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소설은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마구라>. <도구라마구라> 역시 파편적인 구조나 다양한 서술기법이 동원된 소설이라 떠올랐다. 이렇게 아는 척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대충 훑어보기만 했을 뿐 아직 읽어보진 못했... ( -_-)a
이 소설을 구입하게 된 데엔 조영일 비평가의 공(?)이 크다.
그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비평고원"이라는 카페에서 그는 "저의 문학에 대한 감식안을 믿으신다면, 국내 본격소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설픈 장르혼합에 실망하신 분이라면, 소위 국내 대가들의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읽어보니 별볼일 없다라고 생가하신 분이라면, 장르 구별을 떠나서, 진짜 문학다운 문학, 진짜 소설다운 소설, 독자에게 제대로 된 펀치 한방을 먹여주는 소설을 읽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써두었기 때문이다.
찬사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분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괜히 더 솔깃하기도 하고... (역시 작가나 비평가들에게 '추천사'는 아껴 쓰고 저축해둘수록 좋은 것인 듯) <도롱뇽과의 전쟁>도 읽었으니 조만간 <도구라마구라>도 꼭 봐야겠다.
사실 도롱뇽, 하면 얼마 전에 출간된 <아홀로틀 로드킬>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모 님이 각별히 애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기도 했으나 역시 안 읽어봐서 모르겠고( -_-)a 어쨌거나 작가인 헬레네 헤게만은 도롱뇽의 일종인 아홀로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책 제목에 가져다 썼을 것이다.
헌데 도롱뇽을 소재로 소설을 쓴 작가가 또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아르헨티나 작가 훌리오 코르타사르. 계간지 <문학동네> 1997년 봄호에 홀리오 코르타사르를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거기에 실린 짧은 단편소설이 그것이다. 제목은 "아숄로뜰". (각주에 "Axolotl : 멕시코산 도롱뇽. 산초어(漁)라고도 부름"이라 되어 있다.)
내용은 굉장히 간단하다. 어느날 수족관에서 아숄로뜰을 매일같이 살펴보던 주인공 '나'가 어느 순간 아숄로뜰로 바뀌는(?) 그런 내용.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 차리고 보니 주인공이 아숄로뜰이 되어 있는 그런...
코르타사르는 인터뷰에서 "아숄로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숄로뜰"은 꿈 속의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경험이다. 나는 동물원을 좋아하는데, 식물원엘 갔다가 갑자기 아숄로뜰을 보게 되었다. 이야기에 쓴 것처럼 텅 비고 어두운 방에서 아숄로뜰 수족관을 보았고 그거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반 시간 동안이나 그것들을 바라보며 머물러 있었는데, 왜냐하면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처음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황금빛 눈을 보았을 때... 그 눈을 바라보던 순간의 강렬함은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이야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나는 즉시 돌아서 그곳을 나왔다."
"이야기에서 화자는 점점 더 아숄로뜰에 매혹되어서 매일 그곳을 찾아가고 마침내 입장이 뒤바뀌어서 수족관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날 내가 도망치다시피 그곳을 나온 것은 아숄로뜰의 눈을 본 순간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상상력이 풍부한 한 남자가 아숄로뜰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시간 밖에 있는 그들의 세계와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그 동물들을 발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남자와 아숄로뜰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없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아숄로뜰은 그 사람에게 마치 무언가를 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때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도망쳤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조금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결코 식물원에 돌아가지 않았고, 결코 수족관에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망쳐 나왔던 그날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코르타사르는 과연 도룡농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보았길래 지금까지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을까. 그리고 그보다 조금 앞선 세대의 체코 작가 카페크는 도롱뇽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도롱뇽과의 전쟁>과 같은 소설을 썼던 걸까.
'과열'처럼 보이는 요즈음의 세계문학전집 시장에(물론 나 같은 소설잉여야 감사할 따름이지만;;), 문학/소설 류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출판사였던 시공사에서도 최근 "세계문학의 숲"이라는 타이틀의 전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리스트 중에 가장 눈에 띈 건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이었다. (아직 출간되진 않았다.) 이미 이 작가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몽유병자들>을 출간된 상태인 데다(물론 늘 그렇듯 여태 보진 못했지만;;),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웠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마저 근간 목록에 올라가 있어서 반가웠다.
다음으로 눈에 띈 건 차페크의 <도롱뇽 전쟁>. "조지 오웰에서 커트 보네거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디스토피아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 전쟁>"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열린책들과는 달리 제목을 그냥 <도롱뇽 전쟁>이라고 했다. 확실친 않지만 체코본을 그대로 옮긴 것 같기도 하고... 이미 타 출판사에서 선수(?)를 친 상황인데 시공사 측에선 어떤 식으로 책 편집을 할지 기대된다. 독자들이야 비교해보는 맛도 쏠쏠하겠지만 편집자들 입장에선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고...
<도롱뇽과의 전쟁> 역자 해설을 보면 "일련의 세계 종말 보고서라 할 수 있는 [R. U. R.], <절대성의 공장>, <도롱뇽과의 전쟁>은"이라는 구절이 있다. 어쨌거나 내 목적은 최대한 <도롱뇽과의 전쟁>과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응?) 위 발췌한 부분에서 '세계 종말'이라는 어구에 초점을 맞춰야겠다.
개인적으로 '세계 종말'이라고 하면 다른 것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상 종말 전쟁>이 떠오른다. 올해 노벨상 수상 직후 <뉴욕타임스>에서는 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세상 종말 전쟁>과 <염소의 축제>를 꼽았다고 한다. 두 작품 모두 땡기기는 하지만 "하나의 우주 전체를 다양한 관점과 시점에서 그리는 '총체 소설(novela total)'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책소개 구절로 인해(나란 인간, '총체 소설' 같은 말을 보면 그냥 확 끌리는 인간) <세상 종말 전쟁>을 먼저 집을 것 같(지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흑)
짤막하게 쓴다는 게 꽤 길어졌다. 이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지.
한 달쯤 전에 친구와 커피를 마시면서 바퀴벌레 얘기를 했다. 편집자들 사이에선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책 속의 오탈자를 바퀴벌레라고 표현한다고. 다 잡았다고 안심한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바퀴벌레.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바퀴벌레.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조만간 나올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받았다. 그러고 나서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자연스레 더해지며, 편집자들의 교정 분투기를 다룬 "바퀴벌레와의 전쟁" 같은 소설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얘기를 나눴다는 뭐 그런, 아름답고 훈훈한... (마무리가 뭐 이래...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