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스캇 R. 해리스 지음, 박형신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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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1장


  감정사회학은 감정을 연구대상 혹은 연구주제로 하는 사회학의 분과다. 그런데 감정이 학술적 연구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러 논란이 있다. 

  

  첫째, 다른 주제들과 비교했을 때 감정은 사회학의 주제로서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사실 감정은 우리 생활 어디서나 존재하며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이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사회학의 주요한 문제인 실업을 고려해보자. 실업은 단지 실업자의 경제적 문제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실업자의 자존심, 인격 등에 위해를 가하는 점에서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감정은 사회학의 여타 주제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 중요성이 결코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오늘날 급속도로 발전하는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감정을 전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 만약 감정에 어떠한 사회적 차원도 없이 순수하게 생물학적이라면,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특정 감정을 특정 상황에 일률적으로 표출할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의 경우를 고려해보면 이는 그렇지않다. 일반적으로 장례식이란 상황에서는 매우 엄숙함의 감정이 요구되지만, 몇몇 문화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따라서 감정이 전적으로 생물학적이지 않고 감정은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셋째, 감정의 발생 혹은 표현은 필연적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인간은 감정을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결혼식장의 손님으로 초대받을 때, 그 자리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우리가 장례식장의 손님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즉 우리는 상황에 알맞게 적절히 감정을 통제한다. 


  넷째, 일반적으로 감정은 이성과 대비되어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흔히 감정은 비논리적이고 충동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감정사회학의 주요 이론인 교환이론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공식적인 경제적 환경과 비공식적인 상호작용 동안에 재화와 서비스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거래한다. 그리고 흔히 이런 거래가 매우 이해타산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감정의 거래 또는 교환도 매우 이성적으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다섯째, 흔히 감정은 개인에게 배타적인 성질을 띤다고 여겨진다. 즉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알 수 없고 타인도 우리의 감정을 알 수 없으니 감정은 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감정의 성질이 전적으로 사적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은 우리 내부의 의지 혹은 무의식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감정은 말로 표현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표출은 우리는 감정 표출의 대상이 되는 청중과 우리가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달성하려는 목표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우리의 감정은 상당 부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어휘에 달려있다. 따라서 감정의 표현 혹은 분류는 가능하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청중, 목표, 어휘가 있다.


  일곱째, 감정은 심리학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학자들도 감정을 연구한다.


  감정이란 무엇인가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사회학적으로 사고의 단서를 제시하는 기능을 기능을 수행한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2장


  앞서 1장에서 우리는 감정의 발생 혹은 표현은 필연적이라는 편견이라는 편견에 맞서 감정은 우리의 통제를 받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 통제는 순전히 우리 개인의 자유에 따른 것인가? 즉 감정 통제에 영향을 끼치는 외부적 요인이 있느냐는 것이다. 감정 사회학자들은 이런 외부적 요인이 존재하며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감정규범’을 든다. 감정규범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감정규범의 상위 개념인 사회적 규범의 정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규범이란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관련한 문화적 기대를 의미한다. 사회적 규범은 문화적 기대인 만큼 문화에 따라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차이가 있다. 감정규범은 사회적 규범의 정의 중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감정인 규범이다. 이런 감정규범은 우리가 경험하고 표출하는 감정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기준의 기능을 수행한다. 


  감정규범은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다. 이런 특징에는 비가시성, 제재성, 학습성, 다양성, 모호성, 불평등 재생산성이 있다. 평소에 감정규범은 비가시적이다. 대인관계에서 서로 간에 감정의 주고받음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감정규범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규범이 위반되는 순간에 직면하면, 우리는 감정규범을 인지하게 된다. 인간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감정에 대한 기대와 사실이 불일치할 경우에도 감정규범을 인지하게 된다. 또한 감정규범은 제재성을 지닌다. 우리가 법을 위반하면 법에 의거해 제재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감정규범을 위반하면 타인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심지어 우리는 감정규범을 어겼을 때 우리 자신으로부터 통제를 받기도 한다. 다음으로 감정규범은 사회화를 통해 학습된다. 즉 우리는 선천적으로 감정규범을 마음속에 지닌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를 통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감정규범을 익혀나간다. 앞서 감정은 사회적이라고 했는데, 감정이 사회적인 이유는 감정규범이 사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규범이 다른 이유 중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감정규범의 학습성이다. 따라서 감정규범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양성을 지닌다. 동일한 사회에서 과거의 감정규범과 현재의 감정규범은 다를 수 있다. 또한 동시대에 서구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감정규범과 동양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감정규범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내의 모든 구성원들이 감정규범은 동일하게 지니고 있을지라도 이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법 또한 감정규범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을 규제하는 제도로서 기능한다. 상식적으로 성문화된 법은 감정규범보다 명시적이다. 그런데 이런 법도 법문의 해석과 법률의 적용에 있어 논란이 자주 발생한다. 법이 이러한데 하물며 감정규범은 그 모호성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감정규범에서 모호성 문제는 인간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 내부에서도 발생하는데, 이를 양가감정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감정규범은 은밀하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또한 법의 경우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법의 제정과 집행에 있어 지배집단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법은 기존의 불평등을 유지하고 재생상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찬가지로 감정규범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위계가 존재하는 대인관계에 적용될 경우 해당 위계관계를 은밀하게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가부장 사화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위계적이며 이런 관계에서 감정적 자원을 더 많이 동원할 것을 아내는 요구받는다. 


