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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빌 게이츠가 "내 가방에 넣어 다니며 읽는 책"이라고 쓴 추천사를 보고 짐작했어야 했다. 그 정도로 시간과 머리를 쓰며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물리학의 개념들을 도입하면서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사례들을 설명한다. 조직에서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의 혁신을 설명하는 데 활용된 개념은 상전이, 동적평형, 임계질량이 있다.
또한 모든 혁신의 시작은 얼토당토 않은 작은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룬샷'이다.
룬샷(loonshot)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
책에서는 수많은 룬샷의 순간들을 설명한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레이더 기술, 콜레스테롤을 치료하는 약이 개발되던 순간 등 인류의 역사적 순간들은 물론이고 비즈니스의 판을 뒤집는 넷플릭스, 애플의 사례를 통해 조직설계의 힘을 깨달을 수 있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상전이의 개념에 대해 먼저 설명하자면, 물질이 온도/압력/외부 자기장 등 일정한 외적 조건에 따라 한 상에서 다른 상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물은 0도(임계온도)일 때 얼음으로 응고되며, 온도가 높아지면 다시 녹아 물이 된다. 저자는 이 물리현상을 조직에 비유하며 이 사이에서 어느 쪽 상태도 압도적이지 않은 순환관계인 동적평형 상태를 강조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개인들이 공동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경력이나 승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동기부여의 균형점이 이동한다.
2차 세계대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어낸 과학자 버니바 부시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도 압도적인 시스템 설계능력으로 이 모든 성과를 이끌어낸다.
새로운 무기와 거기에 대항할 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많은 것이 걸린 경쟁에서 약한 고리가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공급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현장으로 가져가는 일이었다.
버니바 부시의 사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군과 연구원들 사이에서의 역할이었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비아냥거림을 가지고 있는 성격이 다른 두 조직 사이에서 각 조직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심을 갖고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부시의 교두보 역할은 웬만큼의 사명감과 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기존의 성격을 유지하는 조직과 룬샷 조직을 서로를 분리시키되 룬샷의 테스트 프로젝트를 군인들이 수행해내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반영하는 등 두 조직의 존재감을 균형감 있게 유지하면서 전체조직의 완성도를 높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초창기에 이 역할을 잘 수행해내지 못해 결국 애플에게서 버림받고 만다.) 실제로 버니바 부시의 공로를 기점으로 미국의 기초과학 연구가 빠른 속도로 발전되었다고 하니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 짐작된다.
저자는 룬샷을 보호하고 혁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을 '부시-베일 법칙'이라고 부르며 아래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1.상태를 분리하라
2.동적평형을 만들어내라
3.시스템 사고를 퍼뜨려라
4.매직넘버를 높여라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보다 중요한 것은 '룬샷의 필요성을 얼마나 간절히 느끼는가'가 아닐까 싶다. 룬샷은 제품형 룬샷과 전략형 룬샷으로 구분된다. 제품형 룬샷은 기발한 제품을 개발하여 성공해내는 것이고, 전략형 룬샷은 전략의 변화를 통해 성공하는 것이다. 제품형 룬샷은 일반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변화가 뚜렷하다. 반대로 전략형 룬샷은 속도가 느리고 변화 또한 인지하기 어렵다. 책에서는 전략형 룬샷을 조금 더 비중있게 다룬다.
제품형 룬샷만이 아니라 더 미묘한 전략형 룬샷까지 육성할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의 항공산업 규제 철폐 이후 대형 항공사 팬암과 아메리칸 항공의 사례를 통해서는 결국 제품형 룬샷을 전략형 룬샷이 이기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칸 항공은 전산화된 예약 시스템 '세이버'를 활용하여 자사 제품의 노출 위치를 조정하고, 승객들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더 큰 수익을 거둬들인다. 반면 팬암은 에어택시 설계, 제트기 구매 등 창의적인 제품형 룬샷을 설계하여 초반에는 많은 수익을 내지만 이를 지속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해 결국 실패를 안게 된다.
함정을 벗어나는 열쇠는 두 가지 리더십의 차이에 있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 사고와 결과주의 사고이다.
어떠한 결과을 맞았을 때 "왜 실패(혹은 성공)했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1차적 전략 또는 결과주의 사고이다. 반면 그 이면에 깔린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바로 2차적 전략 혹은 시스템 사고이다.
가장 약한 팀은 실패를 전혀 분석하지 않는 팀이며, 이는 전략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비판한다. 아마 현재를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수많은 조직들이 결과주의 사고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사고는 '결과의 질'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질'까지도 꼼꼼히 점검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정과 결과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사고법이다. 얼마 전 조직개발 스터디 모임에서 발제했던 '크리스 아지리스'의 이중고리 모델이 이러한 시스템 사고의 기반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아이디어(룬샷)를 묵살하면서
당신은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는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위대한 룬샷의 사례를 읽으며 나는 어떤 목표를 갖고 시스템 사고를 할 것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만약 내가 룬샷의 창시자가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분야 대가들의 스토리를 꾸준히 습득하고 내가 키울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타이밍을 만들어야겠다.
기업가 뿐만 아니라 시스템 사고를 통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어렵지만 매-우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