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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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몃명이면 충분할까요?"
"9명 전원이요. 전원이 남자일 때는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잖아요." -긴즈버그의 인터뷰 중



★ 『적절한 수정책은 '과거의 차별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고 '미래의 유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P.57​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이 된 두번째 여성.
트레이드 마크는 깔끔하게 올린 머리와 검은색 뿔테 안경, 흰색 카라가 있는 검은색 법관복. 부시와 고어의 대선 개표당시 재검표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대법원의 판결에 '본인은 반대하는 바다' 라고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던 악명높은 RGB.


그러나 대법원장과 여덟의 대법관 중 가장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법리적해석을 내어놓는 인물. 미 헌정역사상 가장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대법관으로 기억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가 2020년 9월,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평등, 자유, 그리고 시민권이 법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치열하고 냉정하게 행동했던 긴즈버그의 타계 1주년을 맞아 대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어떤 의견을 피력했는지 알 수 있는 열세개의 판결과 긴즈버그의 의견을 담은 책이 나왔다.


크레이그 대 보린 의견서에서는 젠더에 근거한 임금차별을, 스트럭 대 국방부 의견서는 임신 출산으로 인한 자발적 강제퇴사를, 로 대 웨이드 건에서는 여성의 건강이 고려되지 않는 임신중단시술 방법에 대하여, 버지니아 사관학교 여성입학에 대한 논쟁에선  남성전용 교육시설과 동등한 여성 교육 프로그램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만 하다. 어떤 맥락에서 법들에 문제가 있는지,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제시할 때 고려할 점 들이 담겨있고, 이 내용들은 2020년 대한민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유효하다.




미국 독립선언문에도 모든 '남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했을만큼 여성은 인종보다 후순위에 있었던 시대였다. 그리 오래 된것도 아니다. '남자'의 자리에 '인간'을 넣기 위해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던 긴즈버그가 점점 세분화되고 교묘해진 차별에 맞서 넓은 범위의 평등을 법 속에서 실천하려고 애썼던 증거를 책속에서 만날 수 있다.


종교기반으로 한 회사가 종교의 자유조항 내에서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비웰과 호비로비 스토어즈의 사건, (종교를 중심으로 회사를 만듬- 직원이 임신중단을 위한 보험금 지급을 요구-회사는 종교의 이유로 거부)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에 장애인을 신체와 더불어 정신적 장애까지 포함한 옴스테드 대 L.C 재판과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기준이 유색인/백인으로 구별할 수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에더런드 건설사 대 페냐 건이 아마 그럴것이다.






얼마전 인권위에서 여성전용 도서관은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역차별이므로 남성 이용을 권고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긴즈버그라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크레이그 대 보런 법정조언자 의견서>

긴즈버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어린나이에 알콜음료를 살 수 있는 오클라호마 법에 반대했다. 단순히 남성의 구매가 제한되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을 대하는 오클라호마주의 차별적 시선에 근거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용인된 차별은 또다른 차별을 공고히 하는 빌미가 되므로 성별에 특정하지 않고 모든 '인간'이 평등한 법이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

<리치 대 디스테파노 소수의견>

비백인 후보자들을 더 많이 승진시키기 위해 백인 후보자를 탈락시켰다며 코네티컷 주 소방관들이 소방서를 고소한 소송에서 긴즈버그는 사건의 맥락을 이렇게 파악했다.
인구의 30%가 흑인과 히스패닉계인 뉴헤이븐 시에서 소방서 종사자의 5.2%만이 흑인과 히스패닉계란 점, 특히 직위가 올라갈수록 격차는 더욱 컸고, 소방관 중 단 한명의 흑인만 유색인이었다는 점에서 긴즈버그는 백인 후보자들이 주장한 역차별의 허구를 짚어냈다. (소방관이 인종차별역사가 유난한 직업이란건 처음 알았다)


차별을 주장하고 평가하는데 차별이 행해지게 된 '맥락'을 중요하게 여겼던 긴즈버그라면,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역차별에 대해 어떤 의견을 피력했을지 생각해보는 자리를 가지는 것도 좋겠다
(물론 인원 제한이 풀리면.





