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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양산
마쓰다 마사타카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가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단 생각을 했습니다. 크레파스로 여러번 칠한 글씨 마냥 제가 어렸을 때 써봤음직한 글 모양이더군요. 어쩜 아이였을 때 벽에 휘갈겨 쓰던 낙서가 이런 것들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봤습니다. 그런 책 표지의 글씨가 귀엽고 예쁘게만 느껴졌습니다. 희곡이라 읽기가 쉽습니다. 희곡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리어왕', 사뮤엘 베켄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어본 적은 있지만 흔히 명작이라 일컫는 스테디 셀러가 아닌 일반 희곡작품은 처음 접해봤습니다. 내용은 잔잔한 바다 물결만큼이나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죽음을 앞둔 부인과 그의 남편. 대사는 군더더기 없이 아주 짧습니다. 간결한 대사 사이에 여백은 생각으로 매꾸게 합니다. 이 책이 아주 짧지만 어떤 여운을 주는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사 사이에 제가 그 행동들을 생각하고 인물들의 마음을 짐작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책을 덮고 난 후 짧지만 무언가 뭉클하면서 한참을 생각하게 합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그래서 부인은 집에 누워있는데 운동회에 참석해달라고 말하는 이웃의 모습, 그리고 운동회에 참석하는 남편, 다시 장례식 장에 슬퍼하기 보다 자신들의 집세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들. 죽음이란 건 슬퍼하고 아파해야 할 것이지만 어쩌면 이런 현실적이고 어떻게 보면 차가운 모습들이 우리네 사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대화들이 남편과 원고를 받아가는 다다씨가 예전에 혹은 부인과 결혼 생활을 하던 중에 어떤 관계가 있었단 암시를 해줍니다. 모처럼 아내가 가고 싶어하던 바다에 가려는 찰라 그녀가 왔을 때 바쁘다고 하지 않고 괜찮다고 하던 남편은 참으로 이기적이더군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남편의 손을 자신의 무릎으로 갖다 놓던 아내의 모습. 질투 아닌 질투. 혹은 뺏길까 염려하는 여자의 모습. 잃어버린 양산을 부인의 부탁대로 쓰고 오는 남편. 죽은 후 혼자 밥을 먹으며 혼자 대화하는 장면은 먹먹한 슬픔을 전해옵니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대사와 행동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바다와 양산은 많은 것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독자가 상상하고 독자가 대사 사이의 여백을 매꿔 나가는 재미로 읽는 책입니다. 그냥 짧게 읽기만 한다면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사이에 장면들을 생각하고 또 어떤 상황이었을까 제 나름의 창조적 글 읽기를 한다면 꽤나 좋은 작품이 될 듯 싶습니다. 연극으로 한다는데 연출가님은 과연 어떻게 장면을 묘사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