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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색일대남
이하라 사이카쿠 지음, 손정섭 옮김 / 현실과미래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1. 불쾌한 서평을 접하게 될 독자에게 미리 고함
이 서평은 아마 기분 나쁜 감정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불쾌해지지 않으려거든 여기서 읽기를 그만두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란 나라에 관한 찬양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커다란 편견을 광정하고픈 욕망에서 씌어진 글임을 미리 밝힌다. 이하라 사이카쿠에 관한 유일한 번역서의 서평을 쓰려고 맘먹으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일본과 일본문화를 생각하게 됐기 때문인다. 출발점은 이거였다. 일본문화는 정말 한국문화에 젖줄을 대고 있었을까? 미리 답을 하자면, 아니올시다라는 것.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은 한국일 뿐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단서를 미리 밝히는 것은 사이카쿠의 소설에 관한 서평을 통해, 일본문화의 독창성과 특수성이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2. 도쿠가와 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사점과 차이점
도쿠가와 시대와 조선시대은 시기적으로 같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특히 외부세계에 문호를 닫아걸고 자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본 시기였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쇄국의 노선을 걸었던 두 국가의 운명은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단순히 경제적인 발전만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다. 만약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한순간에 꼴깍 일본섬이 바닷물에 잠긴다고 치자. 그럼 일본은 과연 완전히 사라질까. 적어도 내 소견으로는 일본은 살아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적인 강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토확장주의는 그저 땅뙈기 몇 평을 더 차지하려는 영토분쟁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무시무시한 민족이다. 일본문화는 일본이란 네 쪽짜리 섬이 사라져도 지구상에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증거는 대보라면 숱하게 많은 것을 댈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니뽄필"은 차치하고, 일본만화영화인 아니메의 유산은 인류역사상 가장 탁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문화장르를 개척하는 데 있어 일본만한 창조성을 지닌 집단은 흔치 않다. 마야나 잉카처럼 일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열패감에 젖어서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일본문화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17세기 조선와 일본은 모두 유교을 숭상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처럼 모노톤이 아니었다. 미나모토 뇨엔이 쓴 <도쿠가와 시대의 철학사상>을 보면 얼마나 다양한 사상이 편견없이 자유롭게 탐구되었던가를 잘 알 수 있다. 성리학, 양명학, 난학 등 갖가지 학문이 꽃피어 근대로의 길을 재촉했다. 그럼 조선은? 조선 역시 훌륭한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서구와 달랐을 뿐이다. 조선이 형제국으로 자처했던 명나라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앞선 문명을 자랑하던 국가였다. 조선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는 서구유럽이 숱한 분쟁과 갈등을 통해 성취했던 것들을 적어도 2, 3백년 전에 이미 자기것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국가체제의 주도면밀함에 있어서 조선은 최강국이었다. 영토는 작았지만 사상 면에서는 최고 수준을 구가하고 있다. "과거제도"라는 관료선발 시스템은 일본에는 없는 조선만의 것이었다. 조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정교한 눈물시계(자격루)처럼 잘 짜여 돌아가는 기계장치와 같았다. 조선이 고리타분한 유교국가였다는 편견은 수정되어야 한다. 조선문명은 당대의 어느 국가보다 앞서 있었다. 그럼 일본은? 일본문명은 조선에 영향권 아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나름의 문화가 없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다. 조선이 관료주의에 아성을 쌓아갈 때 일본은 상업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도쿠가와 시대와 조선시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과거제도와 상인문화의 존재 유무다. 일본어로 죠닌으로 불리는 상인계급의 성장은 도쿠가와 시대를 조선시대와 다른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물론 조선에도 "부보상"(보부상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장난으로 생겨난 용어였음)과 같은, 훌륭하고 뛰어난 유구한 상업의 전통이 있지만, 일본의 죠닌처럼 문화적인 공적을 다양하게 쌓지는 못했다.
