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자신의 주인공을 매우 어두운 인물로 묘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주인공은 지레 늙어 버린 사람이고 불치병(손의 마비)을 앓고 있는 환자이며 침울하고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가슴은 따뜻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화가는 재능은 있을지언정 생애 단 한 번도 자신이 꿈꾸어 온 형태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본 적이 없고, 그 때문에 항상 고통스러워하는 실패자였다.

나는 그가 여주인공으로 자신의 전() 약혼녀인 안나 바실리예브나 코르빈 크루콥스카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다. 그 순간에 나는 내 이름 역시 안나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이 이야기가 나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새 소설의 주제는 얼마 전에 안나 바실리예브나가 해외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 느낀 인상에 의해 생겨난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최근에 그 이야기를 내게 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왜 불가능하죠?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정말 당신의 아냐가 머리는 텅 비고 치장만 요란한 여자가 아니라 인정이 있고 착한 마음을 지녔다면, 당신의 화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가 병들고 가난하니까? 외적인 것, 뭐 부귀라든가 하는 것만으로 사랑할 수가 있는 건가요? 그리고 뭐가 그녀의 입장에서 희생이라는 거죠?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면, 스스로도 행복할 것이고 결코 후회할 리가 없을 거예요!

“1분만 그녀의 입장이 되어 봐 주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 화가가 나라고 상상해 보오.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내 아내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고 상상해 보오. 당신은 내게 뭐라고 답하겠소?”

“나라면 당신에게, 당신을 사랑하고 일생을 다해 사랑할 거라고 답할 거예요!”

그 잊지 못할 순간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내게 해줬던 그 사랑에 가득 찬 다정한 말들을 여기 옮겨 적지는 않으련다. 내게는 너무도 성스러운 말들이니까……
도스토엡스키의 사랑고백과 안나의 허락이 이루어지는 이 장면이 나의 마음에 가장 깊게 남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나도 그런 사랑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모든 걸 과장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 둘 사이의 차이라는 건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굳게 사랑한다면, 벗이 되어 영원히 행복할 거예요. 제가 무서운 건 다른 것 때문이에요. 재능 있고 지적이고 교양 있는 당신과 비교할 때 배운 것 없고, 물론 고등학교에서 은메달을 받긴 했지만 말이에요(당시에 나는 그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당신과 대등하게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도 않은, 어리석은 여자애를 인생의 반려자로 택한 사실이 날 두렵게 해요. 당신은 곧 나를 속속들이 알게 될 거고, 내가 당신의 사고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실망하게 될 거예요. 바로 이런 차이가 다른 온갖 불행보다 더 못한 거예요!
상대와 나를 비교할 때는 나의 부족함을 먼저 봐야 합니다. 상대의 장점을 보고 나의 단점을 보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상대의 단점을 보고, 나의 장점을 보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안나는 도스토엡스키의 장점인 재능, 지적, 교양을 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학력을 봤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매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은 그야말로 다양했지만 순결하지 않거나 외설적인 주제를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녀로서의 나의 순진함과 수줍음을 내 약혼자보다 더 절도 있고 부드러운 태도로 감싸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결혼한 뒤에(1867년 5월 17일) 쓴 그의 편지를 읽어보면 나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신은 당신 마음과 가슴의 작은 씨앗들과 보배들이 없어지지 않도록, 아니 그 반대로 풍부하고 화려하게 자라서 꽃을 피우도록 하기 위해 당신을 내게 맡기셨소. 성숙하고 한결같으며, 마음의 빛을 흐리는 모든 미미한 것들로부터 구원받은 온전한 모습의 당신을 내가 신께 내세움으로써 내가 지은 크나큰 죄를 속죄할 수 있도록, 신이 당신을 내게 주신 것이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편지인가요? "신은 당신 마음과 가슴의 작은 씨앗들과 보배들이 없어지지 않도록, 아니 그 반대로 풍부하고 화려하게 자라서 꽃을 피우도록 하기 위해 당신을 내게 맡기셨소." 이 세상의 모든 부부는 서로에게 이렇게 맡겨진 사람들입니다. 서로 가지고 있는 씨앗, 보물,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구원하는 메시아입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구원자이고, 메시아이고, 하나님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는 존재입니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은 영원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질투심 때문에 큰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와 유사한 괴로운 느낌을 그가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나는 생각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와 내가 함께 꿈꾸었던 화목하고 굳건한 가족을 만들 수 있는 길은 오직 남편과 지속적인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것뿐이다. 그것은 결혼을 앞둔 축복받은 몇 주일 동안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것이고, 우리의 모스크바 생활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의 사랑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두세 달만이라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내가 겪은 불안과 기분 나쁜 일들로부터 마음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평생을 잘 지내게 될 것이고,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육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 교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정신에서 시작해서 육체로 가는 것입니다. 

