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반복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2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09.05.21]


I - 1

오에 겐자부로에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말면서도 고진은 '고유명'에 대한 언급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는 공히 고유명이 없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만엔원년의 풋볼>에서는 그것이 타입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1973년의 핀볼>에서는 그것이 그저 차이를 구별해주는 시차적 기호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고진은 소쉬르의 언어학에 관해 잠시 들먹이더니 잽싸게 칸트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1973년의 핀볼>에서 '나'가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인식에 대해 말하기 위해. "'나'는 모든 판단을 취미, 그러므로 '독단과 편견'에 지나지 않다고 간주하는 어떤 초월론적 주관"(143)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매우 사적인 인상이 강함에도 사소설(경험적 주관에 의한 소설로 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약하자면, "오에 겐자부로의 '나'가 언어의 알레고리적 횡단이나 어긋남을 가져오는 장치인 데 대해, 무라카미의 작품에서 언어는 이런 초월론적 주관에 의해 항상 통제되고 있다."(143)

I - 2.

이 장에서 등장하는 소설은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중 "풍경의 발견"에서 논했던 구니키다 돗포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풍경을 풍경으로서 발견하는 것은 역으로 외적인 풍경을 거부하는 '내적인 인간'"(144,145)이며, "여기에 '근본적인 도착'이 숨어있다"(145)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키가 발견한 것도 이런 종류의 '풍경'. 이를테면 '발자크 소설에 나오는 수달'이나 '클로드 룰루슈의 영화에서 자주 내리는 비'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유명의 범람. 이를 통해 독자는, 어떤 의미 내지는 해석과는 무관한, 그저 당대의 세련된 풍경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고유명의 범람을 통해 하루키는 근대문학에 있었던 것과 같은 형태의 전도를 만들어 낸다.

I - 3.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의 발췌문이 인용된다. "무의미한 것을 유의미한 것 위에 놓는 가치전도"(147)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특히 하루키 작품에 범람하는 숫자에 대해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숫자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사건의 임의성, 넓게 보아 세계의 임의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고 고진은 보고 있다). 더불어 구체적인 날짜. 대개의 작가는 "날짜를 생략함으로써 작품을 '일반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 반해 하루키는 "특정 날짜 속에 작품을 위치"(150)시킨다. 그건 역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역사성을 공무화(空無化)하고자 함이다. 하루키가 특정 날짜, 그러니까 고유명을 남용하는 이유는 반대로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이다. 숫자의 남용도 마찬가지.

I - 4.

고진은 고유명이 역사성(또는 정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결국 다음과 같은 주장에 이르게 된다. 이런 날짜의 과잉은 "'역사의 종언'"을 주장"(151)하고 있는 것이라고. <1973년의 핀볼>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보통의 고유명사는 (<상실의 시대>에서도 다시 등장하는 이름을 가진) 나오코. 하지만 '나'가 사랑하는 것은 나오코가 아니라 1970년에 처음 만난 핀볼머신이다. '나'는 핀볼머신에 대해 탐색한다. "이 탐색은 대상이 플레이(놀이) 기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진지하게 이루어진다."(152) 이것은 아이러니다. 하르트만의 <독일관념론의 철학>에 따르면, "아이러니에서는 모든 것이 장난임과 동시에 진지함이고, 모든 것이 마음 밑바닥부터 숨김없이 드러나 있음과 동시에 깊숙이 숨겨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키는 이런 아이러니를 통해 "모든 피한정성을 넘어서는 초월론적 자기"(153)를 확보하게 된다. '나'는 핀볼머신과 대화하지만 그 대화는 결국 자기독백으로 귀결된다. 이를 통해 "'나'가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떤 한정도 받아들이지 않는 임의성의 세계"(154)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결국 이런 "독아론적 세계가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자명한(base)가 된 것이다."(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