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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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상의 글을 처음에는 소설로 접했다. 바로 책에도 실려있는 ‘날개’다. 소설은 33번지 유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춘부의 기둥서방으로 사는 한 남자의 하루 일과, 자신의 내면  그리고 아내를 관찰하는 일지에 가깝다. 몸을 파는 아내의 어두운 방 한켠으로 밀려나 무기력하게 사는 남자가 일련의 사건을 겪고 아내에게서 벗어난 삶의 의지를 되찾는 내용이지만 소설 내내 음울함이 가득해서 사춘기 소녀의 우울함을 자극했었다. 날개가 이상과 금홍의 동거에서 나온 자선적인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토록 주인공처럼 유아적이고 비루한 지식인이 실존하고 그걸 여과 없이 글로 남겼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그때부터 신비스러운 이상의 글과 그의 삶의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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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건축무한 육면각체는 그 난해함으로 영화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상의 시는 대부분 수수께끼 같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이 시들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많은 풀이를 낳았지만 시가 발표된 당시에는 이따위가 무슨 시냐는 항의를 빗발치게 받았더랬다. 윤동주 시인의 시풍을 좋아하는 나는 아마 그때 이 시들을 읽었다면 나도 그들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수수께끼들이 흥미롭다. 서평에서 시 하나하나를 물고 뜯어 보고 싶지만 그러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내용 또한 길어질 듯해서 전체적인 책의 소감만 밝히려고 한다는 핑계를 대본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냐는 자조에는 이상 자신의 담겨있다. 이상은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문학가였다. 여느 한 사람이 한 가지도 갖기 힘든 타이틀을 여러 개 갖고도 그 명성이 여태껏 내려오고 있으니 과히 천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겠다. 또한 기생 금홍과의 염문이나 괴짜 같은 천재성을 좀 더 발휘하지 못한 채 스러져간 스물여섯이라는 짧은 생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상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오늘날 한국에서 몇 안 되는 권위 있는 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문학이나 문화에 끼친 이상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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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고 한자와 일본어가 섞여 추상적이고 어지러운 이상의 시를 독자가 좀 더 쉽고 가까이에 읽을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풀어주었다. 한자 표기를 병행하고 각주로 해설을 해주지만 이상이 당시에 발표했던 그대로의 시도 함께 실려 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조금 생긴다. 시뿐 만이 아니라 이상의 수필과 시도 실려 있으니 이 한 권이면 이상의 알만한 글은 대부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즐거운 것들이 넘쳐나 이제는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인 듯하지만 이상의 시는 요즘 젊은이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기존의 해석은 뒤로 한 채 자신만의 해설집을 가지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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