  우리가 감정규범에 위반되게 행위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의 유형, 강도, 지속시간, 시의적절성, 청중과 장소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3장


  앞선 장을 통해 우리는 감정규범에 따라 우리의 감정을 통제함을 알게 되었다. 즉 감정규범은 인간들로 하여금 규칙에 부합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이때 ‘규칙에 부합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정통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전략 즉 감정관리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는 거짓된 감정을 진실인 척 가장하는 표면연기와 진실한 감정이 내부에 형성되기 위해 노력하는 심층연기로 나뉜다. 표면연기는 겉으로 진실이나 속으로는 거짓인 감정을 연기한다. 반면 심층연기는 겉으로 진실이고 속으로는 진실이 될 감정을 연기한다. 전자는 우리의 감정 중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초점을 두는 반면 후자는 우리 내면에 초점을 둔다. 


  표면연기를 위한 전략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적인 것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내용과 목소리의 톤이 있다. 비언어적인 것에는 감정을 연기할 때 우리가 짓는 표정과 우리의 제스처 그리고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와 친분이 먼 분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게 되었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다면 친분의 정도와 관계없이 고인의 죽음을 마땅히 애도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별다른 슬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가장하게 겉으로 표출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부도덕하다거나 상식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우리가 고인의 유족과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기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그 목소리 톤 또한 너무 높아서는 안되고 무게가 깔린 중저음이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말을 할 때 우리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서는 안되며 매우 엄숙한 표정을 띠고 있어야 한다. 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장례식장에서 크게 몸짓을 하며 주변의 시선을 끌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장례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밝은 색 계열의 옷을 입어서는 안되고 어두운 색 계열의 옷을 입고 가야한다. 


  심층연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는 신체적 심층연기, 표출적 심층연기, 인지적 심층연기로 나뉜다. 사실 나중에 설명되듯이 이들 심층연기의 종류는 서로 간에 배타적이지 않고 또한 이들이 모든 심층연기의 경우를 포괄하는 것도 아니다. 책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표출적 심층연기는 신체적 심층연기 또는 인지적 심층연기를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심층연기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내면적 감정에 초점을 둔다. 그런데 표출적 심층연기는 내적 감정이 우리의 외적 감정에 부합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점을 살펴보면, 표출적 심층연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에도 신경을 쓴다. 따라서 표출적 심층연기는 내적 감정이 적절하게 형성되는 것과 그 감정이 겉으로 적절하게 드러나는 것까지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내적 감정이 적절하게 형성되는 방식에 바로 신체적 심층연기와 인지적 심층연기가 있는 것이다. 


  감정관리의 주체는 흔히 우리 개인이지만 때로는 둘 이상의 개인들이 주체가 되기도 한다. 이때 그들은 감정관리를 협력적이거나 적대적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 팀플 과제를 수행할 때 어떤 조가 큰 문제에 봉착할 경우 조원들은 일반적으로 표면연기의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려는 감정을 연기할 것이다. 반대로 원래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은 표면연기든 심층연기든 둘 사이에는 적대적인 감정을 연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감정관리는 흔히 거짓이라는 점에서 부정직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모든 감정관리가 부정직한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부정직한 감정관리가 반드시 부도덕한 것도 아니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4장


  교환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 쾌락주의자이다. 즉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이해득실 계산을 통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친구 또는 연인을 사귐에 있어 우리는 여러 가지 합리적 요인을 고려한다. 그들의 인격적 특성을 고려해보기도 하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의 기회비용을 따져보기도 한다. 경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관계에서도 한계효용의 감소와 같은 합리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살펴보면 우리가 타인을 상당히 합리적으로 대함을 알 수 있다.


