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05]



분명 처음 읽는 거라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예전에 한 번 읽다가 그만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그런 색채의 대화를 구사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흑백 사진 속의 총천연색 인물화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하려나.

다음은 "대성당에서" 챕터에 나오는 구절. "어떤 일을 옳게 파악하는 것과 그 일을 잘못 이해하는 것은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일'에는 수많은 일들이 포함되겠지만 이 소설 <소송>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소송>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말은 결국 잘못 이해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얘기.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웠던 구절 역시 "대성당에서" 챕터에 나온다. 가장 마지막, 신부의 멘트. "그러니까 난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요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이 구절이 무서웠던 이유는 '법원'을 내 나름대로의 알레고리로 치환해서 이해했기 때문.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기 곤란한 이유는 내 옳은 파악은 동시에 잘못된 이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

이 소설 앞에는 어떤 수식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읽고 나서 좋은 인상을 받은 경우 좋은 소설이라든지 매력적/매혹적인 소설이라든지, 멋진 소설, 끝내주는 소설 정도의 말을 갖다 붙이는데 이 소설 앞에는 어떤 수식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읽은 건 솔출판사에서 나온 이주동 번역본인데, 다른 역자의 번역본도 보고 싶어졌다. 물론 <성>도 읽고 싶고(<소송>에는 <성>이라는 꽃을 피워낸 이야기-씨앗이 발아되어 있다), 카프카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 내지는 패러디임이 분명한 쿳시 형님의 <마이클 K> 역시 다시 보고 싶다.



다음은 피글리아의 <인공호흡>에 나오는 대목. "브레히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오늘날 작가 중에서 호메로스나 단테 혹은 셰익스피어처럼 자신의 시대와 철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을 고른다면, 첫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람이 바로 카프카라는 겁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에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1-29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9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