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맨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100210]


 쿳시의 <슬로우 맨>을 다룬 "책읽는밤"을 다시 보았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대체로 '공감'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공감하거나, 예비적으로 체험하거나. 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에 공감하고.

 그러나 쿳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공감할 수 없음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공감하지 못하도록 작가가 끊임없이 이런저런 장치를 만들어 낸다. 쿳시의 거의 모든 소설에서 다뤄지는 주제가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일 수도 있겠고,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작가가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는 독자들이 공감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행하고 있는 사랑이 정말 사랑인지, 진정한 사랑인지 생각하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슬로우 맨>도 얼핏 보면 다리가 잘린 노인과 그를 돌봐주는 간호사 사이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감할 준비는 되어 있어!) 결국 노인은 그 여자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 와중에 무수한 생각과 고민들이 존재한다. 자신이 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맞는지, 단순한 욕망인지, 사랑과 욕망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게 뭔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이와 연관시켜 던진 질문이 '노인'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내지는 편견에 대해서 균열을 주고자 애를 쓴다. 코스텔로의 도움으로 한 여자와 섹스를 하기도 하고(노인도 섹스가 필요해!) 무려 육십이나 먹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삶에 대해, 여자에 대해, 그밖의 각종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자들은 장애를 가진 노인을 보며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실' 내지는 '노년'에 대해 공감하는 차원에서 머무르고 마는 듯 보인다. 소설을 보고 공감하는 건 독자의 자유이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건 어쩌면 작가가 제일 바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굳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식하고 등장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등장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소설에서 활기가 샘솟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를 작품에 아무런 개연성 없이 등장시킨 의도가 확연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어쩌면 기존의 작품에서처럼 의도를 모호하게 만들고 일반적 관념에 의문을 부여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혔다. 사랑, 노년, 상실과 관련하여 지지부진하게 전개됐을지도 모를 소설이 코스텔로 덕분에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작품 속에서 코스텔로를 비난(?)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어쨌거나 그럼 결국 작가가 작품을 살렸다는 얘기...?)

 규칙에 어긋나는 쌍따옴표의 사용법도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말에서도 쌍따옴표를 사용하고, 자신이 했던 생각들에도 쌍따옴표를 사용한다. 말하려고 했으나 실제로는 말하지 않았던 그런 생각들을 둘러싼 쌍따옴표. 그리고 그 뒤에 곧바로 등장하는, 원래 생각과는 상반되는 실제의 말을 둘러싼 쌍따옴표.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점과 관련하여 콘래드의 <비밀요원>이 떠올랐다. (조금 다른 문제인가, 기억이 잘...;)

 어쨌거나 강영숙이 말한 것처럼 쿳시의 다른 소설에 비해 굉장히 말랑말랑한 소설인 것은 분명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화자의 어조가 <야만인을 기다리며>와 그나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으나, 전반적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스토리 탓도 있겠고, 소설의 지역적 배경 탓도 있을 터이며, 작가의 나이...는 탓하지 말하야지 

 비록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인지도도 없는 편이지만 쿳시는 충분히 행복한 작가다. 한 준수한 번역가가 자신의 모든 작품을 번역해주고 있으니. 번역가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번역가가 구사하는 언어의 스펙트럼에 따라 같은 작가라도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가. 최소한 쿳시의 작품에서 그런 염려는 없다.


+  조금 다른 얘기기는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60대를 '노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친구가 했던 얘기인데, 요새 한국의 60대는 충분히 정정하다, 술 마시면 싸움도 잘 하고, 그래서 경찰서에도 붙들려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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