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이 경험한 것만 글로 옮겨 쓴다는 작가의 철저한 철학 탓에 그의 문학이 독특하고 빛이 났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지만) 때문에 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연유로 그런 철학을 고집하며 글을 쓰는지, 무슨 환경 탓에 그녀의 성장한 배경이 궁금하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질문투성으로 가득 차있었다. 소설인가? 하고 집어든 이 한 권은 (‘진정한 장소’라는 의미 가득한 타이틀이 오해를 살만도 하다) 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대담을 나눈 인터뷰집으로 문학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실기초한 자료를 재료로 삼는 재능 앞에서는 이 또한 소설처럼 취급될지도 모를 터이다. 나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며 인터뷰를 통한 답변들이 종이 위에 옮겨진 글로 스스로를 분명하게 대변한다는 확신은 전혀 없다고 고백하나, 독특하게도 그녀를 전혀 모르는 독자 앞에서는 적어도 모든 것이 그녀였고 작가 자신이었다. 작가가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에세이를 몇 권 읽었다. 나는 겨우 그 몇 권 가지고 생각의 결론을 내릴 이렇다 저렇다 할 근거로 재료 삼기에 부족하겠으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써야만 했다는 당위성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에 나는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무당의 신내림처럼 점쳐진 운명과도 같이 표현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조금도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비친다. 읽고 쓴다는 일. 주위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 일.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는 거장의 겸손한 멘트에 무엇이 그녀를 이끌었고 파헤치려던 생기발랄한 호기심이 갈 곳을 잃었다. 그녀를 통해 글을 쓴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마음이 끌리고 조금이라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작가를 모른다. 작가를 모르기에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고 헤쳐나가는지 아직도 끊임없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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