남편은 내게 너무도 흥미롭고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어서 그의 생각과 말들을 기록해 둔다면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읽어 내는 것이 좀 더 쉬울 것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외국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내가 관찰한 것들을, 아니면 어쩌다 내 속에 생겨나는 회의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일기는 내 모든 생각과 희망, 걱정들을 믿고 말할 수 있는 친구였던 셈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너무도 신기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나의 배우자를 연구해야 합니다. 언제 기뻐하고 언제 슬퍼하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따야 할 박사학위는 바로 나의 배우자에 대한 박사학위입니다. 그 박사학위가 최고의 레벨입니다. 관찰하고 나의 마음과 온 에너지를 투입해서 배우자를 연구합니다. 그의 말을 연구하고, 그의 생각을 연구하고, 그의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내 일기 속에 나의 배우자의 모든 스토리가 기록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기가 죽기 세 시간 전까지도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아무 일도 손에 잡질 못했고, 아기의 요람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무섭도록 불안했다. 그리고 우리의 어두운 예감은 적중하여, 5월 12일(구력) 낮에 우리의 소중한 소냐는 숨을 거두었다.

남편과 나는 매일같이 아기의 무덤을 찾아 꽃을 놓고 울었다. 귀하디귀한 우리 아기와 헤어지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그만큼 진정으로, 마음 깊이 우리는 그 아이를 사랑했고 수많은 꿈과 희망을 그 아이의 존재에 걸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아픔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고통을 경험하는 부모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은 오직 그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통일원리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슬픔이 바로 '자녀의 죽음'입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아픔을 우리는 경험하기 힘들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아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픔을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제네바를 거의 증오에 가깝도록 싫어했다. 그는 소냐의 죽음을 제네바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의사의 자기 과신, 유모의 과실 탓으로 여겼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예전부터 스위스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힘겨운 고통을 겪을 때 그들이 보여 준 냉담함과 박정함으로 인해 이 악감정은 더욱 커졌다. 그들이 보인 박정함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이웃들은 우리가 딸을 잃은 사실을 알고서도 내가 큰 소리로 울지 않도록 부탁하러 사람을 보냈다. 신경에 거슬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려 애썼고, 신이 우리에게 내리신 시험을 공손히 받아들이자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비애로 가득 차 있었다. 온갖 신산을 다 겪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기라도 해야 그 비애를 덜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불행한 내 남편에게 가슴 가득 연민을 느꼈고, 그토록 비극적인 그의 인생에 그와 함께 목놓아 울었다. 우리가 함께 겪은 절절한 고통과 마음을 나눈 대화를 통해, 나는 그의 병든 마음속 저 깊은 곳까지 헤아리게 되었고, 우리는 더욱 긴밀하게 결합된 것 같았다.

