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1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09/01/08)

하루 종일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읽었다. 제목에는 물론 '일본'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작가들은 전부 일본 작가이지만, 결국 이 책은 '근대문학의 기원'을 살펴보는 책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근대문학의 기원을 살피는 일은 곧 근대문학의 종언을 증명하는 일이었으니 저자가 이 책에서 많이 표현한 단어를 빌려와 쓰자면, 이 책은 결국 전도(顚倒)된 작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문학은 19세기에 확립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그런 관념이 오랜 시간에 거쳐 정립되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메이지 20년을 전후로 하여 급속도로 정착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 압축된 시간을 살펴봄으로써 근대(일본)문학의 기원을 찾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의 강의 노트를 <문학론>으로 간행한 것은 런던에서 귀국한 지 3년밖에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17) 서론을 제외한, 이 책의 첫 문장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을 공부하러 건너간 영국에서, 유럽에서 말하는 문학이라는 관념에 모종의 거부감(혹은 이질감)을 느꼈다. 소세키가 자라면서 내면화된 문학은 일본 내의 문학, 즉 한문학에서 발생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들어와 그런 거부감/이질감을 유지한 채 소설을 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 후, 풍경(회화)에 대한 설명, 내면(언문일치)에 대한 설명, 고백(기독교)에 대한 설명, 병(메타포)에 대한 설명, 아동에 대한 설명, 구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발견되어 제도화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것이 곧 근대일본문학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작업의 과정을 읽는 일은 개인적으론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나 분야들을 수시로 끌어들여 그 과정을 밝히고 있었으니까. 이 책을 끝까지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숱하게 했다.

결론적으로, 끝까지 참고 읽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각종 후기를 제외한, 실질적으로 마지막 챕터인 "장르의 소멸"에서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를 다시 소환한다. 일본 문학 내에서, 혹은 우리나라 일문학과에서 배우는 나쓰메 소세키가 문학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이 장에서 말하는 소세키는 근대문학과 거리가 있는 작가였다. "소세키는 사생문을 <소설>로 향하는 싹으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설>에 반하는 것으로 자각하고 있었"(234)고, 그에게 "사생문이란 <문>의 해방, 장르의 해방을 의미하"(231)는 것이었다. 결국 이 장의 제목인 "장르의 소멸"은 나쓰메 소세키를 빌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소설의 소멸이라는 의미였고, 이후에 고진 스스로도 밝혔듯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전도적으로 예언하는 글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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