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2001년 1월
평점 :
나의 친정은 이북에서 피난내려온 개성사람 집안이다. 아버지까지 개성에서 태어나셨으니 우리 집은 이북의 풍속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지금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두 분 모두 돌아가셔서 명절을 그전처럼 거하게 지내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보아온 풍속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충청도로 시집와서 제일 이상했던 점은 설 때 만두를 빚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명절이면 다른 집들도 다 만두를 빚는 줄 알았는데 충청도는 알떡국(떡만 넣고 끓이는 떡국)을 끓인 다는 것이었다. 그 지겨운 만두를 안 빚어서 좋았지만 이상하게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고 눈물이 났다.
우리 집은 개성에서도 종가집이었기에 피난 나온 고향 친지들이 명절 때면 우리집으로 많이 모였었다. 설을 며칠 앞두고 우리 집안의 모든 식구들은 미리미리 만두를 빚었는데 집에 있는 채반이란 채반은 모두, 쟁반이라 쟁반은 모두 만두를 빚어서 놓을 정도였다. 만들면서 먹고, 삶아서 냉동실에 얼릴 때 먹고, 터진 것 먹고, 명절날 아침에 먹고, 손님 올 때 마다 새로 끓일 때 먹고, 명절이 지나고 나서도 냉동실에 얼린 만두를 꺼내서 끓여 먹고... 진짜 얼마나 지겹고 힘들고 허리가 아픈지 만두를 안 만들어 본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옛날 명절이 그리워지고 만두를 빚던 가족들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손 큰 할머니가 꼭 우리 할머니 같다. 먹고도 남을 만큼, 나 먹고 남 퍼줄 것까지 생각해서 넉넉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이 꼭 우리 할머니 같다.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잘 만드나 감시하는 것까지 꼭 같다. 우리 할머니가 나뭇가지에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일은 벌여 놓고 쏙 빠져서 감시하는 모습이 같다는 뜻이다.
호랑이네도 토끼네도 여우네도 온갖 동물들이 모여서 만두를 빚는 모습이 정말 정겹다. 니가 만든 만두에 표시해놓고 너만 먹으라고 구박하던 언니들 모습도 생각나고, 속이 얼마 남지 않을 때가 더 지겨워서 나중에는 만두가 점점 커지던 옛 생각이 나서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