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혐오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 교회는 혐오를 치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ㅣ 교회탐구포럼 시리즈 9
김선욱 외 지음 / IVP / 2019년 6월
평점 :
극혐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무언가를 싫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지 아니면 인격살인이 될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책이다.
1. 배제와 혐오의 동학- 김선욱
2. 왜 기독교는 배제와 혐오의 대열에 서게 되었는가-최종원
3. 성경에 포함된 혐오와 저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김회권
4. 기독교 진리는 혐오를 함의하는가-송인규
5.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혐오 표현의 정의, 해약, 대응-이일
6.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김동문
7. 동성애, 혐오를 넘어 편에 서기-송진순
8. 혐오 표현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 정재영
8명의 저자가 혐오가 무엇인지, 기독교에서의 혐오표현은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동성애와 이슬람 혐오는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등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여러 명의 저자가 작성하다보니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금방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상황이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냥 문제다라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혐오란 나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혐오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 만으로는 크게 현실이 개선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난민의 문제는 당위의 문제에 머물러 있어서는 해결의 방법을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난민을 받아들이되 '어떻게'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되어야 하고 이것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협상의 무대, 즉 정치의 공간으로 나와야 할 부분이다.
동성애의 문제는 정말 글쎄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공공연히 혐오표현을 하면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괜찮다'는 식의 대응도 동의하기 힘들다.
동성애가 정신과 진단목록에서 빠졌다고 그냥 괜찮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정신과 진단목록은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질병을 분류하고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들의 합의 정도라고 봐야 할 테니까.
동성애는 정말 유전될까? 상황의 영향은 없는 것일까? 만약 동성애에 허용적인 문화에서 동성애가 늘어난다면 사회는 동성애 허용적인 문화를 갖는 것이 이익이 될까? 아니면 동성애를 금지해야 할까?
동성애는 에이즈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남성동성애자들의 항문성교는 안전할까? 의학적 통계와 발견들은 이것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고 있나? 만약 의학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면 그 위험성을 알려야할까? 아니면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숨겨야 할까?
우리는 다양한 대상을 사랑한다. 부모님과 자녀, 친구와 동료, 그리고 남친, 여친, 애인, 배우자 등.
우리가 애착을 갖는 이런 대상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반려견, 반려묘일 수도 있고 손때 묻은 인형, 냄새가 베인 이불이나 소파 등에까지 이른다. 이런 대상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다양한 대상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모든 대상과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부모와 자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근친상간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어기는 사람들이 있다.
애완동물을 정말 사랑하고 어떤 이들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할 만큼 사랑하지만 성관계를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수간을 변태라고 여긴다. 물론 이것도 어기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한 물건들이 우리의 애착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대상에 성적 쾌감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패티시즘을 변태라고 여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사람보다는 특정 물건에 성적 환타지를 갖고 고착된다.
아동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내 자식이 아니어도 아동은 사랑스럽다. 그래서 아마 남의 집 아이 키우는 예능이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동과 성관계를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소수의 사람들은 어긴다. 처벌을 감수하고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 친구는 정말 각별하다. 동성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더 많고 각별할 때도 많다. 특히 학령기에 동성에게 약간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관계를 하는 관계로 발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만약, 이 시기에 어떤 이들은 고착되어 이성애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동성애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할까?
얼마전 뇌과학 연구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남성 동성애자의 뇌는 남성의 뇌보다는 뇌량이 발달되어 여성의 뇌와 가까운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성애자 중에서 전형적인 남성들보다는 좀 더 섬세하고 심미적인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뇌의 특성이 자신의 정체성 형성기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고, 그러한 특성들이 대인관계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동성애 추구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아직 사실 잘 모른다.
의학적, 심리학적 연구들이 필요하고 그런 연구들에 근거해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괜찮다, 그냥 안된다고 섣부른 결론을 도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는 만큼만 조심스러운 열린 결론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혐오의 시대, 보다 포용적인 사회를 위한 연구가 '다 괜찮다'는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되겠다.
전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입장이 혐오하는 입장이라면 그 반대로 전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입장 또한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함일 수도 있다.
실상은 전적으로 좋거나 나쁘기 보다는 좋은 점과 나쁜점을 함께 갖고 있을 수 있으므로 통합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실제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단순하고 명확한 것에 매료되지 말자.
모호한 것들이 가득한 속을 탐구하는 연구자의 자세로 문제를 바라보고, 충분한 근거가 확립되기 전에는 결론 내리지 않는 인내를 배우자.