사족 1) 

긴즈버그 생전엔 대법관 아홉 중 보수성향이 다섯, 진보성향이 넷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대통령은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에이미 코니 베넷을 지명했는데, 베넷은 총기규제와 낙태를 반대하는 강성 보수다. 그리고 1년후, 텍사스주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을 포함, 모든 여성의 6주 이후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한 법안이 통과됐다. 긴즈버그 선생님 무덤에서 뛰쳐나오실 일이지. 이미 조지아주, 오하이오, 미시시피 주가 비슷한 법안이 있긴 한데, 최소한  강간으로 인한 임신은  해당하지 않았다. (미 남부지역이 보통 이따구) 문제는 이 텍사스가 쏘아올린 (쓰레기)법안이 바이든에 맞설 보수세력결집의 불씨가 되어 남부 전지역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 제 2의 남북전쟁이 도래하는것인가... 역시 인간은 느리게 발전하고 한방에 퇴보하는구나.


사족 2)
법률용어가 있지만 난해하고 막 어렵고 그렇지는 않아요. 대신 한 문장 한 문장 여러각도로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좋네요.


사족 3)
사회 속의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독서모임의 책으로 아주 적절합니다 정말 최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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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파버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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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파버와 호모 루텐스 사이>>

 

 

 

 

 

 

​​
유네스코의 개발도상국 개발담당 엔지니어 발터 파버.
뉴욕의 라과다이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멕시코 황무지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겪는다. 옆 자리에 있던 승객 헤르베르트가 오래전 자신의 친구 요아힘의 동생이고, 요아힘이 두 달 전부터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거기에 요아힘이 자신의 과거 연인이던 한나 란츠베르크와 결혼했으며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함께. 이후 유대인인 한나가 안전할 방도로, 임신한 아이에 대한 책임에 대한 방책으로 청혼했다가 헤어지게 된 한나 란츠베르트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현재 애인에게서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파리행 출장으로 타게 된 크루즈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자베스)에게서 예술성과 몽상가적 기질을 발견하며 과거 한나를 떠올린다.  이 아이가 혹시 요아힘과 한나의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추근대지 않았고, 그럴 생각이 없었으며, 변태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변명한다. 결국 스무살 자베스에게 청혼하고 계획에서 벗어난 여행을 떠나며 부녀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발터 파버는 통계와 사실에 근거해 가치를 판단하는, 과학기술과 도시생활에 최적화된 현대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청혼이란 유대인인 한나가 나치에게서 안전할 방도 중 하나로, 임신한 아이에 대한 책임과 결과행위였고, 자연은 불결, 부패, 불쾌, 죽음이기 때문에 지배하거나 싸워 이겨내야할 대상이기에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이자 엔지니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자연을 숭배하는 일은 원칙과 객관에서 벗어난 일이며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인간의 기술에 반하는 일이었다. 
호모 파버- 도구를 사용해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인 발터 파버에게 '자연'은 가족을 이루는 일, 사랑, 여성, 모성, 늙음이고 여성-자연은 시종일관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아침노을을 더러운 피 웅덩이-생리혈로 묘사하고 대지는 죽음-부패와 여성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자신보다 서른살 '어린'여성의 육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순적 존재다. 자베트에게 어머니의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의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질문을 미루고, 아이비에게 이별을 편지로 통보하고 잠적하는 파버는 자신의 모순을 끝내 외면하는 극단적 회피자기도 하다. 근친상간을 확인한 후에도 자신의 죄책감을 축소시키고 합당함을 강조하는 마무리까지 한결같은 파버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논리로 무장한 채 궤변을 내뱉는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을텐데, 그것이 어찌나 과한지 삼백페이지를 삼일간 가슴 두들겨가며 읽어야했다. 아.. 괴롭다.
슈틸러를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인데, 슈틸러와 이 책의 구성이 상당히 유사하다.
심각한 회피성향의 백인 남성을 중심에 두고 사랑과 모성을 담당하는 여성 1과 자유롭고 개방적인 여성 2가 등장하고, 여성 1, 혹은 2는 둘중 하나가 죽음에 이르는. 슈틸러에선 율리카(아내)-지빌레(애인), 호모 파버에선 한나(아이의 엄마)-자베트(딸)이 그렇다.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 아이의 엄마와 함께하는 호모 파버의 이야기가 훨씬 충격적임에도 막스 프리쉬의 작품 전반에 걸쳐 관통한 주제-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 전달은 호모 파버 보다는 슈틸러쪽이 훨씬 잘 되었던 것 같다. 20세기 중후반 프로이트 영향을 받은 소설이 많긴 하지만 , 유독 이 소설이 엘렉트라 컴플렉스를 선망하는 듯 읽혀서 내내 괴로웠다.  '굳이' 이런 플롯으로 풀었어야했는지 납득되지 않았기에 독서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막스 프리쉬의 또다른 작품은 조용히 아주 먼 어느날로 미룬다. (프로이트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내 입장엔 고통이 쉼없이 가중됨)
​또다른 키워드인 '우상화'를 비교해 볼 만 하다.
<호모 파버>는 과학기술과 이성을 우상화 해서 생긴 비극이고, <슈틸러>에선 개인에게 우상화 된 역할을 부여해서 생긴 비극이다. 두 작품을 나란히 두고 읽으면 유사점과 대비점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하지만 프리쉬의 작품들은 인간 내부와 외부, 분열과 합치, 지양과 지향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연달아 읽기는 정말 쉽지 않다. 
삶을 보이는대로 받아들이든 호모 파버와 보이는 것 이면의 것들을 찾아 이해하는 호모 루텐스.  삶을 바라보는 두 관점은 슈틸러 91페이지에 자리한 '보이는' 과 '이해'라는 단어들의 거리만큼 가깝지만 영원히 포개질 순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호모 파버와 호모 루텐스가 절충안을 찾을 수 있겠냐는 물음엔 글쎄. 이것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난제 아닐까.   
덧> 을유세계문화전집의 안쪽 정장이 바뀌었다. 112번 물망초 까지 겉지 안쪽 양장이 광택 없는 패브릭이라 유분과 마찰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113번 호모 파버부터는 오염에 강한 한 재질로 바뀐 듯 하다. 겉지 제거하고 만져보곤 물개박수를 칠 수 밖에. 훨씬 좋다. 이전에 발간된 책들도 이렇게 바뀌는거면 좋겠다. (사진 2번 비교참조)  

