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하나님이 만드신 하와를 처음 봤을 때
'예쁘다'라거나 '밉다'라는 판단을 하지 않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기 전 인간에게는
'좋다 나쁘다'라거나 '예쁘다 밉다'라는 판단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실 인간의 외형은 그냥 생김새일 뿐입니다.
그런데 생김새의 차이를 가지고
'잘생겼다 못생겼다'라는 차별을 두고
잘생긴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사람의 외형에까지 선악개념으로
판단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선악개념의 기준은 자기 자신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선한 것으로 여기고..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대상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예쁜 여자를 사랑하고자 하고
여자가 잘생긴 남자를 사랑하고자 하는것도
이러한 선악개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잘 생기고 예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며.. 감정에 따라 흐를 뿐입니다.
그런데 왜 꼭 인간의 감정이
예쁜 여자를 향해 움직이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 자체에까지
악이 스며들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 악은..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자가 예쁜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남자라고 하는 자신의 가치가 향상됩니다.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 역시
그 남자로 인하여 자신의 가치가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기주의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사랑을 통하여 자기만족을 꾀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도 하지만
설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 할찌라도
결국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삼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랑과 비교하면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자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날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못생긴 날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무식한 날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둔하고 게으른 날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추하고 더러운 날 사랑하십니다.
못나고 더러운 나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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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면 세가지 놀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당연히 천국에 갈꺼라고 믿었던 유명한 사람이 없다는 것


두번째는 오지 않을꺼라고 믿었던 사람이 와 있다는 것


세번째는 내가 천국에 왔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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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경험이다 ㅡ 김남준 목사

기독교 신앙은 사람을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은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까지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황폐한 마음, 망가진 인생을 고치시기 위하여 다가오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사랑 앞에서 마음이 녹아 내리는 참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주님과의 영생하는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주님과의 풍성한 사귐의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말은 많아도 인격이 천박합니다.
사랑의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능란하며 심오한 설교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힘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실어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 그 순전한 사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은혜의 샘물에 깊이 잠겼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말은 주님에 대한 진실한 증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을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진하고 깊은 사귐 속에서
신령한 은혜의 물에 잠겼던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은혜의 동산을 거닐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체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 사랑의 체험은 말과 글과 삶 속에 숨길 수 없이 묻어 납니다.

몇 해전 여름철이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어느 한적한 기도원에서
어느 신학교 학생들의 수련회에서 설교해 주도록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간 그 다음날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거기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가련한 나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말씀하시는 주님과
그 황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더 없는 친밀함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내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
그분의 임재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주님과 만남으로
함께 누리는 거룩한 사랑의 사귐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함에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그때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고도 그런 사귐 속에서 영원히 지내고 싶었습니다.
눈물과 거룩한 환희로 가득한 그런 세계에서
주님과 교제하던 마음으로 거룩한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우리는  더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더 깊은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상처주기 보다는 상처받게 하소서
우리가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기를 소원하는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바로 거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께서.. 내 모든 언행심사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말씀대로 순종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희생할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고 상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생명 주셔서... 피빛 절규로 우리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깊고도 진실하신  그 사랑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으로 막힘없이 흘러들어 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거룩하신 그분의 능력과 그 완전하신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각종 더러운 것과, 장애물을 발견하도록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단호히 제거하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황무지와 같은 우리 마음이..사랑으로 꽃피게 하옵소서.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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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세례를 받는 법

      
      성령세례를 받는 방법은 사도행전 2장 38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1) 단계로,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신 공로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롬3:20. 갈 3:2~6. 갈 3:13. 고후 5:21. 행13:38~39)
      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닌 "듣고 믿음"에 의해(롬4:11)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행하는Do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Done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행한 어떤 것이나, 행하는 어떤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이루신 공로(갈2:13. 고후5:21)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에서 나타나는 "회개"란 무엇일까요? (행2:38) 이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마음과 태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37절)
      