  교환이론에 대한 비판은 모든 인간이 합리적 쾌락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제기될 수 있다. 비판에 따르면 부모와 활동가 등의 인물상은 교환이론에서 가정하는 인간의 반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환이론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그들의 활동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합리적 계산을 지적한다. 부모가 자녀를 정성껏 양육하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 자신의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고 미래의 경제적후생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활동가가 사회적 문제 해결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명예와 자존심, 권위 등이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타주의적 행동을 교환이론에서 가정하는 인간의 합리성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기는 한다. 따라서 클라크는 세 가지 교환논리를 제시하며 인간 사이의 재화,서비스,감정의 주고받음이 항상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교환논리에는 상보성의 원리, 자선의 원리, 호혜성의 원리가 있다. 교환논리는 어떤 상황에서 교환이 발생하게 되는지 즉 교환발생의 원인을 제시한다. 상보성의 원리에서 교환은 당사자가 지닌 역할에 따른 책임의식에서 비롯한다. 자선의 원리에서 교환은 곤경에 처한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 호혜성의 원리에서 교환은 교환을 함으로써 예상되는 이득을 고려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물론 이들 세 가지 교환논리가 배타적으로 감정교환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논리가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클라크가 지적한 대로 인간 사이의 교환이 항상 합리성에 기초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합리성이 핵심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러한 일반적인 경우에서 교환이 이루어질 때 감정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교환이론에서 답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교환이론에 따르면 감정과 교환이론의 관련성은 교환의 배경, 과정, 결과에서 나타난다. 사회적 교환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인간은 교환 논리, 그 중에서도 특히 비용-이익 분석에 의거해 교환의 가치를 매긴다. 이때 그 분석에 핵심되는 지표가 바로 교환의 결과로서 예견되는 감정이다. 즉 감정이 사회적 교환의 인풋으로 작동한다. 교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교환을 원활히 진행하여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것이다. 이때 앞선 장에서 살핀 감정규범 및 두 가지 감정관리가 개입한다. 교환이 이루어진 뒤 사람들은 교환의 결과에 대해 만족 또는 불만족을 느낄 것이고 이를 감정을 통해 표현한다. 즉 감정이 사회적 교환의 아웃풋으로 작동한다.


  교환이 이루어진 뒤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은 일치하거나 불일치할 수 있다. 교환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느냐는 사람들이 교환의 결과로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주요한 기준이다. 교환이 적절하게 이루어졌으면 당사자들 모두 만족감을 느낄 것이고 교환을 통해 서로의 관계는 이전보다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쪽 당사자가 교환을 통해 득을 보고 다른 당사자는 손해를 본 제로섬인 경우 혹은 당사자들 모두 손해를 본 경우 교환에 대해 서로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의 관계는 이전보다 손상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환의 적절성에 대한 의구심은 인간 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한 인간 내부에서 양가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5장


  인간의 노동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성과 관련된 일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지성과 사고력 등을 요구하는 인지적 노동이 있다. 또 육체와 관련된 일을 수행하기 적합한 체력과 손재주 등을 요구하는 신체적 노동이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과 관련된 일을 수행하기 적합한 감정을 관리할 것을 요구하는 감정적 노동이 있다. 특정 직업의 업무가 이 세 가지 노동 중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과업에 따라 각 노동에 대해 요구하는 비중이 다를 뿐,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감정노동을 수반한다. 즉 일의 전문성, 일의 상호작용의 빈번함과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들은 감정노동을 수행하기 마련이다. 