 

       
>>으아... 갓 쪄낸 밤고구마 !!! 열불나고 가슴이 답답. 그럼에도 발터 파버같은 캐릭터가 꽤 흔하단 생각에 울고싶어집니다. 인류애 파사삭.
>>영화 <Voyager>, 국내에선 <사랑과 슬픔의 여로>라는 제목으로 1991년에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찾아서 보진 않았어요. ㅎ 

>>>> 삶은 기술로 정복할 수 있는 질료가 아니라고 한다. 자베트와 관련한 나의 오류란 반복이다. 다시 말해,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듯이, 그리하여 자연에 역행해서 내가 행동했다는 거다. 계속 더하기하면서, 말하자면 우리 자식과 결혼하면서 우리 나이를 지양할 수는 없는 거라고. p.242

  #호모파버 #막스프리쉬 #을유문화사 #도서지원  #스위스 #문학 #세계문학 #세계문학전집 #고전 #고전문학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bookstagram #book #reading #Stiller #MaxRudolfFrisch #MaxFri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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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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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전쟁을 치루는 두 영웅, 레드와 블루가 주고받은 편지.

✒여기 두 세력, 에이전시와 가든이 있습니다. 세계의 패권을 잡기 위해 상대의 미래를 헝클어트리기도 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기도 하죠. 에이전시의 요원 레드와 가든의 요원 블루. 그들은 서로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시간의 실을 오르내리면서 타래를 땋고 매듭을 묶고 미래를 조정하는 전쟁을 치룹니다.