나 또한 힘겹게 고통을 견뎌 냈다. 우리 딸을 생각하며 눈물도 수없이 흘렸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희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자비로우신 신께서 우리의 고통을 가엾게 여기시고 우리에게 새로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뜨겁게 기도를 드렸다. 손녀의 일로 몹시 상심하셨던 어머니도 새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시며 나를 위로하셨다. 기도와 희망의 힘으로 나의 슬픔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신이 주신 시련을 이제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다른 어떤 것으로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있다면, 새로운 생명으로 가능합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것이죠. 자녀를 찾아서 자녀와 함께 살때 비로소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자, 우리 가정엔 다시 행복이 깃들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딸아이에게 특별히 자상했다. 아이에게 매달려 지냈고, 자기가 직접 목욕을 시키고, 손에 안고서 자장자장 잠을 재우며 너무나 행복해했다. “아, 존경하는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자네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나. 왜 아기가 없단 말인가. 자네에게 맹세컨대, 인생의 행복 중 4분의 3이 거기에 있다네. 나머지 다른 것들엔 겨우 4분의 1이 있을 뿐이지.” 그가 스트라호프에게 쓴 편지 구절이다.
인생의 행복 중에 4분의 3이 바로 자녀를 통한 기쁨입니다. 가족을 통한 기쁨입니다. 가족 없이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대문호인 도스토엡스키도 바로 '가정'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이 우리에게 가장 큰 아픔도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종교에서 가장 힘든 수련이 가정에서 하는 수련입니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 택한 유형지에서 보낸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었다. 맏딸의 죽음, 남편의 병, 항상 돈에 쪼들린 생활, 보장 없는 일, 룰렛 도박에 대한 남편의 불운한 집착과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사실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시련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더욱 친밀해졌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의 부부 생활이 그렇게 행복했던 것이다.
시련은 부부를 더욱 소중하게 합니다. 사랑은 시련 속에서 꽃이 핍니다. 시련이 없는 부부에게 사랑은 무엇일까요? 

모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못 알아볼 정도로 성격이 좋아졌다고, 부드러워지고 선량해지고 사람들에게 관대해졌다고 내게 말했다. 그에게 익숙한 완고함과 참을성 없는 성격은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스트라호프의 기억을 빌려 보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종교적인 주제에 관해 쉼 없이 대화를 이끌었다. 그뿐이 아니다. 태도도 완전히 달라져서 아주 부드러워졌고, 가끔은 그야말로 온화한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얼굴 윤곽까지도 이러한 마음 상태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입술에는 상냥한 미소가 흘렀다…… 가장 훌륭한 기독교적 감정이 그의 내부에 살아 있음이 분명했다. 이 감정들은 그의 창작 속에 점점 더 빈번히, 그리고 선명히 표현되었다. 그는 이렇게 해외에서 돌아온 것이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지금의 자리에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신의 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국에서 벗어나서 외국에 나가서 애국심을 갖게 됩니다. 집을 떠나야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여행에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도스토엡스키는 안나와 함께 떠난 여행이기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인생의 여행에 동행할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는 그 순간 우리는 먼 여행을 다녀온 것입니다. 그 여행 속에서 우리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이 가공의 빚들을 갚기 위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과도하게 일해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그 자신과 우리 가족 모두 안락함이나 풍요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 절박하게 필요한 것들도 포기해야만 했다. 언제나 우리 머리를 무겁게 짓누른 빚 변제에 관한 걱정만 없었더라도 14년간의 우리 부부생활은 더욱 행복하고 풍요롭고 평온했을 것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그의 첫 중편소설인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소설 플롯을 세밀하게 숙고하고, 모든 세부 사항을 검토한 후 허겁지겁 서두르는 일 없이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적이 생애 단 한 번도 없었다. 운명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에게 그런 큰 행운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설령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언제나 있었던 꿈이었다!
지금 저도 종교학자라는 꿈을 품고 있습니다. 한 시간도 공부를 하기 위해 온전히 투입할 시간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공부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박사학위도 받았지만, 아직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내와 대학원 입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비용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아들 3명이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저에게는 도전이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죽어가고 있답니다!” 울음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면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말했다. “그녀 없이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녀 없이 제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녀는 저의 전부란 말입니다!”

선량한 이 성직자의 아내는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울지 말아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절망하지 말아요. 주께선 자비로우세요. 당신과 아이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으실 겁니다!” 그분의 진심 어린 염려와 설득이 남편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떨어진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그녀가 염려해 주던 것을 기억할 때마다 항상 그녀에게 감사했고 또 그녀를 무척 존경했다.

