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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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겪었다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은 기억을 통해 화자 되며 말로 글로 옮겨져 명확한 과거의 증거가 된다. 아니 증거가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증거는 불완전하고 편협하며 여러 조각의 퍼즐을 무의미하게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비선형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그 분명하디 정확한 이유를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금세 잊는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체험했다는 확고한 감각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것은 ‘지하철 사린사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의 ‘사린’을 향한 감상은 매우 달랐다. “고무를 태우는 것 같은 냄새였습니다.”,  “옛날 시골 화장터에서 나는 냄새, 또는 죽은 쥐가 썩는 냄새 같기도 했습니다.”, “시큼하지만 그렇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초산 냄새 같은 것을 맡았습니다.”, “틀림없는 약품 냄새였어요. 이제까지 몇 번이나 질문을 받았지만 이제껏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무엇과 비슷하다는 식으로 말할 수도 없어요”, “소독제 냄새 같았어요.” 기묘하게도 인터뷰를 하는 62명의 모두는 서로 다른 언어로 후각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시각은 색과 형태 등으로, 청각은 소리로 흔적을 남겨 어느 정도 공통된 규격과 사회가 규범지은 모호하지만 상상 가능한 범위의 증거를 남긴다. 하지만 후각은 다른 감각을 넘어서는 불분명한 인상을 통해 명확하지 않지만 개개인의 감상에 의지한 부정확한 확고함을 남겼다. 이와 같이 냄새의 조각만큼 개개인이 경험한 상황에서 그날의 사건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사건은 1995년에 일어났고, 무라카미 작가가 정리한 인터뷰는 2년이 지난 후인 1997년에 정리되었다. 6000명이 넘는 사상자들에게는 사건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드러났고,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도 사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그 흔적은 기억 속에서 현재진행되고 있었다. 때문에 작가와 기획자들이 당시 이 책을 위해 모집한 인터뷰 대상자들을 선별함에 있어 갖은 연출과 과도한 편집을 경계했던 것은, 사건이 지난 20여 년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사건의 현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려 함에 있어 보였다. 책을 읽는 내내 좀처럼 책장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이유도, 나도 모르게 그 현장감의 위급함과 답답함이 그대로 감정에 전해졌기 때문에 불편하고 거리껴지는 감상을 털어버리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책을 읽어 가면서 나는 각각에 실린 개인의 기억의 퍼즐은 한데 모여 입체적인 현실이 되고 한 줄기의 시간이 되며 그날의 사건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읽어 낼 수 있었다. 

결국, 후반에 등장하는 작가의 글이 이 두꺼운 책의 모든 귀결점이다. 작가는 결국 본인 얘기를 하고 싶어서 62명이나 되는 인터뷰를 진행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적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미에 단단히 내비친다. 사건을 바라보는 매스미디어의 잘못된 균형과, 사건의 형태를 이벤트로 취급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대중을 대상으로 그들은 사건을 그들이 원하는 입맛대로의 특징적인 형태로 사실을 고착시켰다는 형태로 작가는 일본사회의 위기감을 부각했다. 작가는 그 이전에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앞서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것은 단순히 주범자가 미디어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악의 근본이 되며 피해자들은 선과 동정의 위치에 놓인 이분법적인 콘센서스가 증발시킨 의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이면에 이상종교로 취급되는 옴진리교가 사회의 본류에서 밀려남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어느 대중의 호응과 지지를 받는 형태가 곧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했다. 분명 그들은 그들 안의 진리를 통해 무차별적인 테러의 모습으로 한 사회에 논란을 던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본인이 가지고 지녀야 할 철학을 때로는 신흥종교를 통해 구원을 얻는 잘못된 방법으로 (신흥종교로 구분 짓고 있지만 그것이 주류 종교가 될지 아니면 종교를 넘은 가치, 국가, 브랜드, 타인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선택했을 뿐 그들 또한 우리 사회 내에 자리 잡은 누군가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관심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이야기가 주변에 있기에 무시하지 않고 신경에 거슬리지만 외면해 버리는 하지만 동시에 흥미를 돋우는 양태가 이 사건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전한다. 작가는 이를 꼬집으며 개개인인 내가 지니고 있는 가치가 분명히 나의 선택에 의해서 내재화된 것인지 항상 의문을 갖길 바랐다. 사회가 단순히 사건을 이분법적인 선악으로 구분하고 옳고 그름의 균형 있어 보이는 가치판단의 저울처럼 보일지언정 그 이면에 감춰진 의도와 누군가의 기획을 낯낯이 세분화하기를 바란 것이다. 결코 그 과정이 쉽지 않음을 확인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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