레드는 전장에서 블루가 보낸 편지 한통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길거야.' 적을 도발하는 듯 한 내용의 편지 이후 두 존재는자신의 조직을 속이며 서신을 나누기 시작합니다.21세기 병원의 MRI로, 수도원의 납골당 동굴의 뼈 피리로, 나무의 나이테, 독을 품은 씨앗, 물범의 무늬, 변하는 용암의 색깔, 찻잔 속의 찻잎, 새의 깃털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은밀하게. 자신이 적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서로를 '사특한 블루' '피로물든 레드'로 부르던 편지는 좋아하는 작가, 시대, 음식과 향기, 혹은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던 '허기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실어나르며 '무드인디고' '조심성 많은 홍관조' ' 가장 아끼는 색상코드 0000FF' '진주보다 값진 현숙한 빨강' '사랑하는 청금석' ' 사탕단풍' '나의 청사진' '저물녘 서쪽의 하늘빛'으로 변해갑니다.

과연 아무런 목적 없이 편지를 주고 받는 걸까요.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집요하고 오래된 계획일 수도 있는데. 위험부담을 안은 채 이 편지들은 계속됩니다.심지어 아군에게도 쫓기고 또다른 추적자마저 붙은 채로요.

✒그들의 서신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건 길고 느리게 펼쳐지는 게임일 거야. 양 진영 모두 상대편에게 했던 것 보다 더 매섭게 우리를 뒤쫒을테고.

이 전쟁에서 어느쪽이 이기든 난 아무 관심 없어. 가든이든, 에이전시든, 우주의 기나긴 호가 어느쪽으로 기울든 간에. ​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이길지도 몰라. 너랑 나는.​

우리는 이렇게 이길 거야.」 ​

서신이 오가는 사이 세계의 경계면은 불꽃이 튀고 피가 낭자하기도 할테지요.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을 오가는 동안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순간도, 위험에서 구해줄 일도 있겠지요.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당신이 나를 속이는 건 아닐까 의심이 싹틀수도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어 되돌아가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기쁨과 애정과 행복 말고도 불신, 고통, 불안, 갈구, 혐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까지 나눠가지다보면 어느순간 레드는 블루의 것이, 블루는 레드의 메아리가 됩니다. 그렇게 레드와 블루가 완벽하게 섞인 후엔 둘 사이를 오가던 서신들의 여행은 멈출까요.

나는 너의 것, 너는 나의 메아리라고 적은 두 존재의 편지글을 읽다보니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에서 한아뿐의 한 대화가 떠오릅니다. "네가 내 여행이잖아"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서로가 여행이던 경민과 한아처럼 레드와 블루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메세지를 주고받을겁니다. 그러니까 서신은, 멈추지 않을거랍니다. (아마도요)그리고 두 진영 사이 다리를 건너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블루와 레드가 서신을 주고받는것으로 이어질테죠.

그들이 나눈 편지는 여기서 끝났지만 이 아름다운 편지가 저 너머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은 이런 바람을 담아 어느 차원 어떤 시간타래에서 무엇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을 그들에게 보내는 노란색 편지입니다. 부디 이번 시간타래에 왔을 땐 이 편지를 눈치 채 주길!

​덧)모든 생의 매 순간은 세계와 맺는 단 한번의 매듭입니다. 단 한번 묶을 수 있고, 묶고나면 지나가버려요. 레드가 블루에게 보낸 첫 편지에 <이 편지는 단 한번만 읽도록, 다 읽으면 없어져버리도록 만들어졌다> 고 적힌 것 처럼요. 레드가 블루에게 은밀하게 보냈던 편지처럼 누군가 당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메세지를 눈치챘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의 답장을 보낼건가요?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편지 한 통이 세계의 패권을 사이에 두고 싸우던 두 전사가 두 진영 사이의 다리, 제 3의 세계가 되게 한 것 처럼 답장 하나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르니까요.


🔮서간문과 SF, 스페이스 오페라와 시간여행의 만남이라니. 조합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신선합니다. 세계관도 확장력도 크구요 그러나 경장편이기 때문에 세계관에 막 적응하고 몰입하기 시작하니까 끝나버린 점은 아쉽습니다.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시리즈물의 골격만 본,혹은 도입부만 읽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해지고 각각의 이야기에 살이 붙었다면 (역자분이 적으신대로) 현란한 입담을 비영어권 독자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좋았을텐데.. 대신 넷플릭스 시리즈만들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씬이 역동적이고 전개가 스피디하고 텍스트를 이미지로 치환하기 좋았어요.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BSFA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장 좋아했던 편지는 내가 가장 <내가 가장 아끼는 색상코드 0000FF> 와 그 다음 레드의 편지.(아마도 118쪽).