3. 죠닌 출신의 문인, 이하라 사이카쿠의 등장
<일본문화사>를 보면 일본의 문학전통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새삼 놀라게 된다. 서구 개인주의의 등장이 근대의 길목에서 개화됐던 것과 달리, 일본의 개인은 오래 전부터 그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문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마쿠라노소시>나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작중화자들은 단순히 임금만을 그리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의 내면을 향한 복잡하고 섬세한 시선이 늘 내재되어 있다. 물론 이런 전통이 조선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과 질에 있어서 확언하건대, 조선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쩜 그런 문화적인 전통이 있었지만 명맥이 끊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재 남아있는 자료를 근거로 판단해볼 때, 일본 고전문학의 감수성은 한국 고전문학의 감수성에 비해 한 단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개인이라는 현대의 기준을 놓고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오해없길 바란다. 이하라 사이카쿠의 등장은 도쿠가와 시대의 죠닌 문화의 융성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죠닌 문화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사이카쿠와 같은 뛰어난 문인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죠닌 문화의 특성은 근엄한 똥폼을 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식인들이 고담준론으로 구름 위를 걸을 때, 이들의 말과 생각은 시장바닥과 유곽을 거닌다. 우리의 생활과 좀더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의 문학이 지닌 서민적인 활력이 조선시대에 와서 퇴화한 반면, 일본은 그 반대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생가해볼 수 있다. 역사는 항상 현재의 관점이 투영된다. 아무도 과거사를 과거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고대사는 허구의 허방에 빠질 가능성이 늘 잠복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문학사에 대한 평가 역시 현재의 관점을 무시할 수 없다. 현재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서 고려속요 "쌍화점"의 전문을 본 사람은 대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 짧은 민중가요 속에서 우리문학 전통이 일본의 체계적이고 장대한 서사전통에 어떻게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문학을 놓고 이야기하면, 모골이 송연해질 뿐이다.
4. 사이카쿠의 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것의 의미
일본문화에서 부러운 것은 똥폼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숙주의에 찌든 한국문화와 달리 일본문화는 마치 일회적인 듯한 인상을 준다. 인생이 한번뿐이듯 먹고 싸면 그만이라는 식의 문화적 분위기가 있다. 죽음과 허무에 바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기묘한 풍토다. 그럼 그것이 치졸하고 미개한 것인가. 적어도 형이상학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문화의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일본문화에서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조선의 혈통을 지닌 우리들은 늘 고상한 생각만 하면서 사는가. 그렇지 않다. 먹고 싸고 자고, 울고불고 사랑하고 싸우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일에 우리는 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가. 일본의 문화적 전통은 어찌 보면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유연하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성문학 범주에 들어갈 만한 고전소설이 버젓이 수록되어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성적인 것을 자극하기 위해 그것을 수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하라 사이카쿠의 글이 의미 있는 것은 도쿠가와 시대의 민중풍속을 그만큼 잘 보여주는 텍스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조선의 저자거리를 보여주는 문학작품은 대체 얼마나 있는 것일까. 사설시조의 등장도 조선 후기에나 있었던 일이다. 더욱이 여항문학의 발전이나 중인 계급의 문학적 참여도 나중 일이었다. 다양한 문인들이 나와 격조높은 문재를 뽐내긴 했지만, 성을 소재로 한 이런 유들유들한 글은 없었다. 아니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자들은 그런 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눈치를 봐가며 "세책점"에서 음탕농염한 소설을 빌려 읽었을 숱한 사람들이 있었건만,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을 방각본소설 한 편이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 과거의 국어교과서였다. 지금의 사정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문학사에서 스쳐가는 한낱 에피소드에 불과하지, 정당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치밀하게 천착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수(소설 구연(口演)하는 사내)의 구성진 목소리를 들으며 흠뻑 취했을 민중들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사이카쿠의 소설이 지닌 완성도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문학적 구성과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싫어, 자존심 차원에서 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소개하고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의 현실을 말이다. 그런면에서 사이카쿠의 글이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사실은 일본문화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일면이라 하겠다.
