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앞으로 계속 나올 현대사에 대한 첫 발걸음이다. 흔히 현대사라 하면 광복이후를 이야기한다. 왜 저자는 1970년대를 처음 집필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우리의 눈높이를 경정지은 1970년대'라는 저자의 말처럼 해방이후 근대화의 물결을 따라온 우리의 현대사에서 1970년대는 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우리의 인식을 결정짓는 시기였다. 이렇게 자리잡은 인식들은 현재까지 계속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는 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정치, 경제등의 모든 원인을 1970년대에서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제도외의 또 다른 문제 그것을 만들고 지키고 운용하는 일반 사람들의 가치관, 인식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간과할 수 없는 시대임은 틀림없다. 서문에서 저자는 최대한 양쪽의 자료를 모두 다룸으로써 객관성을 추구하려 했다지만 저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든 이 책을 나 읽고 난후 나의 느낌은 집필시 저자의 의도는 벌써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책을 집필하면서 객관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물론 객관을 가장한 양비나 양시론적인 중립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저자의 서문에서 밝힌 뜻과는 달리 전형적인 '강준만식' 글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1970년대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박정희와 유신'으로 표현할수 있을것이다. 정말 이 정도 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적도 있고 나도 모르게 울분이 생기는 적도 있었다. 현대사의 중요성을 간과한채 아니 알면서도 객관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핑계로 현대사가 중요하게 다르어 지지 않는 우리의 역사 수업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왜 학생시절 이런것들을 듣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강준만의 박정희의 공과 실을 나누어 생각하자는 논리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발전'이라는 고지를 쉽게 내주어 박정희 지지 세력들과의 논리적(?)대결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상대와의 토론도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경제적 발전이 '박정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가?' '힘들게 일한 농민, 노동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은 가능하지만 난 그러한 경제적 발전의 공(?)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일들을 박정희와 유신체제가 자행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자유는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행동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다. 객관성이라는 논리를 앞세운 중립론자들이 체제에 순응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에서 강준만이 지적한 '이중성'에 주목하고 싶다. 자유를 누리면서도 감성적으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습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직 우리가 1970년대의 폐허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가? 민주주의는 어느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간단한 사실도 이해하지 못하는 수구언론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인가? 이는 1970년대의 희귀를 원하는 그 체제하의 수혜자들이 현재의 정치 상황과 문제를 확대하며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데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과연 현재가 1970년대 보다 못한 것인가? 현재 우리가 누리는 (1970년대 보다 좋아진)자유는 인식하지 못한채 매혹적인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것은 아닌지. 그 효율성이 그것만을 추구한 결과의 문제점들이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문제가 되면서도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를 고치고 나아가는데 1970년대가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주객전도. 정확한 표현이다!! 그 체제하의 수혜자들이 진지한 반성과 사과없이 박정희 시대로의 향수를 직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현상황에선 더욱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는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