🔮 읽기 전엔 표지의 강렬함에 놀라고 읽고 나선 표지의 절묘함에 놀랍니다. 책 한권을 한 컷에 담는 게 가능하구나. 띠지 빼고 한번 감탄하고 겉지 빼고 양장표지에 또 한번 감탄하고, 본문 글자색에 세번째 감탄하고. 크으... 책 속엔 레드와 블루, 그리고 블랙이 있으니까, 책 밖에 있을 독자는 노란색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배경이 노란색이 되었습니다. CMYK 완성! 쨔짠!

- 본문 cyan 색 글자가 살짝 눈이 시렸어요. 쪼오오오꼼.


🔖말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한편으론 곧 다리기도 해. 어쩌면 다리가 곧 상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편지는 구조물이지 사건이 아니니까. P.134

🔖은유는 중재할 줄 알아. 다리처럼. 그리고 말은 다리를 지을 때 쓰는 돌 같은거야. 대지에서 파낼 때는 힘들지만 재료가 되지. 새로운 것, 함께 나누는 것, 하나의 묶음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드는 재료. P.173




#당신들은이렇게시간전쟁에서패배한다 #아말엘모흐타르 #맥스글래드스턴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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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 당신이 커피에 관해 알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개정증보판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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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잔혹의커피사 #마크펜더그라스트 #을유문화사 
#도서협찬
📍 커피로 보는 세계경제사

스무살엔 사원증 목에 걸고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들어가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다. 어째서 월요일 아침의 커피가 투샷 추가한 벤티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여야 하는지. 그러니까 이건 로판으로 치자면 성수쯤. 직장인의 혈관에 헤모글로빈과 함께 흘러주는것. 커피를 맛으로 먹니 살려고 먹는거지.

​​브랜드별로, 원두별로, 혹은 아이스나 핫으로, 혹은 조제음료로 온갖 종류의 생명수들이 등장하는데 이 생명수들의 기본은 원두. 우리나라에선 한 알도 생산되지 않는 원두가 어쩌다 세계인은 성수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아니 어떻게 인간이 원두를 볶아서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려 마시는 법을 알아냈을까. 벼락맞은 원두를 오다가다 주워먹었을 리 없는데 지구반대편 아프리카대륙 에티오피아 고원 커피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열매의 추출액이 어쩌다 동아시아 직장인의 혈관에...

