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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이 뿌린 복음의 씨앗 평화·통일로 열매맺길…”
[기타] 2003년 03월 02일 (일) 20:03
3월1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 금식기도회’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순교자 가족대표로 참석한 주광조 장로,손동희 권사,이사례 권사는 과거 선친의 신앙의 유산을 되새기며 남북평화와 민족 복음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만세삼창을 주도했다.

극동방송 상임고문이면서 영락교회 원로장로인 주광조 장로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4남)이다. 주장로의 기억 속에는 일제에 의해 아버지가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매질을 당하고 고춧가루 물에 괴로워하며 모진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944년 3월31일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주장로는 푸른 수의를 입고 자신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던 아버지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며 그날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아버지”라고 부른 뒤 큰 절을 올렸다고 회상했다. 주장로는 “이후 한달여 뒤 아버지는 싸늘한 시체가 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면서 “이후 일본인만 보면 피가 역류했지만 어머니의 ‘원수 사랑’ 실천을 보면서 오히려 일본을 더 아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사례 권사는 ‘관용 백인 겸손’의 세가지 덕목을 가르쳤던 이기풍 목사의 유일한 생존 혈육이다. 4남2녀중 막내인 이권사는 이목사가 57세 때 얻은 딸이다. 1908년 제주도 첫 선교사이면서 첫 개신교회인 성내교회를 세운 이기풍 목사 역시 1938년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42년 순교했다. 이목사는 성도 가정이나 교회,노회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모든 분쟁을 해결했으며 선교정신의 상징으로 불리운다.

손동희 권사는 6·25때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장녀다. 전남 여천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던 손목사는 퇴각하던 공산당을 전도하다 그들의 총탄공격을 받아 순교했다. 이에 앞서 손권사의 두 오빠도 믿음의 절개를 지키다 좌익 학생들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

손목사는 꽃다운 나이에 먼저 천국으로 떠나보낸 두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 범인을 양아들로 삼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삼고 괴로움을 선생으로 삼고’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손권사는 “이들 순교자들의 신앙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욱 열심히 깨어 기도하는 강한 우리 민족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자의 후예들이 3·1절 84주년을 맞아 여의도에 함께 모여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이땅의 1200만 기독교인들을 향해 ‘빛’과 ‘소금’의 사명을 촉구하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노희경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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