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1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09.04.19]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중 "장르의 소멸"과 책 말미에 부록처럼 실려 있는 몇 가지 외국어본 후기들을 함께 읽었다. 이로써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읽기는 우선 끝이 났다. 하지만 모든 끝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시작을 동반한다. 물론 다 읽었다고 해서 그것을 진정으로 다 읽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옮긴이 후기에 따르면 "장르의 소멸"은 원래 책에는 없던 내용인데 91년에 영어 번역본이 나올 때 처음으로 씌어진 챕터라고 한다. 그러므로 80년에 출간된 기존의 책과 91년에 쓴 이 챕터 사이에는 11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고, 그 간격에는 물론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비평적 전개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 사정을 미리 앍고 읽는다면 이 챕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근대문학(19세기 근대소설)은 끝이 났고 그 말은 곧 근대문학 이외의 다른 장르가 회복되었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르의 소멸"이라는 챕터 제목은 곧 "장르의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챕터는 크게 소세키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이야기(+사생문)와, 유머를 하나의 축으로 하여 쓴 바흐친과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소세키는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다양한 장르의 픽션을 썼다. 여기서 말하는 장르란, 노스롭 프라이가 <비평의 해부>에서 분류해둔 네 가지 픽션 장르, 즉 노벨, 로망스, 고백, 아나토미를 말한다. 90년대까지도 소세키의 작품은 초기 작품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마지막 작품인 <명암>으로 발전해간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서양의 19세기적인 소설>(*근대문학)을 규범으로 삼고, 그것을 지향하여 모든 장르가 해소된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번역되는 novel은 사실 "온갖 다양한 종류의 것을 넣을 수 있는 형식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장르를 탈구축하는 형식"(228)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소설이 픽션에 있어서 하나의 규범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픽션도 아닌 것이다. 모든 장르를 탈구축한다는 면에서, 사실은 정련된 형태 자체가 불가능한 장르이다. 따라서 소세키의 작품이" 이른바 <근대소설>다운 <명암>을 향해 성숙해 나아갔다는 식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옳지 않"(229)은 것이다.


 쓰보우치 쇼요와 모리 오가이의 몰이상 논쟁에서 모리 오가이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소설은 역사적 발전 단계로 존재하고 그것은 곧 픽션 중에서도 19세기 서양 소설이 우위에 있다는 관점에 따른 주장이 된다. 하지만 19세기 서양 소설이 우위에 있다는 말 자체에는 소설 이외의 장르가 소멸해야한다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오가이는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그는 쇼요와의 논쟁에서 이미 "<장르의 소멸>의 역사적 필연성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229) 하지만 오가이는 말년에 역사소설이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의 픽션을 쓰게 되었고 이는 에도 이래의 사전(史傳) 장르를 회복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장르의 픽션을 통폐합시켜버리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반발하여 탄생된 작업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후 <우회>에 이르기까지 소설쓰기를 했다기보다는 사생문쓰기를 했다. 마사오카 시키에 의하면 "사생문은 리얼리즘이라는 의미의 <사생>이 아니라 모든 언어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시키의 제자들이 아니라 맹우(盟友) 소세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근대문학의 내러티브는 <ㅡㅆ다(た)>라는 과거형에 의해 완성된다." 하지만 "사생문의 특징 중 하나는 현재형으로 씌어졌다는 것이다."(231) 또한 "<ㅡㅆ다>가 어느 한 시점에서의 회상으로 존재한다면, 소세키는 <ㅡㅆ다>의 거부에 의해 전체를 집약시키는 관점을 거부하고 있다."(232) 소세키는 의식적으로 이러한 근대문학적 서술기법을 거부하고 사생문을 쓴 것이다. "사생문이 과거 시제 <ㅡㅆ다>를 거부하는 것은 근대 소설이 소거시키려 했던 화자를 보존시키는 일과 이어져 있"는데 왜냐하면 근대소설에는 <작가(화자)>가 중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르트가 말하는 <에크리튀르의 영도(零度)>, 즉 중립적인 글쓰기를 실현하는 것이고 "<다>라는 종결 어미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반면에 "<다>를 거부하는 사생문은 화자를 회복"시키고 실제로 소세키의 소설에는 항상 화자가 존재한다. 소세키에게 사생문이란, 말하자면 어른이 아이를 보는 태도였고, 그는 "사생문의 본질을 세상에 대한 <심적 태도>에 근거해서"(233) 판단하고 있었다.


 고진은 소세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비인정(非人情)이라는 말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인정>(낭만파)도, <몰인정>(자연파)도" 아닌 것이다. (논리적인 비약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고진은 이 비인정을 유머라고 말하고 있다. "유머는 화자 없이는, 즉 소세키가 말하는 <작가의 심적 태도> 없이는 나오지 않는 것"이고 결국 유머는 사생문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시작된 글이 사생문이라는 어떤 서술기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 이유는 결국 소세키가 "사생문을 <소설>로 향하는 싹으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설>에 반하는 것으로 자각하고 있었"(234)기 때문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사생문은 장르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다."(235)


 "장르의 소멸" 마지막 네 페이지는 사생문에서 파생된 유머(비인정)와 관련하여 바흐친과 프로이트의 이론을 말하고 있으나, 정신분석이나 신경증, 초자아 등에 대한 개념의 부재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문장을 뜯어가며 이해하기를 시도했으나 예약해둔 세 시간이 훌쩍 날아가버려 그만...)


 80년에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쓸 당시에만 해도 스스로 자신의 비평이 어떤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어떤 지점(네이션 혹은 세계화와 관련한 비평)으로 향하고 있는지 인식한 후에 다시 본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는 이미 그 지점에 대한 내용이 책속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장르의 소멸" 챕터 뒤에 나오는 각종 후기 및 부치는 말은 주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쓴 글이다. 그러므로 그 글들에는 자신이 비평하는 지점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재해석 내용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후기들을 보며 소세키가 영국에 가서 느꼈던 영문학에 대한 이질감과 유사한 종류의 이질감을 느꼈다.


 88년 문고판에 부친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단락이 있다. "1980년대에 일본의 <근대 문학>은 결정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것은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내면>, <의미>, <작가 주체>, <깊이> 같은 관념들이 부정되고, 그들에 종속되어 있던 <언어>가 해방되었음을 뜻한다. 말을 바꾸면 근대 문학이 배척했던 장르들, 즉 <언어 유희>, <패스티시>, <로망스(SF를 포함한다), <새타이어>가 복권되었다는 것이다."(244) 몇 년 전에 가라타니 고진이 발표한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글의 본질은 이미 88년에 완성된 것이다. 그가 문학 비평을 더이상 할 수 없는 이유는 발췌한 단락에 다 나와 있다. 현재의 (복권된) 문학으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비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문학의 종언"이 현재까지도 논쟁적인 이유는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의 저자로서보다는 (네이션) 비평가로서 더욱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모종의 이질감을 느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옮긴이 후기를 보면 이런 가정을 더욱 확신할 수밖에 없다. 옮긴이는 가라타니 고진이 기왕 썼던 비평에 대한 인식을 지닌 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해서 후기를 적고 있다.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책 이후에 가라타니 고진이 행한 비평에 초점을 맞춰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첨가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었다. 막상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쓸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부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에게도, 가라타니 고진에게도, 이 책은 이미 전도(은폐)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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