      (2) 단계는 모든 죄를 버리고, 우리의 삶속에서 알려진 모든 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내 마음의 변화이지만 두번째는 죄에 대하여 내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즉 죄를 사랑하고 즐기던 마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므로 우리는 성령과 더러운 죄 중에서 분명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거룩한 영이 임재하시기 위하여 더러운 곳를 청소하는 작업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더러운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청소하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려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데 정직하고도 매우 철저해야 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살피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게 해야 합니다.
      성령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앞에 나아가 나 자신을 철저히 살피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밝혀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시139:23,2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일이 밝혀지면 즉시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끈기있고 정직하게 기다렸음에도 아무런 죄가 밝혀진 것이 없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만, 이런 결정을 성급히 내려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것이라면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즉시 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많은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집회와 사경회에 참석하고, 다양한 설교를 듣고, 은사 집회에 참여하여
      오래 기도해 보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죄를 포기하지않기 때문입니다.
      어린자녀가 홧김에 책을 바닥에 던진 것을 보고 여러분이
      "그 책을 집어 오너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지만 아이가 "싫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사소한 일일까요? 
      죄는 그 자체로는  아무리 작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에게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모든 죄는 섬뜩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단계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죄를 버림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행2:38)에 나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입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버림으로써 자신을 낮춘 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인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성령이 예수께 강림한 것은, 그분이 세례받은 직후였습니다..(눅3:21,22)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자신을 죄인의 자리에 낮추셨습니다.
      성령세례가 물세례보다 앞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행10:17)
      통상적인 순서로 볼때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물세례 이루에 성령세례를 받게 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숨기지 아니하고 그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자에게 성령세례는 주어집니다.
      
      (4)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한 네번째 단계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이기 때문입니다(행 5:32)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들 
      (한가지, 몇가지, 혹은 많이, 혹은 대부분)을 행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구체적으로 듣는 행위의 배후에 놓여있는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순종이란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저 자신과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값을 치르고 저를 사셨으므로 저는 온전히 주의 것임을 인정합니다.
      저와 제가 지닌 모든 것을 받으시고 제게 원하시는 일을 모두 행하시옵소서.
      원하시는 곳에 저를 보내셔서 뜻대로 사용하옵소서.
      제 자신과 제가 지닌 모든 것을 무조건 영원히 드리오니 영원토록 주장하시고 사용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하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번제를 드릴 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레9:24)
      단위에 있던 제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사른 것처럼
      자신을 주님 앞에 온전한 번제로 드려 불이 나오는 제단 위에 자신을 누일때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으시고 불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전적인 자기 포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뜻을 모두 버립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마음을 다해 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서 자기의 뜻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일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럴때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며"(시84:1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롬 8:32)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잘아시고, 내가 가장 기쁘게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길이 나의 선택보다 훨씬 더 탁월했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단계는 목마름입니다. 이는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나타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구하는 자" 의 구함은 진정하고도 간절한 소원에서 비롯된 요청을 의미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눅11:9)
      이 가르침 앞에 나오는 끈질긴 친구의 비유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간절한 마음도 없이 일시적인 생각으로 지나가며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소원이 담긴 요청인 것이 분명합니다.(이사야 44:3)
      갈한 자가 물을 요구하며  물! 물! 물! 외칠 때처럼 갈급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열흘이나 기다릴 정도로 간절히 사모했더니
      "오순절이 이르매"(행3:1) 성령에 갈급한 영혼의 소원이 완전히 채워졌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것을 얻어야 겠다고 갈망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때에
      성령 세례는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6) 단계는 오직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명한 성령 세례를 주시도록 구체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때 반드시 제일먼저 확인해야 할 일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른 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 성령 세례 없이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성경지식이나 훈련이나 
      노련하게 꾸며낸 방법으로, 어떤 것을 추구하는 한 성령,세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고백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상당히 많은 목사들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분명한 의미를 피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함으로써, 정작 자신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못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조차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길 원하는,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자신이 입맛이나 취향에 맞는 성경해석만 붙들고 주장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에 의존했더라면 구할 수 있는 많은 영혼들의, 영원한 장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성령 세례에 대한 소원이 강력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성령 세례를  구하는 동기 역시 올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숭고하고도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우리의 저급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기 위하여 받기 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옭아매는 가장 교묘하고 위험한 덫 가운데 하나는
      성령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와 성공을 위해 성령 세례를 받기 원했던 시몬(행8:18~24)은
      그 소원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거룩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말씀합니다.
      