소중한 남편도 너무나 가여웠다. 누가 그를 사랑할 것이며, 누가 그를 염려하고 그의 고통과 슬픔을 나누어 가지겠는가? 나는 눈짓으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와 아이들을 가까이 오게 해서 입을 맞추고 신의 축복을 빌었다. 그리고 내가 죽을 경우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에게 주는 글을 썼다. 그런데 고비를 맞기 전 마지막 이틀 동안 어떤 희미한 마음의 평정 같은 것이 찾아왔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도, 아이들도 불쌍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마치 내가 벌써 이 세상을 떠난 것같이 느껴졌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2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나이는 36살이셨습니다. 남은 자식 딸 세 명에 아들 한 명을 평생 키워오셨습니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막노동과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절대 저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키워주셨습니다. 지금 만약 제 아내가 저 세상에 간다면 나는 어떻게 아들 세 명을 키울 수 있을까요? 모르겠네요.

1880년은 대체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지난해(1879년) 엠스에 다녀온 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의 건강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좋아졌고, 간질 발작도 현저히 드물어졌다. 아이들도 아주 건강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의심의 여지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 소설의 몇몇 장들에 대해서는 자기 작품에 언제나 엄격하기 그지없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도 무척 만족해했다. 우리가 구상했던 회사(서적 판매상)가 만들어졌고 우리의 출판물도 잘 팔리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모든 일이 그런 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정황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남편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즐겁고도 약간 들뜬 기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아들 세 명이 나왔습니다. 저도 아들이 세명이기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저도 이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종교적 경험과 고뇌를 가지고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고뇌하는 영혼에게 희망을 주고, 인생을 더욱 열심히 살 수 있도록 소설을 쓸 것입니다.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도스토엡스키의 소설과 인생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생애의 마지막 해에 나는, 이 위대한 그림 앞에 서서 내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마음 깊이 감화되어 있던 그를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면 나는 기도하는 그의 마음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방에서 물러나오곤 했다. 톨스타야 백작 부인의 선물로 인해 남편이 성모의 얼굴 앞에서 희열과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었으니, 그녀에 대해 내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초상화는 우리 가족의 유물로서 지금은 우리 아들이 보관하고 있다.


1880년 12월 초에는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단행본으로 3,000부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출판은 금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발행 부수의 절반이 며칠만에 다 팔렸다. 물론 그의 새 소설이 불러일으킨 관심을 확인한 것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에게 소중한 일이었다. 이것은 온갖 불행으로 얼룩진 그의 생의 마지막 기쁨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유형에 처했던 4년 내내 이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후에 그 성경은 언제나 그의 책상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그는 어떤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회의가 들 때면 종종 이 성경을 손에 잡히는 대로 펴서 펼쳐진 부분의 첫 쪽에 나와 있는 글을 통독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지금 자신의 의심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직접 성경을 펼친 다음 내게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펼쳐진 곳은 마태복음 3장 14절이었다. “요한이 제지하며 가로되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당신께서 제게로 오십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답하여 가라사대 ‘막지 말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위대한 정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한지라.’”
도스토엡스키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과 역사가 그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종교경전을 읽고 묵상하고 강독하면서 나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14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아내에게 남편으로서는 좀처럼 하기 드문 말을 내게 했다. “기억해 줘, 아냐. 내가 당신을 언제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걸. 그리고 꿈에서라도 당신을 배반한 일이 없다는 걸 말이오.”

저녁 8시 30분에 남편은 숨을 거두었다. 체레프닌 의사는 남편의 심장이 멎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최후의 순간이 오자 나와 아이들은 절망에 목 놓아 울었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우리가 사랑했던 망인의 얼굴과 손에 입을 맞추며 무슨 말인가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놓고 저 세상에 가면서 도스토엡스키처럼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억해 줘, 미끼씨. 내가 당신을 언제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걸. 그리고 꿈에서라도 당신을 배반한 일이 없다는 걸 말이오." 안나와 도스토엡스키는 14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1995년 결혼을 했으니 지금 25년째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기적인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랑이 식는 것이 아니라,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기쁨이 넘칩니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의식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했던 나 자신의 삶이 그가 죽는 순간 끝났다는 것, 내 마음은 영원히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뜨겁게,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내 남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를 사랑했다. 나는 드물디드문 이 고귀한 도덕적 품성의 소유자가 우정으로 나를 대하고, 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에 크나큰 자긍심을 가졌다. 그를 잃은 것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었다. 진정 끔찍했던 이별의 그 순간, 나는 남편의 죽음을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심장이 터지거나(그만큼 내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도스토엡스키의 죽음으로 안나의 마음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인연은 영원합니다. 한 사람이 먼저 영계에 가더라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믿음은 그렇다고 해도 마음은 너무도 아프겠죠.