커피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되어 음용하게 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단지 에티오피아 고원, 염소들이 의문의 열매를 먹고 흥분상태로 춤을 추는 것을 본 염소치기에 의해 커피열매가 발견되었다는 설! 이 있는 이 검은 보석은 아라비아의 수피교 수도승들이 밤새 기도하기 위한 음료가 되었고 오스만제국의 터키인들에 의해 인도로 다시 네델란드로 점차 확산됐다. 바로 유럽으로 전파됐을거라 생각했는데 중세가 마무리되는 시점의 15~16세기 유럽 상황을 생각해보면 현재의 유럽지형이 아니라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오스만제국의 지중해중심의 해상무역을 연상시켜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커피를 수확해 나름의 커피문화를 확장시켰는데 각성효과가 있었던 커피의 효과와 사람이 모이는 커피하우스의 특성 상 혁명과 사상의 중심역할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식민국가들의 고혈로 유럽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커피소비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한 19세기후반, 20세기 초반엔 현대적 기업의 모습을 갖춘 커피 회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켈로그와 포스트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호랑이기운과 아몬드시리얼로 각인된 두 회사의 시작이 커피라니)​ 디카페인, 소포장, 진공팩, 인스턴트커피까지 다양화된 커피의 모습과 그 뒷이야기들, 재즈시대 골드러쉬와 제 1,2차 세계대전 산업화와 경제대공황을 맞은 커피이야기들은 어렴풋하게 알았던 것들도 있고 처음 접했던 이야기들도 있다.​​
19세기 후반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 커피 프랜차이즈 시대가 시작된다. 스타벅스. 우리나라에 1999년에 처음 개장하고 무수히 많은 문화적 반향을 만들어낸 브랜드. 커피는 믹스커피분말과 자판기, 혹은 캔커피가 전부였던 시절엔 밖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만 먹는 곳은 거의 없었다. -다방이 있었다고는 하지 말자.ㅋㅋㅋ- 대화를 하기 위해선 술을 취급하는 곳을 들어가야했고 늦은 시간 외출은 곧 불량함을 의미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문화에서 늦은시간까지 맨정신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시작된게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아니었나. 기억엔 이대점이 1호였고 덕분에 된장녀 메이킹에 빠지지않고 등장했던 세이렌문양 커피잔을 아직도 기억한다. ​
이십년 전엔 말도 안되는 이상한 공간이 지금은 없어선 안될 공간이 되었다. 노트북을 들고 작업을 하기도 하고 대학가에선 다들 책을 펴놓고 자신의 공부들을 하고, 주거지 근처에서는 가족단위가, 역에선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는 카페들은 커피 그 자체보다도 유연한 공간활용에 더 촛점이 맞춰졌다. 가격이 비싸다고하지만 글쎄 공간대여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어째서 이십년전엔 과소비와 허영으로 치부되었는지 모르겠다. (커피값의 몃배의 돈을 내면서 마시는 술은 괜찮고?.-사담이지만 취중진담이란 말 정말 싫어함 맨정신에 못할말은 술먹고도 하지말자)​

2000년 전후의 프랜차이즈 커피를 지나 지금의 커피는 조금 더 개인적으로 세분화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든 커피를 마실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이 정착되고 나니 이제는 조금 더 커피 본연의 맛에 집중하려는 시도들이 많아졌다. 자신만의 커피를 찾으려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원두를 납품받아 사용하기보다는 원두를 선별하고 로스팅을 하는 작은 스페셜티 카페들이 생겨났다. SNS를 통한 바리스타와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해졌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진 현대엔 한쪽이 흐름을 주도하긴 힘들어보인다.​


커피는 분명 기호식품이다. 없다고 죽지는 않지만 있으면 삶이 윤택해지는. 인간의 욕망과 가까운 물품인 덕분에 커피사는 다양한 인간 욕망의 역사와도 겹친다. 욕망이 발현되는 방식, 그로인한 결과와 파생상황들. 욕망을 수습하고 다시 욕망하면서 인간은 더 나은 단계로의 욕망에 다가선다.

그렇게 21세기의 커피는 이윤과 소비를 위한 커피가 아니라 생산자의 삶과 생산지의 환경을 지켜낼 수 있는 커피로의 생산, 유통의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나, 유통과정에서 생산지의 사람들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 커피 소비자가 참여하는 생태관광 도입처럼. 오래전 부와 계급 과시의 커피가 현대에선 상처입지 않는 삶을 위한, 모두를 위한 커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읽는동안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나'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카페인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커피가 가진 매혹의 향과 맛은 모른 채 잔혹한 카페인의 노예가 되어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라도 소망한다.

무엇이든 당신의 입맛에 맞으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내일, 잔혹한 월요일의 첫 커피가 당신의 정답이길 매 순간이 매혹이길 근미래엔 카페인이 아니라 커피를 좋아하게 되길 당신과 나의 온 생이 향기롭길.


---2013년에 출간된 책의 개정증보판이다. 이렇게 본격적인 커피사 책은 처음인 것 같은데, 참고문헌과 색인은 제외하고 본문만 700페이지. 적다고 할 수 없는 분량이지만 커피를 주제로 중세-근대-현대에 이르는 세계사에 정치 경제 문화 사상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를 담은 걸 생각하면 700쪽이 외려 적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 월요일인거 생각하니까 깝깝하고 커피 먹고싶고.... 근데 커피 먹고 잠 안오는 일은 없었어요. 커피 마시면서도 잡니다. 언제 어디서건 어떤 상황이건 잘 잡니다.자는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 (그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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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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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도, 이번 신간도 추천입니다. 페미니즘에 남성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시는 작가님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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