      어떤 집회에서 성령세례로 설교하고 있을때 한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성령세례에 대하여 설교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청중들에게 성령세례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꼭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사람이 말하기를 "하지만 그것은 오순절 전의 일이지요."
      나는 대답하기를"사도행전 4장 31절이 언제 일어난 일입니까?
      오순절 전입니까? 이후의 일입니까?"
      "물론 오순절 이후의 일이지요."
      나는 다시 묻기를 "사도행전 8장은 언제 일어난 일입니까? 오순절 전입니까? 이후의 일입니까?"
      "물론 오순절 이후의 일이지요."  .........  바로 그렇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인 성령 세례는, 오순절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역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하늘나라의 능력이며 말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7)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나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단계를 따르지 못하여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에 의해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고 말씀하십니다.
      뿐 아니라 6~7절에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약속을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눅11:13. 행2:38~29)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4:6. 막11:24. 요일 5:14~15 )
      성령 세례에는 분명한 표적이 따를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행4:31. 8장:15. 행9:17,26 행10:44~46. 행11:15~16. 행19:6)
      위의 7가지의 관문을 통과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바로 성령세례를 구하시거나
      은밀한 골방을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R.A 토레이의 저서 "성경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격과 사역" 등 
      두권의 책에서 발췌했으며 다소 긴 내용을 짧게 함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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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움직이는 나뭇잎이

      바람의 흐름을 말해 주고

      바람은 함께 하고 계시는

      주님의 숨결을 느껴게 해줍니다.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오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푸른 생명으로 가득찬 계절이

      이제 그 성숙을 위해 깊이

      더 힘차게 일어나는 6월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자연 속에 있었습니다.

      자연속에 담겨있는 생명들이

      그분의 숨결과 역사를 보여주는 것같습니다.


      특히 불어오는 바람은 감사였습니다.

      바람은 깊이 저를 감동케 하는 음악이었고

      저를 평화롭게 해주는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손길이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약에 루아흐..

      바람으로 말씀되시는 성령님

      그분은 그 백성의 역사 속에서

      늘 멈추지 않고 불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흙무더기였던 우리의 콧가에 찾아오셔서

      생명을 주셨던 그 바람

      그 바람은 창조의 바람입니다.


      광야 거친 길을 걸어갈 때도

      이미 홍해의 수면 위에 불어와

      길을 내셨던 그 구원의 바람은

      또한 늘 그들을 지키셨던 보호의 바람입니다.


      저 마가 다락방에서

      그토록 소망하며 바라며 기대하며

      기도하고 간구하던 제자들에게

      찾아온 바람은 불의 갈라지는 혀같은 바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이 좀 더 맑아져 있어서

      그 성령의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늘 우리 주위를 불고 있는 이 바람가운데 

      생명의 탄생과 보호와 생동력을

      더 풍성히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어쩌면 따스한 바람에 꽃 피우는 자연이나

      그 바람에 날갯짓하며 날아오는 새들이나

      생명의 노래를 하는 만물보다

      우리는 더 무디어진 자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숨쉬는 순간순간도

      그분의 창조로 말미암고

      역사를 통해서

      바람으로 인해 살아 있음 인데...


      이제는 이 성령의 바람으로 인해

      늘 무의식 가운데하고 있는 나의 호흡 중에도

      내 속의 악한 기운이 밖으로 토해져 소멸되고

      거룩하고 아름다움 생명력만이 가슴 깊이 채워지는

      그런 호흡을 하고 싶습니다.


      이웃의 숨결 속에서도

      사랑하시기에 참고 기다리시며

      순간 순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그 바람을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그 힘찬 흐름을 느끼고 싶습니다.


      내 코끝에 호흡이 있는 순간까지

      그 성령님으로 늘 충만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니 영원히 ....


      여러분의 6월 한달도

      바람 속에서 주님을 만나시고

      호흡 가운데 주님을 느끼시며

      늘 풍성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늘 성령님의 생명력 가운데

      푸르고 싶은 푸른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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