리 역시 세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결국에는 같은 걸 찾는 것 아니겠어? 찾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우리들의 관점은 어쩔 수 없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절대적인 걸 찾는다는 점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거야.“(p.240)
나는 특히 위의 프란체스카의 2개의 문장에 공감했다.
그 이유는, 그림이라는 것이 화가 저마다의 다른 화풍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과거의 그려진 시점에만 초점을 두어 감상을 하는 것은 올바른 명화 감상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뒤이어 이어진 문장에서는 사람들 저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이전에 읽었던 <8개의 철학지도>가 문과생이 철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제대로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는 물리에 관심이 있는 이과생들이 명화를 통해 딱딱한 물리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가들은 이야기꾼이다. 저마다의 이야기 보따리가 다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누구나 어려울 수 있는 물리를 명화와 함께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충분히 격려를 해줄만 한 것 같다. 게다가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 뿐만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화가들의 작품도 소개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예술 접근 영역이 확대되었을 뿐더러, 지루하고 따분하다고만 물리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번역자의 이력이 참 독특하다. 자신의 전공과도 동떨어져있다고도 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양성’과 ‘상호 이해’라는 두 개의 가치로 작가와 번역자의 의도가 잘 버무려진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이 두 개의 가치가 현대의 ‘지구촌’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글로벌한 사회에서도 충분히 강조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결국 우리의 ‘삶’을 과학(물리)이라는 소재를 빌려 그려내고 있다고 내게 말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