  노동은 피고용자와 고용자 사이에 거래되는 재화가 아닌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 고용자는 피고용자가 감정노동을 그 자신의 일에 적합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이런 전략은 고용, 훈련, 평가 시에 나타나고 또한 광고를 통해서 나타난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고용할 때, 고용조건 중 하나로 적절한 감정표현 수행력을 요구한다. 또한 고용주는 노동자를 고용한 후에도 그에게 감정적 교육을 시킨다. 이런 교육은 표면연기 교육과 심층연기 교육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고용주는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충실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서 지니는 것 또한 요구하므로, 고용주는 표면연기 교육보다 심층연기 교육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또한 고용주는 노동자가 행한 감정노동을 평가를 한다. 이때 평가의 주체로 고용주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감정노동의 대상이 된 고객 및 노동자의 감정노동을 옆에서 지켜본 동료들 또한 동반된다. 마지막으로 고용주는 광고를 통해서 노동자가 수행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양과 질을 높이려고 한다, 광고는 이상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연출하며 광고를 보는 고객들로 하여금 실제 노동자가 그에 적합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이 대면하는 고객들에 대해 그들이 본 광고에 적합하게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객들의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에 따른 불만을 참아야 하는 충격흡수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에서는 불일치가 발생한다. 즉 모든 노동자들이 동일한 양과 종류의 감정노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의 분업을 생각하면 이런 불일치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특정 요인에 의해 부당한 일의 분리가 발생한 경우 이런 불일치는 불평등으로 심화된다. 감정노동의 불평등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젠더, 인종, 지위 등이 있다. 젠더의 경우 일의 부당한 분리는 소위 말하는 유리천장 즉 직업별 분리가 있고 소위 말하는 유리벽 즉 동일 직업 내의 업무별 분리가 있다. 또한 동일 직업, 동일 업무에 불구하고 일의 차별적 분리가 있다. 인종 또한 젠더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분리가 일어난다. 지위에 의한 일의 부당한 분리는 앞의 두 요인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권력과 권위로 구성되는 지위는 일의 직접적 분리와 간접적 분리를 부당하게 야기한다. 일의 직접적 분리는 ‘조직의 보호물’을 통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비해 고된 감정 노동을 덜 수행해도 되므로 소극적 의미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일의 간접적 분리는 ‘지위 보호물’을 통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비해 다소 자유롭게 감정노동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 의미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감정노동의 결과는 대인관계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노동이 그렇듯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다. 이런 부정적 결과에는 노동자의 쇠진과 양가감정으로 인한 혼란 등이 있다. 감정노동의 부정성을 덜 느끼게 되는 요인으로 일 친화적 성격과 일에 대한 헌신적 태도, 노동자가 대하는 손님의 낮은 지위와 양식적 반응 등이 있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6장


  감각의 분류는 생리적-신체적 현상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훌륭히 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신체 감각은 불명료하기 때문이다. 특정 생리적 현상을 통해 우리 마음에 어떤 감정이 형성되었는지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상이한 감정이 유사한 생물학적 표현으로 나타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외부로 표현된 감각적 반응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또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유일한 하나의 감정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일련의 감정을 느끼고 난 후 우리의 신체에 특정 현상이 생겨났을 경우, 이 현상은 어떤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명확히 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또 우리는 감정을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즉 ‘모호성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느 정도 행복함의 감정이 들고 이것이 어느 정도로 외부에 표현되어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 행복함이란 감정을 모호하게 사용한다. 따라서 신체적 감각의 정도를 두고 감정을 분류하는 것은 반직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감정이 생리적 현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감정들에 대해서는 아예 생리적 현상으로 감정을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


  이상과 같이 신체 감각의 불명료함은 우리가 감정을 분류함에 있어 사회적 요소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끌어낸다. 이런 사회적 요소 중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모든 문화권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언어에 따른 감정어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마다 사용하는 감정어휘를 고려해야 문화권 간 감정 분류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어휘는 명시적으로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관용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를 은유라고 한다. 은유의 사용 또한 언어에 따라 차이가 보이지만 이와 더불어 문화적 규범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감정을 정확히 분류하기 위해서는 해당 은유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언어뿐만 아니라 그 문화권 내에서 통용되는 규범 또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의 감정어휘는 일반적으로 생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상황이란 특정 사건에 따라 발생한 감정을 분류하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험에서 훌륭한 점수를 받은 사건을 가정해보자. 이때 우리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관점에서는 기쁠 수 있지만, 나보다 점수가 낮은 친구들도 존재한다는 관점에서는 안타까울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맥락, 청중, 목적에 따라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관리한다. 즉 공적인 상황이냐 사적인 상황이냐에 따라, 우리의 대화상대에 따라, 우리가 표현하느 감정을 상대가 이해해주기를 바라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 표현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감정분류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 감정을 매우 강하게 또는 약하게 느끼고 있는데 타인은 이런 나에게 특정 감정을 좀더 약하게 또는 강하게 느낄 것을 권유할 수 있다. 이때 우리가 그런 권유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감정분류를 스스로한 것이 아닌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거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상호작용을 거쳐 분류되는 감정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개인적 감정의 확실성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즉 내가 나의 감정을 제일 잘 안다고 단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감정노동을 함으로써 감정분류를 알맞게 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적 요소들은 우리의 감정분류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생물학의 방식처럼 우리의 반응을 통해 반응을 산출한 감정을 추론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 중 7장 