한밤중이 되자 외부인들은 모두 돌아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극심한 절망에 빠져 저녁 내내 울었던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힌 다음, 우리 세 사람(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고인의 시신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운명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 마지막 밤을 떠올린다. 그날 밤 나의 소중한 남편은 온전히 우리 가족에게 속해 있었다. 나는 보는 사람들이 없는 가운데서 거리낌없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비통한 심경을 토로하며 마음껏 울었고, 고인의 명복을 간절히 빌었다. 또 가정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졌던 사소한 다툼들, 언제나 뜨겁게 나를 사랑했던 남편을 내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기분 상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는 모든 일들에 대해 고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제 소중한 남편은,” 내가 감격에 겨워 말했다. “이상적인 인간 그 자체였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지고의 도덕과 종교적인 품성에서 그이는 가장 높은 경지에 달한 사람입니다. 그이는 선량하고 마음이 넓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죠. 정의롭고 사심이 없으면서도 섬세하고 자비로운 사람이었어요. 세상 누구도 그이 같은 사람은 없답니다! 그 사람의 강직하고도 고결한 심성 때문에 그토록 많은 적이 생겼죠!"
이 세상에서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이런 고백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상적인 인간, 지고의 도덕과 종교적인 품성, 선량하고 마음이 넓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강직하고 고결한 심성의 사람" 나도 이런 고백을 아내에게 받을 수 있을까요? 아내는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내게는 평생 수수께끼같이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내 남편은 다른 많은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듯 나를 사랑하고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마치 그를 위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거의 경배했다. 나를 대하는 남편의 이러한 태도는 결혼 초기만이 아니라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특별한 미인도 아닌데다 어떤 천부적인 재능도 없었고 지적 수준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중등교육(여자 고등학교를 마친)을 받은 평범한 여자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지적이고 천재적이었던 사람으로부터 깊은 존경과 거의 숭배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남편과 나는 “완전히 다른 구조, 다른 기질,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 조금도 서로를 흉내 내거나 서로에게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어 나는 남편의 심리에, 또 그는 나의 심리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은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임을 느끼며 살았다.

나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언제나 내게 “어떤 튼튼한 벽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 벽에 기댈 수 있다고,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의지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벽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아나게 했다”.
위대한 문단입니다. 부부의 삶은 바로 이와 같아야 합니다. 도스토엡스키와 안나가 이런 삶을 살았다는 것이 너무도 위대합니다. 저도 나의 아내를 보면서 나를 위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아내에게 경배하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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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중반기의 준비 노트에 작가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사용할 몇 개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런데 형제 가운데 하나는 무신론자이며 절망 속을 헤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열광적인 신자이다. 셋째인 막내는 미래 세대에 속하는 인물로, 정력적이며 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새로운 세대는 어린이들이다’ 이런 말들이다.


카라마조프 형제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채수동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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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언제나 내게 “어떤 튼튼한 벽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 벽에 기댈 수 있다고,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의지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벽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아나게 했다”.

-알라딘 eBook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지음, 최호정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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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남편과 나는 “완전히 다른 구조, 다른 기질,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 조금도 서로를 흉내 내거나 서로에게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어 나는 남편의 심리에, 또 그는 나의 심리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은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임을 느끼며 살았다

-알라딘 eBook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지음, 최호정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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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평생 수수께끼같이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내 남편은 다른 많은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듯 나를 사랑하고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마치 그를 위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거의 경배했다. 나를 대하는 남편의 이러한 태도는 결혼 초기만이 아니라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특별한 미인도 아닌데다 어떤 천부적인 재능도 없었고 지적 수준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중등교육(여자 고등학교를 마친)을 받은 평범한 여자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지적이고 천재적이었던 사람으로부터 깊은 존경과 거의 숭배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지음, 최호정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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