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볼라뇨가 "절친한 벗인 마리오 산티아고 파파스키아로와 함께 보낸 젊은 날을 기억하면서 같이 웃고 즐기기 위해서 쓴 작품"(983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좋다. 나도 좀 웃고 즐겨보겠다. 그러니 이 페이퍼는 웃고 즐기기 위한 농담이다. 물론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법한 농담. 그리고 대부분의 농담 속엔 말로 표현되지 못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 그건 진심일 수도 있고 무의식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슬픔일지도 모른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10년이나 20년 후, 혹은 지금 당장의 우리 아이를 위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큰 말썽 없이 자라오던 우리 아이가 어느날 갑자가 문학을 하고 싶다고, 문학을 해야겠다고 선언해온다. 아이들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것에,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 모른 채 이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신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덜컥, 걱정이 한가득 생길 것이다. 문학을 한다니, 도대체 얘가 뭘 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 역시 문학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기는 매한가지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지 말라고 타일러야 하는지,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래야 하는지. 이럴 때를 대비해 우리는 이 책을 구입해뒀다. 우리는 그저 말 없이, 책장 구석 어딘가에 꽂혀 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을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면 된다.

그리고 한마디.

"이 책을 다 보고 나서도 문학을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아이는 책의 두께를 보고 순간 움찔,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책을 받아들 것이다. 그리고 그날부터 당장 책을 읽어나가겠지.

조숙한 여자 아이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소설의 1부를 보며 조금 당황해할 것이다. 왜 아빠가 나한테 이런 책을? 그날 이후 어떤 여자아이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잠시 아빠를 멀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시간은 흐를 것이고, 결국 아이도 아빠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며, 무엇보다 앞으로 문학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텐데.

조숙하거나 말거나 남자 아이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야동에만 익숙하던 우리 아이들은, 응? 아빠도 이런 거 보나? 하며 의아해할 것이다람쥐... 그렇게 약간의 공황 상태에 빠져, 그러나 어느새 불쑥 솟아오른 성기를 보며 (...뒷말은 생략한다.)  

어쨌거나 다수의 아이들은 1부를 다 보고 2부를 볼 것이다. 그리고 잠당하건대(정말?), 열 명 중 예닐곱 명 정도의 아이들은 2부를 보다가, 가끔 졸다가, 보다가 안 보다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다시 보려 했다가 졸다가, 결국 자연스레 다시 학업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한두 명 정도의 아이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을 것이고, 어쩌면 제법 장문의 감상문까지 써서 자신의 의지를 보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제가 이렇게나 문학을 하고 싶답니다래끼. 이런 공황상태가 찾아올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아이는 문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을 하고 있기엔 그의 문학적 재능이 너무 크다.

영특한 한 명 정도의 아이들은 이 책을 무사히 다 볼 것이고, 아버지가 왜 이 책을 보라고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이며, 덜컥, 문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감지할 것이며, 순순히 다시 학업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역시나 인내를 갖고 악착같이 이 책을 완독한, 어쩌면 다 읽지 못했을 수도 있는, 열에 한 명 정도 나올까 말까 한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없길 바란다. 그 아이는 아마 책을 읽는 며칠 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드래곤 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고작 며칠 동안 몇 년의 시간을 보내기라도 한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문학을 할지 하지 않을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는 꽤 오랫동안 방황할 것이다. 문학 언저리를 끊임없이 맴돌겠지. 드러내지는 못한 채, 많이 힘들어 할 것이다.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페이퍼는 농담이지만(비록 아무도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일지언정),
이 책이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말만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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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6-12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만없, 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혹시 아세요 '야만없'?

닉네임을뭐라하지 2012-06-12 19:27   좋아요 0 | URL
앐라면 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