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 위대한 여성들의 일러스트 전기 라이프 포트레이트
제나 알카야트 지음, 니나 코스포드 그림, 채아인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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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프리다

글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지웠다 썼다 반복하면서 기억을 더듬으려 먼 곳을 응시해 봅니다. 오래 전, 건강하지 못한 나는 꿈을 잃고 방황했어요.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권태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나락에 떨어트렸죠. 항상 여기가, 내 마음이 지옥이 아닌가 절망했습니다. 이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죽음 뿐이라 믿는 우울이란 덫은 애써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내 걸음걸음 마다 놓여 있었어요. 구원을 바랐습니다. 사랑에서 의미를 찾아볼까, 종교가 삶을 지탱해 줄까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헛되고 부질없는 인연은 나를 더욱 더 염세적으로 만들었어요. 나는 계속해서 작아졌고 언젠간 스스로를 좀먹는 자괴감마저 느끼지 못하도록 모르는 사이 의식이 멈추기를 기도했어요.
그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을 읽고 쓰는 것 뿐이었습니다. 내가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그것뿐이었어요.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빌리다가 우연히 당신을 만나게 되었어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하나로 이어진 듯한 진한 눈썹과 여자치곤 많은 입술 위의 수염. 사진 밖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강렬한 시선에서 나는 생명의 힘을 느꼈습니다. 어릴 적 읽었던 멕시코 동화가 스치듯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얼굴에서 사막 위에 눈이 부시게 떠 있는 태양과 그 아래에서 꿋꿋하게 살아있는 선인장, 불타오르는 빨강, 강인한 수탉이 보인 건 당신이 조국을 영혼에 담아 사랑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당신의 그림에서는 내가 본 눈부신 생명력 뿐 아니라 삶의 절망과 슬픔이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더욱 더 알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다 담기에는 너무 참혹한 일들이 당신에게 자주 벌어졌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 인생을 두가지 큰 사건을 들추자면 첫번째는 골반이 부숴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고 두번째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이 아닐까 싶어요. 하나는 육체를, 다른 하나는 영혼을 앗아갔으니까요.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육체와 사랑의 상실이 아니었나 싶어요. 꼿꼿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자화상도 물론 있었지만 척추에 못이 박혀있는 체 울고있는 【부러진 척추】나 사랑에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한 【단지 몇번 찔렀을 뿐: 몇개의 작은 상처】 같은 작품에서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얻었어요. 몇달 전에 당신의 전시회에서 울면서 봤던 그림은 【헨리포드병원】이었어요. 남들은 쉽게 갖는 건강, 사랑, 아이를 어떤 사람은 평생 포기하며 살아가야만 할까요. 내가 당신이었다면 이 모든 걸 버틸 수 있었을까요. 당신처럼 상처를 그대로 응시하지 못하고 도망쳤을 거예요.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나와 마주친 듯 하여 먹먹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디에고를 나는 좋아할 수 없어요. 그는 당신의 동생하고도 바람을 피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그림 곳곳에 그가 남아 있어 얼마나 그를 사랑했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모르겠어요. 어떤 매력이 있길래 온생을 다 바쳐도 지울 수 없는 각인을 남긴 건지. 불안과 우울로 덮힌 사랑은 예술의 영감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삶에는 큰 어둠만 안겨주는 듯 해요.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팠을 지, 같은 여자로서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괴로웠던 시간을 지나 나는 조금은 편안해졌어요. 나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당신의 작품과 당신이 남긴 삶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말 한마디들이 나를 좀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걸 알아요. 고통 안에서도 자신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던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외출이 행복했기를, 당신의 바람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나 역시 바라며.

추신. 도서출판 <이종>에서 당신의 일대기를 담은 감성적이고 사랑스러운 책을 출간했어요. 당신의 팬이라면 응당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핑크와 당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당신의 얼굴을 그린 일러스트에 묘하게 걸맞더군요. 이종의 이번 시리즈 중 버지니아 울프와 제인 오스틴을 소장하고 있는데 모두 아이들 읽기에도 좋은 듯 해요. 이렇게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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