  모든 학문은 각각이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 어떤 학문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그 학문이 추구하는 목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감정사회학을 왜 공부해야하는지는 감정사회학이 추구하는 학문적 목적의 연계 속에서 고찰될 수 있다. 우선 감정사회학은 구체적인 삶 속 우리들을 다룬다. 즉 감정사회학은 추상적이고 거대한 어떤 주제가 아니라 사화 속에서 다양한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며 감정을 표출하는 우리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한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사회학을 공부함으로써 감정을 지닌 인간들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효용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효용이 단지 즐거움 또는 신선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기까지 하다. 일상적인 것들을 감정사회학적 개념들을 동원해 살펴보면 기존의 관점으로는 포착할 수 없던 것들까지 분석하고 이해하게 되어 세상에 대해 보다 나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일상에서 우리가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처리하는데 중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로서 일종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키우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그것을 무관해 보이는 별개의 상황을 연결하고 그 둘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사회학적 상상력을 감정사회학에서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의사와 스트립댄서은 그들이 벌거벗음을 대하는 데 있어 일종의 감정관리를 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담고 있는 형식 또는 형태는 유사할 수 있음을 고려해보면, 감정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회적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감정사회학은 일상적인 것을 연구하지만 그렇다고 일상적인 것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즉 감정사회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리하고 표현하고 교환하는 감정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문화적 가정과 믿음에 주목하고 그것의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는 등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닐 것을 요구한다. 사회학의 학문적 목적은 사회 내 다양한 불평등을 분석하고 이를 시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정사회학도 단순히 인간들이 사이를 오가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이 학문적 목적은 아닐 것이다. 앞선 장에서 살펴본 대로 감정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다양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감정과 관려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감정사회학의 주요한 학문적 과제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감정사회학은 감정을 중심으로 우리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학의 분과가 그러한 것처럼)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구상하는데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를 읽고난 후


  고등학생 시절 사회문화를 배우며 사회학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뉨을 알게 되었다. 개인을 구속하는 구조나 제도를 연구하는 거시적 관점과 구조와 제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유롭게 행위하는 인간들을 연구하는 미시적 관점이 있고, 이 중 어느 것을 택하는지에 따라 사회학 연구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하였다. 사회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학의 주요 문제인 사회질서, 불평등, 복지, 실업, 세계화 등은 대부분 거시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사회학과에 진학한 것도 사회 속 개인을 이해하는 미시적인 주제가 아니라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거시적인 주제를 염두하고 내린 결정의 결과였다. 물론 미시적인 것을 연구하는 사회학의 분과도 그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사회학 연구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감정사회학으로의 초대>는 사회 속 개인들을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관점에서 사회학을 연구하는 감정사회학의 학문 전반을 간단하게 개괄하여 소개한다. 감정이란 주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만큼 상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감정을 학문적 차원의 논의로 끌어올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 증진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신선하기는 했다. 그러나 평소 미시사회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편견 때문인지, 그 호기심은 마치 물리학에서 물리세계 이면의 운동원리를 배우는 것과 유사했다. 즉 사회 내 개인들이 감정규범에 따라 감정을 표면적으로든 심층적으로든 연기하고 이것이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흥미롭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사회학 문제들이 나에게 지적 탐구 욕망을 불어넣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해당 책의 4장까지는 어 정도 이런 생각이 들면서, 사회학개론 수업의 첫 번째 과제로 사회학을 다루는 수많은 책 중 왜 하필 이 책을 교수님께서 요약하라고 하셨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책의 5장을 넘기면서부터 상당히 달라졌다. 5장의 주제는 노동의 한 종류인 감정노동을 다루며 감정노동에 바탕을 둔 사회적 불평등의 모습을 다룬다. 이 장을 읽으며 나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 왜 교수님께서 이 책을 사회학개론의 첫 번째 수업과제로 제시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5장을 통해 미시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관점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당히 깊은 연관성을 맺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5장은 감정을 다루는 미시적인 관점으로도 불평등이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고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나에게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이 아니라 관습과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했다. 그리고 거시적 차원의 고찰만으로도 모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가능하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해왔다. 그런 나를 책은 사회학의 주제들을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유기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불평등이 단순히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 간 상호작용에서 암묵적이고 은폐된 채 이루어지는 말과 행동에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불평등은 거시적으로 고찰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개인들의 행위를 탐구하고 이것의 바탕에 깔린 부정의한 통념과 믿음을 고발하는 노력이 이뤄졌을 때 적절히 해결될 수 있다.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 사이에 적절한 다리가 놓여졌을 때야 비로소 사회학이란 학문을 적절히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값진 교훈이다. 


  언젠가 '균형'이란 대립되는 양자 사이의 중간쯤에 고정된 위치를 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균형점을 탐색하려는 노력이라는 생각을 접한 적이있다. 마찬가지로 학문으로서 사회학의 매력도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관점 사이를 오가며 규정할 수 없는 균형을 끝없이 찾으려는 노력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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