5. 귀여운 호색한 요노스케의 일대기
이제 책 이야기를 하자. 용두사미 꼴이 됐지만, 이 책은 색정광이라 불러 마땅한 요노스케란 인물의 여성 편력기를 다루고 있다. 요노스케는 7살 때부터 여성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평생 많은 여성관계를 맺으며 산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생사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그려보이고 있는 것이 색다른 면이다. 번역본에는 사이카쿠가 직접 그린 판화가 수록되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마치 삼국지 연판화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판화 속의 인물들은 나와도 요노스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패랭이꽃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은 사람만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주는 기쁨은 일본의 유곽문화와 죠닌문화를 알 수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요노스케란 인물의 성격은 끊임없이 실소를 자아낸다. 여자와 자기 위해 진지한 생각을 쥐어 짜내는 요노스케는 귀여운 호색한이다. 에도시대(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이 어떠했는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글이 또 있을까.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문학작품이다. 300년 전 일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은 만큼 생생하다. 이 책은 이미 절판상태에 있는 책이다. 다른 경로로 구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서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출판에 몸담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하라 사이카쿠의 글들을 모아 여러 권으로 묶여내도 일정한 성공을 거둘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된 번역으로 포장만 잘 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 여기서 한마디만 하고 이 지겨운 글을 그치고자 한다. 이제 더이상 일본이 우리의 영향을 받았네 어쩌네 하는 식의 문화전파론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일본문화가 한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문화는 원래 주고받고 하면서 변화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집중하고 신경써야 할 것은 문화적 수용의 주체성이 아닌가. 주체적인 문화수용이란 측면에서 일본은 일본 나름의 길을 걸었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니 일본문화를 바로 보고 제대로 보자. 우리보다 나은 자산들이 무척 많다는 것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하이쿠, 요키요에, 노, 사무라이 등등 일본만이 지닌 것들을 공부함으로써 우리 것의 독창성을 탐구하는 기회를 삼았으면 한다. 우리문화의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전통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터보자는 말이다. 우리 고전문학에는 귀여운 귀여운 요노스케 같은 인물은 없을지언정 허생과 같은 골때리는 수완가 선비는 있지 않았는가. 우리는 우리 나름의 전통을 열나게 찾되 남의 나라의 좋은 전통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당당하게 문화적인 차이를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6. 참고로 소개하는 번역본에 수록된 <호색일대남>의 차례
제1장 어린 피, 못 속이는 피-7세:어둠속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8세:그래도 연애편지는 써야 한다, 9세:은밀한 곳을 훔쳐보다, 10세:남자 대 남자, 11세: 아름다운 소년 요노스케, 12세:번뇌의 때밀이 여인, 13세:이별은 현금지불로// 제2장 호색꾼의 향기는 점점 짙어지고-14세:혼자 침실로 간 이유, 15세:머리를 잘라도 떨칠 수 없는 미련, 16세:쓰디쓴 첫경험, 17세:오, 굳은 맹세, 18세:두 자매, 19세:땡중으로 추락하다, 20세:사창가의 기둥서방// 제3장 색욕에 불타는 청춘-21세:연애착수금, 22세:색은 때와 장소가 없다, 23세:적을 알아야 한다, 24세:광란의 밤을 낚다, 25세:알고보면 외로운 남자, 26세:창녀촌의 굴뚝연기, 27세:전혀 색다른 맛// 제4장 후회도 갈등도 물리치는 힘-28세:인과응보의 관문, 29세:요노스케의 눈물, 30세:한맺힌 여귀들, 31세:생명을 구해준 육봉, 32세:낮여우, 33세:요노스케 최초의 질투, 34세:꿈에 그리던 돈,돈// 제5장 사랑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35세:드디어 정식 부인을 정하다, 36세:깊디깊은 하룻밤 의리, 37세:몸도 마음도 예쁜 여자, 38세:목숨 건 구슬빛 사랑, 39세:나 참 더러워서, 40세:사람 볼줄 아는 눈, 41세:일생일대의 봉변// 제6장 사랑의 화신, 요노스케-42세:죽음 직전에 건진 사랑, 43세:여자는 많아도 최고는 하나, 44세:환상속의 그대, 45세:품질제일주의, 46세: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47세:묻혀진 진실, 48세:삼각관계의 해프닝// 제7장 지칠줄 모르는 유곽행-49세:타유의 고집, 50세:통큰 한량들의 잔치, 51세:기생 길들이기, 52세:수수께끼 놀이, 53세:사랑의 일기장, 54세:아즈마에 대한 추억, 55세:아게야에서 키운 우정// 제8장 영원히 지지 않는 패랭이꽃-56세:타유여 영원하소서, 57세:약에는 약, 강에는 강한 여자, 58세:초심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 59세:타유 전시회, 60세:사랑의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호색일대남 해설//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