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선 소설책인지 처세술 서적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중편 분량의 소설, 페렉의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을 보았다. 이 소설에는 과장에게 접근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더불어. 그러니까 책의 가장 앞에 실려 있는 다음의 순서도를 문장화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모를 이 순서도처럼, 소설 역시 어디에서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모른 채 단 한 문장으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가끔 쉼표 하나쯤 나올 법도 한데 페렉은 쉼표의 등장마저 배제해버린다. 소설이 끝날 때야 비로소 한 문장이 끝이 나고 마침표도 등장한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의 기술이지만 이런 형식은 사실 소설의 내용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좁게 보면 회사원, 넓게 보면 현대인의 모습 또한 마치 이 소설의 문장처럼 쉼표 하나 찍을 여유 없이 기계처럼 반복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에는 조금씩 변형되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하는데(그래서 어학 학습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구절들은 소설 속에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작용한다. 주인공의 사고 혹은 행동은, 그 톱니바퀴와 만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서 쉼업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움직임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존재, 부속품. 다만 아쉬운 건, 번역자의 노고나 오역 여부와는 무관하게(이런 건 파악할 능력도 안 되거니와), 짐작건대 한국어의 구조상 그런 구절들이 톱니바퀴의 움직임처럼 도두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