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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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줘, 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오래 전 읽었던 구해줘, 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구해줘는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로 당시 베스트 소설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허무맹랑한 액션과 로맨스가 뒤엉켜 있는 소설이라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데 왜 문득 떠올랐는 지는 당최 알 수 없다. 어떤 남자는 한 여자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어떤 남자는 한 여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나를 찾아줘를 읽고 나니 이 소설 역시 영화 같다. 하지만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다.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분명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이 소설은 조만간 영화로도 개봉된다니 기대가 무척 크다.

  하버드 출신에 심리학자이자 베스트 소설 작가인 부모를 둔 아름다운 에이미는 가난하지만 유머있고 잘생긴 기자 닉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결혼 5주년에 에이미가 누가봐도 무슨 일이 생겼을 법한 흔적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다. 결혼 기념일 마다 에이미는 닉에게 과거에 자신들의 특별한 장소에 선물을 남기는데 곳곳한 있는 그녀의 작은 선물은 닉을 그녀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모델로 소설을 썼기에 유명인이었던 에이미의 실종은 큰 화제가 되고 곧 언론을 통해 크게 부풀려지기 시작한다.

  소설은 현재 닉의 상황과 아내의 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처음 닉과 에이미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여느 커플들처럼 풋풋하고 설렌다. 둘은 서로의 외모와 유머에 끌렸고 서로에게 진정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결혼을 한다. 에이미의 일기를 읽어보면 처음에 그녀는 행복했었다. 하지만 닉이 신문사에서 잘리고 난 후 그녀의 삶은 부숴지기 시작한다. 가난한 닉은 부유한 에이미의 집안에 어느 정도 열등감이 있었는데 자신이 수입이 없어지는 상황이 되자 그 열등감이 폭팔한다. 아내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부부는 닉의 본가가 있는 곳으로 낙향한다. 몰락하여 살던 사람들마저 모두 떠나고 있는 곳이다. 거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패배자들이다.

   에이미의 일기를 보자. 그렇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삶에도 에이미는 닉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닉은 에이미에게 무심하다. 심지어 술에 취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에이미는 비참하고 절망에 빠지지만 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아기를 갖고자 한다. 그녀가 그토록 되고 싶지 않던 여자들처럼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며 버러지처럼 발버둥친다. 게다가 그녀를 모델로 한 어린이심리동화 책으로 대박을 쳐 부자라고 생각한 그녀의 부모가 사실, 시들어진 인기와 무분별한 소비로 파산하였고 되려 그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구하는 현실에 그녀는 낙담한다.

  닉, 잘생긴 외모와 매력적인 웃음만 있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남자. 우리 엄마는 항상 말씀 하셨다. 열등감 있는 남자를 만나서는 안된다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 말을 뼈져리게 느꼈다. 아내가 가진 거액의 유산을 스스로 번 돈이 아니라며 조롱하면서도 그 돈이 필요하다고 아내에게 종용한다. 아내에게 도망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용기는 나지 않자 어린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며 아내를 모욕한 비겁한 남자.

  닉은 정말 아내를 살해했을까?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녀를 완전히 이해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왜인지 그녀에게 동정이 간다. 서로에게는 소울메이트인 부모는 그녀를 이용해 돈을 벌며 그녀를 조종해서 완벽한 인형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 유년시절은 그녀에게 가면을 씌웠다. 그러다 자신의 가면 밑을 사랑해 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는 자신의 가면만을 사랑한 것이다. 나도 한때 그랬던 적이 있다. 내 모든 걸 내보이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스스로 벽을 만들었다. 이 사람은 나를 알아주겠거니해서 문을 열었다가 마음을 다치고 그 문마저 없애버렸던 시절이 있어 에이미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녀는 자신의 가면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큰 상처를 받고 더욱 더 자신의 가면을 공고히 하고 복수를 다짐한 게 아닐까 싶다. 모든 게 완벽해야만 하도록 부모와 남편이 그녀를 만들어놓고는 오히려 그들이 그녀를 망가뜨린 벌이다.

  둘이 서로를 만나지 않았다면 각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해피엔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만나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감정의 화약고에 불을 당겨 부싯돌이 부딪히는 파편의 열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다 불이 나기 시작하면 상대를 태우고 끝내는 증오만 남는 관계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모르는 게 좋을, 자신의 밑바닥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라는 건 비극이다. 에이미는 자신을 꼭두각시로 만든 이들을 그토록 증오하고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국에는 주위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렸다. 증오는 증오를 또 다시 낳았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누구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도 알기 힘든데 더구나 상대의 진짜 모습을 알긴 힘들다.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그저 추측할 뿐이겠지. 나의 진짜 모습과 가면을 동시에 사랑해줄 수 이를 만난다면 큰 행운이겠다. 단지 우리는 '나는 당신이 가면을 쓰는 동안 얼마나 고통을 받았고 애써왔는 지 알기에 그마저도 사랑해', 따뜻한 말 한마디만 원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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